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비치마라톤에서 마라톤 신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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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08-23 21:47 조회2,4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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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비치마라톤에서 마라톤 신선이 되다.
1960년대 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남도 끝자락에서 국민학교만 오락가락하던 시절
무장공비 출현으로 연일 반공궐기대회와 웅변대회로 머릿속 깊게 새겨진 울진, 삼척!
그래서 삼척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장간첩으로 얼룩진 이데올기의 상흔 이였다.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여러 대회에 접하면서 삼척에서도 마라톤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참석해 기회가 되는대로 그 고장의 올바른 지식을 접하고 싶었다.
어릴 적 무장공비 출현으로 얼룩져 연상되는 삼척이 아니라, 바다와 어울려 최고의 마라토
너를 배출해낸 삼척을 새롭게 머리에 각인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삼척비치마라톤을 나홀로 참가하기보다, 동행한 런너들과 함께 뛰고 싶어서
기차표를 미리 예약해 놓고, 만남의 광장에 글을 올렸다.
이에 흔쾌히 응한 채흔호님과 김재왕님을 동해행 야간열차에서 만날 수 있었다.
상대를 충분히 배려해주기에 큰형님같은 채흔호님!
대학축제 때 단축마라톤 1위를 휩쓸고, 그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김재왕님!
낭만을 품은 야간열차는 캔맥주와 마라톤 경험담으로 무르익어
불과 몇 분전에 만났지만 몇 년을 함께 지내 온 지기(知己)처럼 느껴졌다.
하프 출발점인 삼척시청앞 목욕탕에서 밤새 타고 온 기차의 여독을 풀고
김재왕님은 10km 출발점인 황영조공원으로 카메라를 챙겨들고 먼저 갔다.
무릎이 별로 좋지 않아 10km만 조깅하듯 뛰고
우리 두 사람이 골인하면, 그 장면을 멋지게 촬영하겠단다.
시청 앞에는 어느 덧, 하프를 뛸 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국 달리기 꾼들이 모인 것이다.
여러 대회에 참가하다보니 낯익은 런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 중, 채흔호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마라톤 고수님의 경험담에는
놀랍다 못해 차라리 숙연해져 버렸다.
4월8일 경주벚꽃마라톤을 차를 몰고 가 참가하여 풀 코스를 4시간 30분대에 완주하고
다시 차를 몰고 전주로 가서 4월9일 전주군산간 마라톤을 5시간 30분대에 완주했다니......
겨우 하프만 뛰고도 다리 근육통 때문에 몇 일을 고생하던 나에겐
거의 꿈같은 이야기 였다. 그 인내력과 그 지구력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리요!!!
지방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이여선지 참가자가 별로 많지 않았다.
300여명의 하프주자가 출발 총성과 함께 달려나갔다.
평탄하던 주로라 마음놓고 달려나가니
대여받은 심박측정기에서 요란스러운 경고음을 울려댔다.
호흡이 고른 편이라 무시하고 달리려해도 오버페이스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왔다.
속도를 조금 낮출 수밖에, 그러나 경고음은 여전했다.
그래서 무시하기로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
몸이 서서히 풀릴만하자 대관령같은 고개가 앞에 버티고 있었다.
한치고개로 1km 이상을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다.
초반부터 나를 맥 못추게 만들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서자 발걸음이 가속이 붙었지만
심박계의 경고음이 오버페이스를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힘차게 나갈 수가 없었다.
길가에서 갈채를 보내며 물을 주던 삼척시민들의 인심은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를 배출해내기에 충분했다.
지루하고 힘든 코스에다, 더위에 지쳤지만
물을 퍼주며 응원해주는 삼척시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힘을 얻고 달릴 수 있었다.
사리고개에 못미처 약 14km 지점, 동두천에서 온 여중 육상선수를 조우하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채흔호님께서 가리키며 날렵하게 잘 뛰겠다던 바로 그 여중생 이였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사리고개에 이르자 나를 앞질러 나갔다.
어린 여학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번 퍽 쓰러지더니, 금새 일어나 달려나갔다. 어디에 걸렸었나 보다......
그런데 다시 또 넘어지지 않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달려갔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달리는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줄곧 옆에서 검정색 카니발 차를 몰고 독려하던 코치도
앞질러 가버린 상황 이였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저 어린것이 이 고갯길을 넘지 못하고 탈진해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사리고개 7부능선 쯤에 이르자 퍽소리와 함께 길옆으로 완전히 넘어져 탈진해버렸다.
어찌할 것인가? 이 사태를......
그러나 다행히도 바로 앞에 경찰차와 코치 차량이 그 어린 학생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황급히 달려오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을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제발 별탈 없이 빨리 회복되어야 할텐데......
초반에는 차량통재가 잘 되었는데
중후반부터 거의 통재가 되지 않아 차량들을 피해가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왕복 2차선 도로를 장시간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지 차량뿐만 아니라 피서온 차량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삼척시와 SAKA가 주관했다면
효과적인 차량통제를 가장 먼저 염두했어야 하지 않을까?
손님을 불러 길거리에서 뛰게 해놓고,
손님이 길거리에서 생명위협을 느끼면서 뛰게 해서야 되겠는가?
소나무 숲사이로 터널이 보였고 터널 저편에 드디어 골인 지점이 있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하면서 이미 늦어진 기록을 단축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이제까지 하프를 뛴 기록중에 가장 저조한 기록을 안은 채,
김재왕님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가장 멋진 폼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1:40:56)
사진이야 잘 찍든 못 찍든 결승선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힘든 레이스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홀로 흐느적거리는 것보다 땀이라도 닦아 줄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완주의 쾌감을 한층 더 통렬하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채흔호님께서 들어왔다.
무더위에, 가파른 고갯길에 차량을 피해가며 달린 무척 힘든 레이스 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있었기에 힘이 되었고 완주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함께 뛴 우리 세 명은 서로 진한 동지애를 가슴으로 나누며
땀으로 뒤범벅이 된 마라톤 복을 서로에게 비비면서 끌어안고
황영조공원 모형물 앞에서 완주기념촬영을 했다.
서로 만난 지 하루도 안된 그 짧은 기간에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끈끈하게 묶어 주었는가?
나이도 30대, 40대, 50대 서로 다르고, 태어난 곳도 천리 길만큼이나 떨어진 곳이기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했고, 서로 성(姓)씨마저 전혀 다른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한 몸처럼 기뻐하며 그 순간을 형님 아우처럼 지낼 수 있었는가?
그 것은 한계 상황을 인내하며 완주했다는 마라톤 특유의 쾌감이 서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마라톤신선주와 싱싱한 회가 어울려진 뒤풀이는 서로가 공유했던 마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우리는 다음 변산대회 때에도 또 다시 함께 출전해서
서로 끈끈한 마라톤 정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함께 동참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마라톤튜어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라톤튜어 회장님은 맏형님인 채흔호님께서 맡고, 총무는 김재왕님이 책임지기로 했다.
동행하여 서로의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싶으시다면, 다음 이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요.
cfelix_kr@yahoo.co.kr 채흔호
yshsdjw2000@yahoo.co.kr 김재왕
kbshw@dreamwiz.com 김현우
Ps. 사리고개에서 탈진해 쓰러졌던 여중생은 골인지점에서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2000/8/8
1960년대 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남도 끝자락에서 국민학교만 오락가락하던 시절
무장공비 출현으로 연일 반공궐기대회와 웅변대회로 머릿속 깊게 새겨진 울진, 삼척!
그래서 삼척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장간첩으로 얼룩진 이데올기의 상흔 이였다.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여러 대회에 접하면서 삼척에서도 마라톤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참석해 기회가 되는대로 그 고장의 올바른 지식을 접하고 싶었다.
어릴 적 무장공비 출현으로 얼룩져 연상되는 삼척이 아니라, 바다와 어울려 최고의 마라토
너를 배출해낸 삼척을 새롭게 머리에 각인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삼척비치마라톤을 나홀로 참가하기보다, 동행한 런너들과 함께 뛰고 싶어서
기차표를 미리 예약해 놓고, 만남의 광장에 글을 올렸다.
이에 흔쾌히 응한 채흔호님과 김재왕님을 동해행 야간열차에서 만날 수 있었다.
상대를 충분히 배려해주기에 큰형님같은 채흔호님!
대학축제 때 단축마라톤 1위를 휩쓸고, 그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김재왕님!
낭만을 품은 야간열차는 캔맥주와 마라톤 경험담으로 무르익어
불과 몇 분전에 만났지만 몇 년을 함께 지내 온 지기(知己)처럼 느껴졌다.
하프 출발점인 삼척시청앞 목욕탕에서 밤새 타고 온 기차의 여독을 풀고
김재왕님은 10km 출발점인 황영조공원으로 카메라를 챙겨들고 먼저 갔다.
무릎이 별로 좋지 않아 10km만 조깅하듯 뛰고
우리 두 사람이 골인하면, 그 장면을 멋지게 촬영하겠단다.
시청 앞에는 어느 덧, 하프를 뛸 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국 달리기 꾼들이 모인 것이다.
여러 대회에 참가하다보니 낯익은 런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 중, 채흔호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마라톤 고수님의 경험담에는
놀랍다 못해 차라리 숙연해져 버렸다.
4월8일 경주벚꽃마라톤을 차를 몰고 가 참가하여 풀 코스를 4시간 30분대에 완주하고
다시 차를 몰고 전주로 가서 4월9일 전주군산간 마라톤을 5시간 30분대에 완주했다니......
겨우 하프만 뛰고도 다리 근육통 때문에 몇 일을 고생하던 나에겐
거의 꿈같은 이야기 였다. 그 인내력과 그 지구력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리요!!!
지방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이여선지 참가자가 별로 많지 않았다.
300여명의 하프주자가 출발 총성과 함께 달려나갔다.
평탄하던 주로라 마음놓고 달려나가니
대여받은 심박측정기에서 요란스러운 경고음을 울려댔다.
호흡이 고른 편이라 무시하고 달리려해도 오버페이스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왔다.
속도를 조금 낮출 수밖에, 그러나 경고음은 여전했다.
그래서 무시하기로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
몸이 서서히 풀릴만하자 대관령같은 고개가 앞에 버티고 있었다.
한치고개로 1km 이상을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다.
초반부터 나를 맥 못추게 만들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서자 발걸음이 가속이 붙었지만
심박계의 경고음이 오버페이스를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힘차게 나갈 수가 없었다.
길가에서 갈채를 보내며 물을 주던 삼척시민들의 인심은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를 배출해내기에 충분했다.
지루하고 힘든 코스에다, 더위에 지쳤지만
물을 퍼주며 응원해주는 삼척시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힘을 얻고 달릴 수 있었다.
사리고개에 못미처 약 14km 지점, 동두천에서 온 여중 육상선수를 조우하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채흔호님께서 가리키며 날렵하게 잘 뛰겠다던 바로 그 여중생 이였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사리고개에 이르자 나를 앞질러 나갔다.
어린 여학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번 퍽 쓰러지더니, 금새 일어나 달려나갔다. 어디에 걸렸었나 보다......
그런데 다시 또 넘어지지 않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달려갔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달리는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줄곧 옆에서 검정색 카니발 차를 몰고 독려하던 코치도
앞질러 가버린 상황 이였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저 어린것이 이 고갯길을 넘지 못하고 탈진해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사리고개 7부능선 쯤에 이르자 퍽소리와 함께 길옆으로 완전히 넘어져 탈진해버렸다.
어찌할 것인가? 이 사태를......
그러나 다행히도 바로 앞에 경찰차와 코치 차량이 그 어린 학생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황급히 달려오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을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제발 별탈 없이 빨리 회복되어야 할텐데......
초반에는 차량통재가 잘 되었는데
중후반부터 거의 통재가 되지 않아 차량들을 피해가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왕복 2차선 도로를 장시간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지 차량뿐만 아니라 피서온 차량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삼척시와 SAKA가 주관했다면
효과적인 차량통제를 가장 먼저 염두했어야 하지 않을까?
손님을 불러 길거리에서 뛰게 해놓고,
손님이 길거리에서 생명위협을 느끼면서 뛰게 해서야 되겠는가?
소나무 숲사이로 터널이 보였고 터널 저편에 드디어 골인 지점이 있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하면서 이미 늦어진 기록을 단축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이제까지 하프를 뛴 기록중에 가장 저조한 기록을 안은 채,
김재왕님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가장 멋진 폼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1:40:56)
사진이야 잘 찍든 못 찍든 결승선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힘든 레이스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홀로 흐느적거리는 것보다 땀이라도 닦아 줄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완주의 쾌감을 한층 더 통렬하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채흔호님께서 들어왔다.
무더위에, 가파른 고갯길에 차량을 피해가며 달린 무척 힘든 레이스 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있었기에 힘이 되었고 완주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함께 뛴 우리 세 명은 서로 진한 동지애를 가슴으로 나누며
땀으로 뒤범벅이 된 마라톤 복을 서로에게 비비면서 끌어안고
황영조공원 모형물 앞에서 완주기념촬영을 했다.
서로 만난 지 하루도 안된 그 짧은 기간에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끈끈하게 묶어 주었는가?
나이도 30대, 40대, 50대 서로 다르고, 태어난 곳도 천리 길만큼이나 떨어진 곳이기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했고, 서로 성(姓)씨마저 전혀 다른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한 몸처럼 기뻐하며 그 순간을 형님 아우처럼 지낼 수 있었는가?
그 것은 한계 상황을 인내하며 완주했다는 마라톤 특유의 쾌감이 서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마라톤신선주와 싱싱한 회가 어울려진 뒤풀이는 서로가 공유했던 마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우리는 다음 변산대회 때에도 또 다시 함께 출전해서
서로 끈끈한 마라톤 정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함께 동참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마라톤튜어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라톤튜어 회장님은 맏형님인 채흔호님께서 맡고, 총무는 김재왕님이 책임지기로 했다.
동행하여 서로의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싶으시다면, 다음 이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요.
cfelix_kr@yahoo.co.kr 채흔호
yshsdjw2000@yahoo.co.kr 김재왕
kbshw@dreamwiz.com 김현우
Ps. 사리고개에서 탈진해 쓰러졌던 여중생은 골인지점에서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20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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