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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나의 레이스는 이제부터 - 송재익님과의 레이스를 마치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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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2-18 10:08 조회7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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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스승이 - 신동희씨의 도움

잠실대교를 지날 때쯤 신동희님이 달려왔다.
대뜸 '허리를 세우고, 팔을 앞뒤로 흔들고...' 코치를 해주었다.

'머리를 너무 젖히지 말고 시선은 적당히 앞을 보며 ...'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자기 발자국소리가 들리면 속력이 쳐진다는 것이니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하며...'
'팔을 앞뒤로 흔들면 다리는 자동으로 따라가는 거야.
군대에서 제식훈련 할 때 다리는 말을 하지 않잖아? 팔만 힘차게 흔들라고 주문하잖아, 그런 원리야.'

엄지에 힘을 주니 발가락만 아프다. 그래도 선생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달렸다.
그가 말한다.
동호대교쯤에 가면 잡겠구만... 순간 나는 놀랐다. 동호대교라면 정말 멀리 보는 것이 아니가.
나는 그저 몇백 미터... 이니면 1-2킬로미터 이내에서 잡아야지... 생각했었는데.
역시 고수는 내다보는 것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엄청난 스피드가 살아나는 것이었다.
내가 달리는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걸음을 세는 것이다.
500미터 거리를 지나는 것은 출발시에는 꼭 500보다. 정확히 한발자국에 1미터.
그러나 반환점에 이르면 500미터를 달리는데 보통 550보 정도가 걸린다.
골인지점에 가까워지면 600보를 세어야한다.
즉 출발시보다 골인시 12% 정도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니 이는 보폭의 축소에 의한 것이고 발을 떼는 속도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니
아마도 거의 20% 정도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신동희님과 달리며 세어보니
500미터를 달리는데 불과 475보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출발시보다 더 스피드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신이 났다.



게 섰거라, 송장군 - 두 번 째 추월

청담교와 영동교를 지나니 불과 송재익님이 저 앞에 있다.
그는 나의 지근거리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간혹 옆의 뒤를 돌아다보던 페이스키퍼 마저도 이제는 안심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조금 더 스피드를 냈다. 신동희님은 내 착지를 보더니 잘 달리네. 좋네...를 연발한다.
사실 내 생각에도 엄청나게 잘 달리고 있다. 4시간 페이스 메이커들이 사정없이 뒤로 밀려났다.
드디어 성수대교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송장군을 잡았다.
순간적이었지만 눈물이 났다.
승리에 대한 기쁨도, 대회 입상도 아니었고 시합이 아주 끝난 것도 아니었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신동희님의 말대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아, 그렇구나...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구나...
뒤에서 뭐라뭐라 하는 송장군 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일별도 주지 않고 그냥 내쳐 달렸다.
오히려 더 속도를 냈다. 뒤를 돌아다볼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 달리자...이대로 끝까지 달려야한다.

동호교를 지나고 이제 4킬로가 남지 않은 지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까 신동희님을 만나 정신없이 달려온 구간이 거의 약 6킬로미터 정도인가 보다.
그러나 내 한계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보폭이 급격히 짧아지고 발걸음을 떼는 속도는 느려졌다.
허리는 자꾸 내려앉고 팔은 천근만근 무거워져왔다.
나는 평소 팔씨름에 자신이 있었고 요즈음은 자기 전에 꼭 팔굽혀펴기를 200개 가량 하기 때문에
팔을 흔드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팔을 흔들어대도 다리가 거기에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4킬로... 풀에서 40킬로를 남겼다는 얘기다. 마음과는 달리 자꾸 느려진다.
신동희님도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아마 이 정도면 송재익님은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즉 반환점에서 송재익님을 이기게 해줄께...라는 자신의 약속을 다 지켰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이제 남은 거리는 3킬로 남짓... 드디어 신동희님은 혼자 떠났다.



명언 -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은 어금니 힘으로 달린다.

떠나기 전에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부터는 어금니 힘으로 달리는 거야. 누구나 힘든 시점이거든.
어금니를 물고 어금니 힘으로 달려.'

이 말은 남기고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멋있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정말 많이 배웠다. 고마움 잊지 않아야지... 그런데, 그런데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오호 통재라 -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역 추월을 당하다

마음은 멀쩡한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 30킬로 LSD후 물집 잡힌 오른발 새끼발가락의 피부가 그저께 떨어져나갔는데,
염려했던 그곳이 쓰려온다.
반팔 상의 면티는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어 몇 분 간격으로 한번씩 몸에서 떼어내주어야 했고,
츄리닝 하의도 허벅지와 종아리에 달라붙어 다리를 더욱 무겁게 했다.
다행이라면 내가 추위를 좀 덜 탄다는 것인데, 이것은 내 무지의 소치였음을 경기가 끝나고 알았다.
즉, 본인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체온강하를 이겨내기 위하여 몸은 스스로 많은 열량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체력소모에 의한 육체의 컨디션저하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내가 정신적으로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즉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줄 알았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드디어 저만치 여의도 기점 9킬로 팻말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황급한 발자국 소리와 가뿐 숨소리가 들려오며,

'에고... 이제야 잡았네. 야, 잡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송장군의 목소리가 뒷덜미 옷깃을 후려잡듯이 들려왔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럴 힘이 그에게 남아있었던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도 나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달려오는 품새와 목소리는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에
최후의 힘을 쏟아 한번 따라와 봤을 뿐, 이내 뒤로 다시 사라져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내 착각이었고,
나와 보조를 맞추어 한참을 달리는 그는 결코 뒤쳐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되레 한발자국 두발자국을 앞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속력은 엉망으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야, 안 추워?'
나는 옹졸하게도 그저 건성으로 답변을 했다.
'응, 괜찮아.'

지금 생각해봐도 그의 목소리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달리고 있는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그런 애정어린 염려였음이 분명한데.

난 마라톤을 하는 동안에는 성격이 그저 그렇다. 간다하면 간다. 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는 누구와 대화도 별로 즐겁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이런저런 내 생각만을 하면서 달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도 또한 별로 보지 않는다.

드디어 그가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한다.
레이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 송장군 - 10킬로에서 내가 추월 - 13킬로에서 다시 송장군
- 35킬로에서 추월 - 41킬로에서 다시 송장군... 이런 셈이 되었다.
정신은 맑고 마음은 있는데 다리가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이게 왠 조화람... 혼자 이런 저런 상념에 젖는데 송장군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1킬로 남짓 남겨둔 철탑부근에서는 이미 그의 뒷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는 도중에 두 번 정도의 스트레칭을 하였는데
이게 바로 최종순간에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최후의 승부처...
승부가 미세하게 갈 경우 내가 생각해두었던 마지막구간인 철탑과 반포교사이의 직선주로 500미터는
홀로 달려가는 내게는 이제 한없이 멀기만 했다.
하지만 광장을 지나 언덕을 넘어, 꿋꿋하게 골인지점으로 향했다.
많은 분들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시계는 놀랍게도 내 최고기록인 3시간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종전의 최고기록이 4시간 16분임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발전인 셈이다.
송장군도 그의 생애 최고기록인 3시간 48분에 근접한 52분에 골인했다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출발하기 전에 내게 4시간 40분 완주가 목표라 했거니와,
그의 좌우를 호위했던 페이스키퍼들에게는 4시간 20분이 목표라고 출발시에 말했었다하니,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의 레이스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 자신과의 레이스는 이제부터다.



나와의 레이스는 이제부터

오늘 배운 여러 가지 교훈들,
체온보호, 복장, 허리와 팔의 역할, 어금니로 달리는 마지막 구간, 중간중간의 스트레칭... 등을 새기며
이제 갓 입문했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레이스를 떠난다.

신동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물론 오늘 승리한 송장군께는 승리에 대한 우정의 축하와 더불어
조만간 인터넷주문을 통한 마음의 양식(책)이 배달되도록 할 것이다.
덕성목욕탕에서 함께 어울려 씻고, 한우촌에서 유쾌한 점심을 먹었다.
많은 분들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특히 김현우님의 글쓰기에 대한 강의도 인상깊었다.
좋은 분들과의 만남을 반추하며 새벽 4시가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이렇게 투다닥을 한다.

서울마라톤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시간이 부족하여 묘사도 많이 떨어지지만, 기분 퇴색하기 전에 가볍게 투다닥한 것을 올립니다.
퇴고도 없이 올리는 결례를 혜량하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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