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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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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찬오 작성일07-08-15 22:07 조회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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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1일 혹서기 마라톤에 출전하여 그야말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날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반환점에서 마지막 턴을 할 때 다리가 풀리고 의식이 흐릿하여 몸을 가누지 못해 대회관계자 분들의 도움으로 승용차에 실려 원두막 그늘로 이송되어 휴식을 취한 후 간신히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저도 놀랐고 저희 집사람도 너무 놀라 어쩔 줄을 모르다가 기력을 회복하니 그래도 家長이 죽지않고 살아나 준 것에 대해 감사해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미울 텐데도 사고로 죽는구나 생각했다가 살아나 준 것이 고마웠던지 밤새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한 것에 대해 안도하고 진실로 감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99년도 동아마라톤에 처음 참가하여 4:16분으로 완주한 후 기록을 조금씩 단축하여 2005년 중앙일보 마라톤에서 2:57분으로 처음 sub-3를 달성하였고 금년 동아마라톤에서는 2:55:06초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마라톤 입문 9년차에 풀코스 36회 완주기록을 갖게 되었으며 한번도 중도포기 없이 완주한데다 sub-3 기록도 달성하여 제 자신은 스스로 마라톤을 어느 정도 한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 였습니다.

서울마라톤과는 인연이 없다가 작년 추석연휴 때에 울트라 연습 주 63km에 참가하여 당시 채성만님과,노명진님,윤석화님,박순례님,이성환님외 몇 분과 함께 달린 후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 11월 100km 울트라에 참가하였고(9:44분),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꼭 반달에 참가하여 왔습니다.

혹서기 대회는 예년엔 참가신청 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참가하지 못하다가 작년 울트라참가자에 주어지는 자동출전권으로 이번에 처음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반달에서 두 번에 걸쳐 실시한 대공원 연습 주에 참가하였고 1주일 전에 실시한 연습 주에선 하프코스를 1:37분에 주파한 바 있어 3:20~3:30정도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레이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마라톤클럽(남달모)의 김철용 선배가 100회 완주를 달성하는 날이어서 클럽회원 모두가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참가하였는데 저는 왜 기록을 염두에 두고 출전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금년 가을엔 기록을 좀 단축할 욕심이 있었고 여름 훈련의 일환으로 혹서기 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한번 뛰어보자는 생각이 내심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0회 완주자 여섯분에 대한 시상과 최초의 풀 코스 참가자에 대한 시상 등으로 축제 분위기에서 출발하였고 대공원을 두 바퀴 돌아 동물원 북쪽 왕복순환도로에 접어들어서는 상당히 앞쪽에서 달리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주력이 좋은 몇 분을 추월하여 하프를 1:43분에 돌았고 응원하던 집사람이 자꾸 천천히 뛰라는 말을 하였지만 왕복도로 3바퀴를 돌 때 까지만 해도 충분히 페이스를 지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고기록은 엇비슷한 같은 직장의 김영아씨가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어 절대적인 훈련량의 부족과 혹서기의 험난한 코스, 무더운 날씨 등을 잠시 간과하고 페이스를 다소 오버하여 달린 것 같습니다. 4번째 바퀴에선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하였고 급수대에선 멈춰 서서 물을 마시기 시작하였으며 신체적인 한계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영아씨가 언덕길을 힘차게 오르며 저를 추월해 갔고 저는 4바퀴째 피니쉬라인이 다가오자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응원하던 집사람과 클럽 식구들을 향해 이제 그만 뛰어야겠다고 말을 하였지만 집사람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고 마지막이라고 힘내라고 하는데다 36번 완주하는 동안 한번도 중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중도포기 후 나중에 클럽회원 들과 뒤풀이 할 때의 씁쓸한 기분, 천천히 걸어서라도 완주하면 되지 하는 생각 등이 교차하여 피니쉬라인을 통과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다시 턴을 하여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집사람은 턴을 하여 올라가던 모습을 작년 100km 울트라마라톤 골인하던 모습처럼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바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달린 것 같습니다. 중간에서 클럽(남달모)의 신동기 회장님을 만났는데 힘들면 함께 천천히 뛰었으면 될 텐데도 불구하고 굳이 회장님을 추월하여 힘들게 언덕길을 올랐으며, 어서 빨리 마지막 바퀴를 돌아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폭포수에 몸이라도 담그고 했으면 그날 사고는 없었을 텐데 힘들고 속도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쉼 없이 가자! 그 동안 한번도 극한 상황까지 못가봤는데 오늘 한번 가보자! 그래야 실력이 좀더 업그레이드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갔습니다.

마지막 반환점이 저 언덕을 넘어서면 있는데 왜 없지? 또 다시 저 언덕을 넘어야 나오나? 마지막이라 반환점을 좀더 뒤로 옮겨 놓았나? 어서 빨리 내리막을 달려 반환점에서는 좀 쉬자! 온통 이런 생각들로 이미 그 땐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달린 것 같습니다. 반환점에 다 왔다고 생각하고 속도를 늦추는 순간 클럽의 이신옥선배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환청처럼 느끼며 휘청 넘어졌고 대회 스텝 분들이 어! 어! 하며 저를 부축하였으며, 괜찮다고 하며 일어 나려고 하였지만 주위가 빙빙 돌면서 쓰러지자 스텝 분들이 부축하여 승용차에 태우고 원두막으로 이송하여 응급처치를 해 주었습니다.

원두막에 한참동안 누워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고 별별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꼭 생명보험에 가입해야 겠구나! 내가 죽더라도 애들 교육은 시켜야 할 텐데! 평소에 컨디션이 안 좋아 중도 포기하는 후배들이나 지인들을 보면 포기할 수 있는 것도 훌륭한 자세라고 말해온 자신이 부끄럽고, 정작 자신은 그런 용기도 없으면서 말만 앞세운 것 같아 창피하고 그랬습니다.

자원봉사 하시던 윤석화님의 헌신적인 도움(눈물겹도록 고마웠습니다)으로 간신이 몸을 추스르고 열무비빔밥과 미역냉채 국을 먹으니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마터면 큰일날뻔 하였다고 클럽 사람들의 염려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니 100회 완주달성의 축제 같은 대회에서 9년차의 마라톤 경력이 무색해지고 죄송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악명 높은 혹서기 대회를 너무 쉽게 생각하였고 무더운 날씨와 언덕길을 반복해서 달리는 것이 얼마나 체력소모를 많이 가져오는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였습니다.초반에 페이스를 오버한데다 4바퀴를 돌아 피니쉬라인에 왔을 땐 신체적인 한계상황을 분명하게 느꼈지만 과감하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을 가졌던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엔 정신이 몽롱한 게 열 피로증과 열사병 증세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여 스텝 분들의 적절한 도움이 없었더라면 큰 사고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기만 합니다.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한 활력소로 달리기를 시작하였고 재미가 들어 계속 하다 보니 달리기가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싶은 데 그러기 위해선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진정한 용기임을 이번 혹서기 대회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으니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석화님의 정성어린 도움을 받으면서 기회가 되면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에 참가하리라 마음먹게 된 것은 혹서기 대회가 저에게 가르쳐준 또 다른 귀중한 교훈입니다. 아무튼 곡절 많았던 2007년8월11일 서울대공원에서 실시된 혹서기 마라톤대회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평생 잊혀지지 않을 마라톤대회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 8.14

혹서기 대회에서의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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