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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떠난 달림이의 겨울 여행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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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01-26 17:29 조회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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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떠난 달림이의 겨울 여행 ( 2 )

새벽이다.
고요한 새벽이다.
이불 아래의 장작불 구들장 열기는 초저녁만큼 맹렬하다
아마 새벽에 관리인이 다시 장작 군불을 때 주었나보다

정말 오랫만에 맛보는 놀놀한 장판 구들장의 따뜻한 온기다.
옆에 나란히 누운 친구의 잠을 방해할까 걱정되어 부스럭거리기가 겁나지만
어쩔 것인가 ? 하루의 새벽은 밝아져 오고 있고,
그러면 이 달림이의 할 일은 나가서 뛰며 새벽을 맞이하는 일일진저...
노냥 그래 왔듯이...

잠든 신랑의 품을 빠져 나와 시어머니보다 일찍 부엌으로 나가는
새벽 며느리처럼 소리 없이 이불 속을 나와 머리맡의 옷가지 가방을 들고
까치발로 걸어 미닫이 방문을 소리 안 나게 가만히 밀며

방문을 따라 길게 붙어있는 마루를 따라 화장실로 가서
희미한 화장실 불에 의지해 달리기 옷을 갈아입는다
어제 출발 전, 두시럭 거리며 달리기 옷가지를 챙겨 가방에 넣는 나를 보고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 나 피식 웃었다

" 먼 짐이 그렇게 많아 ? 전주 거기 가서도 또 뛸라고 ?? "

오늘 일행 중에 현역 달림이는 나와 H , 둘이다.
항상 조용하니 차분한 H 도 어제 나에게 가만히 다가와 씨익 웃으며,

" 틀림없이 네가 뛸 것 같아 나도 옷을 준비해 왔는데, 뛸꺼지 ? "

우리 둘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교동 한옥 마을 골목을 빠져 나와
시내를 따라 노송대 모교 운동장으로 가서 ,
집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나와서 합류한 K 시인과 함께 고향의 새벽 공기를 갈랐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전주 시내, 영화 촬영 셋트장 배경 건물처럼 적당한 어둠 속을 가르며
기린 봉으로, 한벽류로, 오목대로 전통문화 체험관으로
우리들 어릴 적 책가방 들고 쏘다니던 골목골목을 도란도란 내 달렸다.

정말 이건 굉장한 일이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 괜한 학생모자를 면도칼로 주욱 찢어 다시 그 자리를 꿰메고
그 위에 참기름을 발라 반딱 반딱 윤이 나게 해서 모자를 쓰고 다니던 이 길을
한 세월 지나 지금은 친구랑 같이 새벽 뜀박질을 하고있다니...
우리가 그 당시 상상이나 했겠는가 ?

친구 H 는 30 여 년 동안 살았던 고향 집 고샅 대문 앞에 이르러서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목재 대문에 뚫린 작은 구멍의 연유를 설명하며
소시 적 추억으로 우리의 뜀 길을 붙잡는다.
집 지키라고 하고 식구들 전부 나가면
혼자서 따분하고 무료해 나가고 싶어, 대문에 구멍을 내어 바깥에서 줄을 당겨
목재 대문 빗장을 안쪽에서 닫아 놓고 살그머니 나가 싫건 놀다 왔다 하던가 ?
.
한시간여 달리기가 끝나고 한옥마을에 오니 일행 모두들 기상해서 세수 하느랴고 분주하고
한옥 구들장에서의 달콤한 잠을 화제 삼으며
서울 돌아가면 침대를 당장 때려 치고 구들장을 놓아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들 조상의 지혜가 다시 한번 더 돋보이는 순간이다.
이 좋은 우리의 주거 문명을 서구의 침대로 바꾸고, 그리고 돈을 따로 내고
찜질 방을 찾는 우리네는 어느 한편으로는 자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쩔 것인가, 모다 덜 그러고 있으니.....

반짝 반짝 금덩이 같은 빛이 나는 유기 그릇에 담아 내온 5 첩 반상 차림 조식 12 인 분,
,
밥이고 반찬이고 한결같이 정갈하게 그릇 뚜껑이 덮어져 .밥상 위에
가지런히 정돈된 밝은 구리 빛 색갈 유기 그릇의 일대 파노라마가 아니고 무엇이랴 !
이건 누구 가 봐도 예술, 그 자체이었다. 눈만으로도 이미 포만감이 차 올랐다..

간밤의 숙면이, 아름다운 하룻밤 추억이 아쉬운 듯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어
다음 목적지인 서해안 부안 변산반도 내소사를 향했다

누구가 그랬지. 40 살 중반이 넘으면 왠지 동해안보다는 서해안 이 좋아진다고,
불끈 불끈 솟아나는 동해의 에너지보다는 서해는 차분하게 등돌리고 의자에 앉아
지나온 발자취를 잠시나마 되돌아보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서일까 ?

나는 일년에 한 두 번 이런 저런 일로 서해안 쪽을 찾게되는데
올 때마다 그 감회가 새롭다.
특별히 웅장하고 특출 난 경관이 있는 건 아닌데
거부감 없이 조용히 품어 안는 저 평범한 들, 낮은 구릉, 굽은 소나무가 정말 좋다.
친구들도 이구동성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가는 눈을 창 밖으로 돌리며
흡족한 미소를 얼굴 가득 담아낸다.

준비해온 테잎, 어쩌면 이곳을 지나갈 때 어울릴 것 같아 가져온 음악 테잎,
영화 서편제의 오리지날 싸운드 트랙을 꼽아 귀를 즐겁게 해본다.

"......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오너라 뒤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웃는 태를 보자.....

..... 니가 무엇을 먹으랴 드냐 ? 시금 털털 작은 이도령 스는데 먹으랴 드냐 ??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

소리.
우리 민족의 그 많은 발명품 중에 판소리만큼 우리 민족 고유의 애환을 절묘하게 담아낸 게
또 있을까 ? 나는 코쟁이들에게 우리의 많은 것들을 자랑하면서 이 판소리만큼은
아직 거론하지 못했다. 적당한 번역도 안되려니와, 번역한다 하더래도 그 참 의미는
우리의 말과 글을 어려서 듣고 배우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그 참 맛을 전달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그냥 그런 게 있다하고 그런 줄이나 알고 있으라고 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쉬우면 우리 나라 판소리 고향 전주나 남원으로 유학 오던가...

K 시인은 내소사에 도착하자 일행에게 아주 유익한 법문 지식을 쏟아준다.
절에는 왜 네 개의 문이 있어야 되는지,
대개의 절에 들어갈 때 왜 작은 시냇물이 있는 것인지,
절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의미가 없는 게 하나도 없는데
심지어 내소사 입구의 그 유명한 전나무는 괜히 전나무가 아니고,
전나무 솔방울 끝이 하늘로 향해있어 부처를 향한 보살들의 끝없는 불심의
발원이라는 설명들은 초문이지만 꼭 따다 담을만한 소중한 앎이었다.

내소사를 나와 바로 근처, 오늘 여정의 백미인 한국 전통찻집 관선헌에 도착했다.

차가 멎고 차를 주차하려고 잠시 머뭇대는 사이 일행들은 우르르 관선헌으로 다가가
돌계단을 내려가며 벌써부터 탄성 일색이다.

집 동쪽 벽을 따라 심어진 매화나무,
그 매화는 동쪽 밤하늘에 달뜨면 창가로 비취어 흔들거리는 달밤의 매화 가지를
안방에서 보기 위함이라 하니 그 주인의 높으신 운치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작거나 너무 크지 않은 잔디 마당 한켠에 심어져 서해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며
서울 방문객에게 요염을 떠는 대나무 숲, 대나무 잎들,
요 작것들은 아무나 오면 치마 끈 풀고 허리 흔드는 헤픈 기생 상이나
워쩔것인가, 올 때마다 나보고 좋다 저리 반기는 것을...
유혹에 넘어가 그 가는 허리에 다리 척 감고 대숲에서 일을 벌려나 볼꺼나 ??

마당 앞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조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말을 멎게 한다
저 앞에 길게 좌에서 우로 뻗어있는 섬은 가난한 화가의 누드 모델인 듯
벌거벗고 길게 드러누워 머리에 팔 벼고 있는 상이 그리 이쁘지는 못하지만
두리, 두리 뭉실 제법 여체의 곡선이 살아있다
일행 중 정보 통신업 CEO 인 S 가 말한다.

" 히야 ! 기가 막힌 절경이다. 저 섬은 이 찻집을 위해 있고, 이 집은 저 섬을
위해 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조화인가 ? 안 그러냐, 친구들아 !! "

안에서 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어서들 들어오라고 주인 집 사모님이 아무리 채근해도
친구들은, 어 부인들은 들어 올 줄을 모르고 그저 넋을 놓고 찻집 앞에 펼쳐진
절경에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아내와 이곳을 계절 따라 서 너 번 왔다 갔는데,
고백하건데 그때마다 나는 서울로의 귀경 시각 때문에 일어섰지
단 일초의 지루함도 가져보지 못했다. 정말 머물러도, 머물러도 또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하물며 주인 부부 어르신네와는 K 시인과의 각별한 개인적 유대관계로 인해
우리 부부는 덤으로 귀빈 축에 끼이게 되었으니 더 더욱 이 관선헌과는 쌓은 정이 도탑다.

큰 안방 보료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각기 찻잔을 앞에 놓고
주인 어르신 내외분과 한담을 나누며 우린 마치 오늘 여정의 끝에 이른 양,
마신 뒤 한참 후 혀끝에 길게 남아 단맛이 도는 일엽 차의 여운이 다 없어져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고 참으로 야속한 시간의 부족함이었다.

또 한바탕 떠들썩한 인사를 한 무더기 나누고 나서 우리는 서울로의 귀경 길에 올랐다.
어 부인들의 알뜰 살림을 위해 곰소 바닷가에서 젓갈들을 챙겨 사고,
귀로에 부안 읍네 130 년 된 고색 창연한 한옥 집에서 푸짐한 한식 성찬을 들고
시인이고 선배이신 신석정 님의 허름한 생가에도 들러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성토하고선,
우리는 오늘의 여정을 거의 마감하며 호남 고속 도로 위에 15 인승 렌트 카를 올려놓았다.

좋은 친구. 다정한 친구들.
언제 봐도 푸근한 좋은 친구들과 같이 떠날 수 있어 더 좋았던 겨울 여행,
이름 없이 왜진 화암사 절과, 장작 구들장 한옥 마을의 달콤한 잠, 가야금 연주 감상,
귀빈 접대 전통차의 시연, 고향의 새벽 달리기.

판소리를 들으며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 서해안을 구비 돌아 다가선 내소사,
대웅보전의 배흘림 기둥,
그리고 우리의 넋을 빼놓을 만큼의 절경 속에서 마신 일엽차 차 한 잔의 의미는
두고두고 우리의 추억 앨범에서 꼬옥 붙어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친구들아, 내 좋은 친구들아,
너무 고마운 친구들아 !!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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