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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는... / <개만도 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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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강하 작성일03-02-14 11:09 조회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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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문학 재開門 첫 시도부터 잘 안돼네요.
영광 나으리께서 바쁘신가 보군요.
하여 다시 바꿉니다.
주저 마시고 누구든지
목요일 아침 <목요문학/목문동>이라하고
開門하십시오.
실명을 안 쓰셔도 됩니다. 그냥 <목문동>이라 하시면 됩니다.
달리면서 느끼는 내용 부담없이 올리자는 場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불문율상 이메일 주소는 기재하길 권유드립니다.



<개 이야기> - 윤성의 -

지난 날 조선 개는 도둑을 짖었는데
요즘의 우리네 개는 소태 맛으로 웃는단다
짖을 일 하도 헷갈려 킁킁킁 웃는단다.


<개만도 못한 세상>을 읽고... - 나강하 -

저는 서양사람들을 "개의 자손"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로마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로물로스 형제의 이야기를 거론할 것도 없이 노릿끼리한 눈과 피부에 수북한 털두덩이등의 생김새하며, 그네들은 원숭이 해골은 특별 요리로 잘도 해먹으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개를 잡아 먹으면 사람을 잡아먹는 것보다도 더 야만인처럼 여기는 행태하며, 서양영화를 보면 노천의 아무데나 배 깔고 하룻밤을 자고 가는 행동거지가 이를 반증해 줍니다. 또한 그네들은 개를 끔찍이 알지요. 묘지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혹자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그들 산업사회에서 사람 같지도 않은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그리하여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어서 허전한 마음을 강아지에 의지한다고 합니다. 조선사람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여러사람이 계를 만들고 동아리를 만들어 부대끼며 살아가고 머나먼 길을 가다가도 꼭 뜨뜻한 온돌에 배 깔고 자고 가야 하룻밤 잔 것 같지요.

때는 바햐흐로 물질문명 만능 시대입니다. 물밀듯 밀려오는 개의 문화에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도 변하여 인성이 변하고 살점도 변하고 머리색깔도 온통 빨강머리와 노랑머리 의상으로 넘쳐납니다. 그리고 부모 알기를 개보다도 못한 존재로 인식하여 부모가 개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전엔 순리에 역행하는 세상사를 "개 같은 세상"이라 하였지만 요즘은 순리에 역행 못하는 현상을 아둔함으로 치부하여 "개만도 못한 세상"이라 합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야 서로 품앗이를 하고 "계"나 "두레"를 통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여 비정형의 세상을 "개 같은 세상"이라 하였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찾아오는 고독을 강아지 한 마리 끌어안고 달래는 서양 방식의 카타르시스 해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단군의 자손들이 개의 자손으로 변하여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하여 윤성의 선생님 말씀대로 예전의 조선 개는 반드시 소태같은 도적에게만 짖었는데 하도 우리 주위가 소태 맛으로 절어 있어 짖어야할 소태 맛에도 웃고 그러다 보니 짖을 일이 헷갈려 아무나 보고 혹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미친개처럼 그저 킁킁킁 웃는가 봅니다.
향긋한 세상! 웃는 세상! 짖어야할 곳에만 짓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배달9199/단기4335/서기2002/10/25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배상



<개만도 못한 세상> - 곽세근 -

세상을 살다보면 황당하고 우스운 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되니 시도 때도 없이 짜증스러움을 겪으며 산다. 물질이 풍부하고 살기가 좋아지면서 콩 한 톨을 나눠먹던 훈훈한 인심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에만 눈이 어두워, 무슨 일이든 행하기 앞서 득과 실을 따져 계산부터 하게 되어 당장은 아니라 차후라도 어떤 영향이 끼칠 것인가를 헤아리기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삭막한 세상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얼음판 걷듯 살고 있다. 이렇듯 인간관계가 마른 장작만큼이나 메마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애완동물이라도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그렇지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산다면 얼굴 들고 하늘 처다 보기 부끄러운 세상 아닌가? 정말 웃지 못 할 얘기를 들었다. 어느 사람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아버지께서 개집에 들어가 계시더란다. 깜짝 놀란 아들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며 왜 이러 시냐니까 나도 개처럼 대접 한번 받고 싶어 그런 다며, 하나같이 아들이나 며느리 어린 손자 손녀들까지도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하루종일 사람이 그리운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개한테만 몰려가 매달려 볼을 비비며 뽀뽀를 하고 콧물이라도 비치면 끌어안고 병원에 달려가 주사를 맞히는 둥 야단법석을 떠는지라, 오히려 부모보다 더욱 정을 쏟아 오죽했으면 개집에 들어갔을까를 생각한 아들이 그 날로 개를 치우고 개에게 쏟던 관심을 부모에게 돌려 공경했다는 얘기이다. 사실 아니기를 바라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애완동물을 사랑하건 장미꽃을 가꾸던 제 취미활동을 탓할 일은 아니다. 먹고사는 일에 여유가 좀 생기면서 사람이건 동물이건 호강을 하며 지내는 마당에 굳이 사람과 동물을 비교해서 안 되는 일이지만, 오죽 답답하고 한탄 스러우면 개에다 견주며 개만도 못한 세상이라고 창피스런 말을 차마 입에 올렸을까 말이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인가. 금지옥엽 귀여운 내 새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애지중지 키워 놓았더니 제 잘나서 커버린 냥 착각을 해도 유만부동이지 이제나저제나 철들 날만 기다리다 그래도 믿은 것이 장가들어 저도 애들 낳고 살다보면 부모심정 모를까싶어 기다린 결과가 이 모양 이 꼴 된 것 아니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인간 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난 후, 여유를 찾아 심신을 위로하며 새로운 욕구창출을 위해 취미활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아닌가?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며 근본이다.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배우며 닮아 가기 때문에 씨앗 도적질은 못한다는 그 말 진실이 아닐까봐 그랬을까, 어쩌면 말투하나 손 발짓 투정질까지 빼어 닮았는지 아무리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라지만, 이렇게 국화빵을 찍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치며 사는 우리들 아닌가? 누가 부모와 자식간의 이완된 관계를 시대의 유산이며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가. 시대가 어떻고 사회가 어떠했는가. 아무도 모른다 부모의 깊고 깊은 내리사랑의 참다운 가치와 소중한 의미를 참새가 봉황의 속 깊은 안목과 진실을 어찌 알까 싶은 심정이다. 하면 물질만능의 풍요시대에 윗분 모시기는 더 좋은 환경 아닌가? 없을 땐 드리고 싶어도 못 드렸지만, 넘 처 나는 세상에서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시대에 입장만 바꿔보면 알 것도 없이 손쉬운 일을, 자기는 천년만년 늙지 않고 장생불사 할 것인가 물어 보고 싶다. 우리 모두 지금 제자리로 돌아가자. 처음부터 제자리에 있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냉수 한 그릇도 함께 나눠먹으며 너털웃음을 짓던 우리 아니었나, 이제라도 우리 떠날 때의 자리로 돌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곳은 있을 곳이 아니고 잠시 들렸던 자리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개들이나 껴안고 입을 맞추고 미장원에 가 머리를 다듬어 칼라 염색을 해주며 색동저고리를 입혀 끌고 다녔는가? 오늘 저녁이라도 우리는 개에게 쏟던 정성을 부모에게 돌리고, 그동안 잠시 소원했던 죄 값을 용서받고 내리사랑의 본심으로 돌아가 사랑이 넘치고 화기애애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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