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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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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08-23 22:22 조회2,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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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김 건 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오늘따라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기억은 아마 35년 전쯤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을 돌려 당시의 풍경을 생각해 본다. 내가 살던 종로 거리, 그곳에는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주 느릿하게 달리는 전차가 있었고, 낮은 빌딩들이 좁은 종로 거리에 서서 위풍당당하게 그 자세를 뽐내는 그런 시절. 때로는 우마차가 지나다니며 우수마발을 거리에 흥건히 배설해도 그냥 그 풍경이 자연스러웠던 시절.

겨울이면 꼭 연탄까스 중독이란 뉴스가 아침을 여는 이들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겨다 주었고, 우리 어머니는 밤이면 안경도 못 쓰신 실눈으로 자식들의 양말이나 내의를 색깔 다른 천으로 기우시며 삶의 무게를 그 쳐진 어깨로만 보여주던 시절.

어머니 치마 속 흰색 잠뱅이에는 빨간색 쌈지가 덧붙어 있었고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무슨 보물창고와 같이 느껴졌다. 내가 칭얼거릴 때마다 그곳에서 일원 짜리 동전을 꺼내 주시면서 그 가난 속에서도 흐믓한 웃음을 지으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오늘 더욱 그립다.

일원 짜리를 들고 몇 백 미터를 쏜살같이 뛰어가면 나타나는 구멍가게, 흰 수염난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셨다. 10원이 있어야 파라핀 바른 초콜렛을 살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림의 떡이다. 일원 짜리 '누깔사탕'을 집어들고 거리로 달려나온다. 너무나 맛이 황홀해서 입에서 녹이지도 못하고 깨물어 먹던 기억이 오늘 더 그립다.

궁핍하던 시절 서울에도 보리 고개는 있었다. 한집 건너 학교를 그만 둔 누나나 형들은 가발 공장이나, 빵집, 미장원, 비누공장 등에서 척박한 삶의 텃밭을 일구기 위해 살아가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절. 우리 집도 쌀 한말을 외상으로 팔고서 며칠 되지 않아 쌀독을 텅 비워야만 했던 걸 보면 서울의 보리 고개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싼 밀가루 수제비가 거의 주식이 되었고 감자로 점심을 견뎌야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나은 편 아예 점심을 건너뛰는 친구네가 많았다.

그 시절 어머니의 그 빨간 쌈지는 요술 주머니였을까? 설이나 추석 때면 자식들에게 빔 한 벌 입히시려고 동대문 광장시장을 몇 시간씩이나 옷값 때문에 땀을 흘리고 수많은 인파를 헤집고 다니시며 가격을 깍으려다 급기야는 예산이 맞지 않아 돌아 나오는 어머니에게 욕을 하던 주인과의 몇 십 분간의 실랑이가 꼬마시절인 나에게는 너무나 창피스러웠다. 그런 어머니 속도 모르고 '꼬마 양복'을 사달라고 우기다 볼기를 엄청 얻어맞고 울던 기억이 오늘따라 가슴을 저민다.

내 기억으로는 여름에는 우리 어린 친구들은 열이면 아홉은 아마도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가을이나 겨울이면 광목으로 겉감을 댄 '기차표 검정 운동화'가 보통 아이들의 표준이었다. 그나마 잘 사는 아이들은 파란색 나이롱 천으로 만든 '삼화 범표 운동화'를 신었다. 어린 시절에도 가난함이 싫었던 것 같다. 그것이 부유한 삶의 척도로 어린 나의 눈에는 비춰졌다. 지금 생각하면 면으로 된 운동화가 건강에 훨씬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그 신발이 갖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운동화 혓바닥에 그린 호랑이 그림-지금으로 말하면 애니매이션-이 너무나 근사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아무튼지 어린 나는 그 신발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졸랐을까, 아마도 몇 달은 엄마 치마 자락을 부여잡고 생 때를 부렸다. 난 생 때를 부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볼기를 맞고 울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이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때마다 흘리셨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생일도 아니고 추석도 아닌데 내 머리맡에는 꿈에도 그리던 푸른색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이가 든 지금도 난 당황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는 버릇이 있다. 요즈음은 그 모습이 창피스럽기까지 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도 얼굴이 상기되었을 것이다. 난 며칠동안 그 신발을 신지 못했다. 그리고 몹시 춥던 날 그 신을 신고 학교에 갔다. 양말은 빵꾸가 나있었고 쉐타 팔꿈치는 다 떨어져 있었지만 내 어린 친구들은 그 '삼화 범표 운동화'를 보고 너무 부러워하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운동화에 대한 추억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 IMF시절도 역사 속으로 스며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롭게 세상살이를 하는 것 같아서 좋다. 특히 자기 자식은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많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옛 시절과 견주어 보면 세상살이가 몇 배는 힘이 더 드는 것 같다고 한다. 특히 인간 관계에서는 너무나 냉혹하고 계산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나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가 아닐까하고 반성해 본다.

작년 이후로 내 나름대로 많이 뛰었다. 특히 뉴욕마라톤에 수필 공모가 당첨된 이후에는 새벽과 밤으로 열심히 달린다. 특히 밤에는 스스로 야주족이 되어 어둠을 가르고 나오는 마라토너들과의 만남이 즐겁기만 하다. 야밤에 만난 이들과 대화 중에 "제가 누구입니다" 하고 소개 할 때 "아 그 분 이시군요" 라고 들을 때는 괜히 어깨가 으쓱하다.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다. 특히 가족 친지, 선후배간의 인연은 더 더욱 그렇다. 그 사이에서 연결된 틀은 아무리 생면부지간이라도 친밀한 관계로 이어진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책임의 틀과 같은 것이다.

우리 옆에 옆에 집에는 나이키 매장 창고가 있다. 요즈음 동네 학생들도 그곳이 무슨 보물 창고 같이 느껴지나 보다.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몇 명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부럽게 쳐다본다. 그 매장 주인 아저씨는 내 또래 같은데 인상이 아주 서글서글하다. 한 번은 매장에 들러 마라톤 용품이 없느냐고 하자, 찾는 사람이 없어 물건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인 아저씨도 마라톤을 한단다. 나와 같이 중앙일보대회를 참석했단다. 내가 초보라서 그런지 뛰는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는 일산이 풀뿌리 마라톤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마라톤 비품 부재에 대한 질책 비슷한 권고를 하고 매장을 나선다. 그것이 작년 이맘 때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내 고등학교 2년 선배라는 사실을 몇 달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양반의 서글서글함은 고등학교 산악부부터 활동하며 수십 년간 다녔던 많은 산 속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빚어진 눈빛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식으로 얘기하면 토종 된장과 같은 양반이다.

간혹 매장을 들르는 후배의 모습이 좋은가 보다. 갈 때마다 하냥 즐거운 표정이다. 나라면 그럴 수가 있을까? 선배는 원래 말수가 적은데 바쁜 와중에도 연습은 어떻게 하느냐고 꼭 챙겨 묻는다. 선배의 관심에 못내 부끄럽기만 하다. 어느 날 신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몇 켤레 신발을 샀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더니 3개월 전에 나에게 꼭 맞는 신발을 구해 주겠단다. 시큰둥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틀 전에 매장을 들러보니 신제품 마라톤화가 70켤레나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장사가 안 되는 물건이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물건들이었는데 후배를 위해 물건을 찾다보니, 본인도 마라톤을 준비하는 이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 그 많은 물량을 들여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매장 주인으로서가 아닌 내 선배로서의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참 맑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은빛 찬란한 마라톤화를 주면서 뉴욕에서 한 번 잘 뛰어 보란다. 그러면서 한사코 대금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데는 어떠한 조건이 있어서는 안되지' 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한번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신발 가격을 아는 아내는 또 신발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선배 얘기를 하니 아내의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흐른다. 공연스레 거드름을 피워 본다. 내가 좋아하는 TV프로도 제쳐 논 체로 마라톤 신발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또 다시 웃어버리고 만다. 내 모습이 아기 같단다. 무심한 아들 녀석에게 마라톤화의 각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본다. 시큰둥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녀석도 아빠가 왜 이러는 지를 알게 되겠지... 몇 번이고 신발 끈을 묶고 풀어 보았다. 참 잘 맞는다. 그리고 잠잘 때에는 머리맡에다 가지런히 모셔놓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꿈에서 만났다. 꿈속에서 어린 난 엄마에게 얼마나 칭얼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신을 신고 얼마나 뛰었는지, 그리고 동요도 불렀던 것 같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오늘은 참 어머니가 시리도록 그립다.

며칠후면 나는 저 아끼던 마라톤화를 신고 뛰겠지. 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새 신을 신고 폴짝 폴짝 뛰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가까운 날에 칭얼거리는 그 누구를 위해 아름다운 신발을 한 켤레쯤은 준비해 두어야겠다.


추신: 어르신 마라톤 선배님,
죄송합니다. 나이도 어린것이 감히 옛 시절을 논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 바랍니다.

20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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