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부부의 은퇴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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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기 작성일00-12-04 23:00 조회8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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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부부는 이 알통가재가 모방과 표절의 천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한번은 고산선생의 어부사시사를 신어부사시사로 바꿔서 한 재미 보고 원고료를 챙기더니 또 지난번에는 자네 부부를 위로한답시고 조침문을 흉내 내서 많은 넷마님들을 혼란속에 빠뜨렸어. 그리고 뒤돌아서 혼자 몰래 ㅎㅎㅎ 하며 엽기적인 미소를 머금었지.
그러나 이런 나를 보고 특히 자네 부부가 표절과 모방 운운하며 나무란다면 정말 섭하이. 굳이 나무란다면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보고자 하는 알통가재의 우직스런 심성을 탓해 주시게.
그래서 자네 부부와 함께 은퇴달리기를 마친 지금도 도리없이 또 한번 우리의 선조님 몇분을 더 떠올려보면서 서운함을 달래 보겠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네부부의 은퇴 달리기를 진주에서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야.
자네 부부에 대한 기억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으니까 말이네. 런클 회원들과 하루전에 내려간 것도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또 촉석루를 둘러본 일도 두고 두고 잘한 일로 기억될 것이야.
자네 부부는 혹시 이런 소문 들어 보았는가?
만해 한용운 선생께도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네. 몰랐다면 내 이야기만 살짝 듣고 말문을 닫아주시게. 소문이 퍼지면 불교계에서는 물론 종교계에서는 아마 난리가 날 것이네. 좀 시끄러워질꺼야.
만해 선생은 조심스럽게 고백을 하신 일이 있네 그려.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廟(묘)에"라는 시를 쓰신 일이 있는데 선생의 심중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신걸 보면 이만 저만한 사이가 아닌가 보네.
" 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同時)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선생은 또 아직도 논개 아주머니가 살아계시다고 우기신다네.
"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그러나 자네부부도 느꼈겠지만 촉석루에 올라섰을 때 비로서 만해 선생의 말씀이 옳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어느곳에서나 논개 아주머니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던가? 아무리 나무토막 같은 알통가재라지만 그만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솟는 것을 자네도 보았지. 그 바람에 촉석루의 樓(다락 루)자가 淚(눈물 루)로 보이기도 했지. 또 만해 선생을 흉내내면서 시랍시고 어설프게 한 마디 적어 놓지 않았겠나.
"촉석루에 올라 논개 아주머니 생각에
눈가에 淚가 절로
樓까지 淚가 넘쳐
내를 이루니
이것이 남강이라
나는 이 강을 따라 한없이 달리네"
그리고는 한동안 침묵을 했지 왜 그런줄 아나? 솔직히 왜놈들이 미웠어. 그리고 그놈들을 혼낸 우리의 영웅, 만자로님의 대선배이신 이순신 장군 생각도 났지, 바로 코 앞 사천에서 거북선도 만드셨고 시운전도 한 곳이 그 곳 아닌가. 그 것도 몰랐다면 자네 부부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은퇴도 했으니 역사공부 좀 하시게.
그리고 또 내친김에 走(달릴 주)중일기를 씀네하고 "큰 운동화 옆에 차고 촉석루에 홀로 앉아...(생략)"라고 몇자 적었네. 물론 이 것도 "큰칼 옆에 차고 스루에 홀로앉아"로 시작되는 이 장군님의 난중일기를 표절한 것이지.
그랬더니 자네부부는 알통가재가 자네부부의 은퇴를 서글퍼하는 줄 알고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도 했지. 물론 자네 부부를 생각하면 엄청 서운하지 하지만 그 때는 솔직히 은퇴달리기를 앞둔 자네 부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논개 아주머니와 이순신 장군 때문에 눈물이 눈을 가렸던 것이네. 런클 선배님들이 들으시면 뭐라고 나무라시겠지만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솟네 그려. 자네 부부도 내나이가 되면 이해할 것이네.
아무튼 자네 부부가 내 마음을 알아 차린 것은 다음날 달릴 때였지. 그러나 자네부부는 정말 너무했다는 생각이 드네. 아무리 섭하다고 해도 아스팔트 위에서 딴지를 걸면 어쩌겠는가. 물론 자네 부부는 내가 유도 유단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그랬겠지만 전방 회전낙법으로 굴렀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어, 쥐가 나서 주저앉아 고생고생하시던 부산 날다람쥐님이 알통이 구르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으면 벌떡 일어나 걱정을 해주시지 않았겠나. 솔직히 말하면 자네 부부 은퇴 달리기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주저앉을뻔 했어. 또 자원봉사 하시는 진주 아낙네님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달리지도 못했을 거네. 자네 부부도 들었지 알통가재가 가는 곳마다 아낙네님들이 물을 주시면서 "건강해 뵈니 존네에" 하시는 말씀을.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르네. 아마도 내 팔뚝의 알통을 보고 하시는 말씀 같았어.
비록 그날 달리기에서 넘어지기는 했지만 자네 부부가 합심해서 딴지를 건 진정한 질타의 의미를 나는 잘 알고 있네. 그 의미를 새겨서 이제부터는 달리기 하기 전에는 절대 축배를 먼저 들지 않겠네. 그러나 매번 같은 변명일지는 몰라도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었네.
자네 부부의 은퇴로 서운한 것은 물론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길에서 술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 있고 타는 장어구이가 있었으니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어쩌란 말인가? 침이 안 넘어간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지 않는가?
자네부부는 가방속에서 못보았겠지만 에어포스원 형님과 한라산 형님을 비롯해서 내노라하는 넷마님들 다 모이셨지 거기에다 만자로님의 큰 절까지 함께 받으니 어쩌란 말인가?
더욱이 텔레파시를 비롯해 전투감각 등 신세대들의 대거 등장으로 선배입장에서 격려라도 해주어야지 낸들 어쩌란 말인가?
샴페인을 미리 터트렸다고 나무라는 것은 좋아. 하지만 하필 두무릎과 두 팔굽을 까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밖에서 이틀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마누라가 반갑게 마지해도 운우의 정도 못 나누고 하루 밤을 넘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가?
무릎이 까지고 팔굽이 까지면 부부사이에 정을 나누기가 얼마나 지장을 받는지 모르시나? 내 비록 자네 부부의 침실은 엿보지를 않아 어떻게 정을 나누는지는 모르겠네만 이부자리에 피도장을 찍어가면서 까지 정을 나누면 남들이 얼마나 흉보겠나?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달리기를 하고 부터는 멀게는 사흘을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네 부부가 딴지 걸어 그렇게 됐다면 우리 마누라가 자네 부부를 가만 놔두지 않을걸세. 그러나 걱정 마시게. 내 일르지 않았어. 왜냐구? 당연하지 그게 다 자네 부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지.
나는 앞으로 자네부부가 이번 은퇴달리기를 통해서 보여준 야무진 질타를 항상 생각하면서 달리기를 하겠네. 그리고 에어포스원 형님 말씀 받들어 술잔은 절대 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병 역시 돌리지 않겠네.
친구 부부, 자네들 지난 1년동안 정말 고마웠어.
달리기 당일 날 출발전 위밍업때 많은 넷마님들이 자네 부부를 보러 와서는 한마디씩 했지. "정말 친구 부부가 불쌍하다"는 것이 이구동성이었어. 특히 savvy가 앞장서서 그랬지. 자네 부부에게는 위로가 됐겠지만 이 알통가재는 뭐냐 말이야. 완전히 비루먹은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혹사시키는 엽기적인 살찐 주인 보듯 바라보는 거야. 참 기가막혀서 낸들 90kg으로 매일 짓누르며 달렸으니 미안한 마음이 없었겠나? 나는 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줄 아나? 늘 미안했지. 그리고 고마웠지.
그 날 은퇴 달리기를 마치고 여윈모습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머금은 것 같은 자네부부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미안했으면 고개를 떨구었겠나 생각을 해보시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자네들 친구 부부! 딴지 거는 버릇 외에는 물집 한번 잡히게 한 일도 없고 묵묵히 이제까지 함께 해준 자네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네.
이제는 신장에서 잘 쉬시게. 지나번 달리는 시인 김종생님이 당부를 하셨네. 그래서 특별히 통풍이 잘되는 명당을 골라 집 한칸 마련했으니 자네 부부 해로하면서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시게. 내 또 이따금 옛날이 생각나면 앞마당 달리기에서는 가볍게 신세를 지기로 함세.
고마워 친구 자네 부부! 정말 고마웠어 영원한 나의 운동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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