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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답글 : 소중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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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5-02-01 14:12 조회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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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김 복희님,

안녕하세요.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입니다

제가 지금의 내 아내 김 영희씨 댁 ( 연애할 때 )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김 영희씨 방의 네 벽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꽂혀 있는 레코드 판을 보고,
아 이 여인과 결혼하면 저 레코드 판은 전부 내꺼다! 라는 흑심을 품었지요.

그리고 육개월 후 우리는 결혼했는데, 결혼 날자를 받아 놓고 우리가 제일 먼저
달려가 장만 한 것은 오디오 이었지요. 그러나 나의 욕심은 거기서 끝.

아내는 동생 ( 나한테는 처제 ) 이 셋 이나 있어 그 동생들이 말하길, 언니 시집
갈 때 레코드 판 단 하나라도 가져가려면 차라리 우리를 죽이고 가져가 라는 엄포
때문에 아내 김 영희는 레코드 판 단 한개도 가져 오지 못했지요.

님의 오늘 글을 읽으니
제가 처음으로 아내의 방에 들어 서서 잔뜩 주눅들어 보았던 아내의 그 레코드판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신혼 때 둘이서 들었던 주혹같은 외국 가수, 밴드들의 레코드
음악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먼지 앉은 그 판 하나를 꺼내서 올려
놓고 음악을 들어 보렵니다. 베일리 한 잔과 같이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박 복진




김복희 님 쓰신 글 :
> 침샘을 자극해서 약간 고슬거린 쌀밥을 천천히 아주 게으른 듯 밥상에(식탁이 절대 아님) 턱 괴고 앉아서 씹으면 미세하게 흐르며 잇사이로 스미는 단맛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요? 옛 기억들을 더듬으면 그렇게 쌀밥에서 흐르는 아주 깊고 오묘한 단맛이 -좋은 기억이든 싫은 기억이든- 나지요.
>
> 1980년도에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장엘 들어가서 첫 월급을 타자 그 첫 달부터 바로 적금을 부었습니다. 조*은행이 회사 거래은행이었기에 월급에서 바로 공제하고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은행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도 덜을 수가 있었고요.
>
> 이런저런 특별수당이니 뭐니 까지 해서도 첫 월급이 15만원 정도였으며 그때 일반 관리직 여직원들은 10~12만원이 조금 넘은 월급이었으니 그래도 제겐 많은 액수였지요. 제가 근무한 부서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여직원들보다 조금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실 참~적은 액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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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원은 적금부터 넣고 남은 돈으로 요모조모 쪼개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매월 가장 큰 사치가 집에는 있지도 않은 오디오에 끼워 넣을 레코드판을 1장씩 사서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너스가 나오는 달은 더블 판을 사구요.
>
> 지금까지 한 장도 버리지를 못하고 보듬고 사는데 한 200장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에 비하면 몇 장 되지 않은 거지만 제겐 아주 소중한 버릴 수 없는 추억의 재산이거든요.
>
> 그러기 전에는 청계천 6가인가? 동대문 근처에 레코드 판매점이 많은 곳에 가서 카셑트 테입을 앞뒤 빼곡히 녹음해 와서 듣는 게 가장 큰 사치이자 취미였지요. 사실 오디오가 없으니 들을 수도 없으면서 배도 안 부르고 먹을 수도 없고 단맛, 신맛, 그렇다고 쓴맛 아무 맛도 없는 레코드판을 하나씩 사서 모으는 저를 동생들은 한심한(?) 눈으로 쳐다 볼 때도 있었지만 제겐 꿈이 있었거든요.
>
> 왜 그러잖아요? 길 가다가 삐꾸 주으면 기타 산다고^^ 그러기를 1년. 적금 타는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 대리점으로 달려가 오디오를 무작정 그 돈 범위 안에서 60만원 정도에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설치하던 날, 밤을 새워서 그동안 사서 모았던 레코드판에 바늘 올리느라고 이부자락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수 차례 반복했지요.
>
> 애인보다 더 소중하게 손으로 쓰다듬으면 혹여 거칠어진 손바닥 때문에 결이라도 생길까봐 크리너로 닦고 또 닦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품안에 깨지지 않게 살며시 품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품안에 품고 있으면 누군가가 속삭여 주기라고 하듯이) 내게 그 레코드판이 가장 큰 사치이고 재산이었으며 다른 세상으로 날 손잡고 이끌어주는 새로 닦은 길처럼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
> 오랜 기억 속의 아버지 건넛방에 있었던 붉은 자주색에 원앙이나 공작이 자개로 그려져 있던 호마이카 미닫이 금*전축에서 흘러나왔던 나훈아의 "돌담길..." 어쩌고저쩌고 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들과는 질과 수준이 현저히 차이가 날것만 같은, 내게는 다가 갈 수 없는 영역이었는데 제가 손수 적금 타서 마련했으니 이리봐도 저리봐도 그 검은색 일색이었던 왜관의 오디오는 내 혼을 홀딱 빼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
> 이젠 레코드 가게에 가서 공테잎에 빼곡히 녹음해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쿵쿵 울리는 저음에서 고음까지 내가 조정해 가면서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
> 자다가도 일어나 텐 테이블 위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크리너로 닦고 또 닦고... 혹여 너무 닦으면 레코드판 닳을세라 손끝으로 레코드판 끝을 조심스럽게 잡아가며 얇은 속종이 속에 다시 집어넣길 수 차례 반복하며 듣고 또 듣고...
>
> 혹여 바늘이 끝에 가서 지지직거리면 레코드판 상할까봐 끝나기를 레코드 판 위에 고개 숙여 기다리다 바늘을 내려놓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간이었으니 말해서 뭐하랴 싶습니다.
>
> 2년전 선배가 레코드판이 많은데 호주로 이사 가려고 하니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냉큼 받아왔지요. 그걸 받아 놓고 나니 복권 당첨된 기분에 비할 바가 못되더군요.
>
> 하지만 이렇게 아끼고 수중 한 걸 받아선 안되겠다 싶어서 호주로 이사간 선배언니한테 메일을 보냈습니다. 너무 소중한걸 제가 받은 것 같으니 혹여 이다음에 필요하실 때 말씀하시면 보내 드리겠다고... 왜냐하면 그건 제가 레코드판을 모아 봐서 알지요.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
> 하긴 지금이야 모두들 턴테이블 위에 레코드판 올리고 바늘 조심스럽게 올리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누가 레코드판 듣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 그 소리 나 하지 말걸..^^ 그 소리하기 바쁘게 언니가 필요하다고 다시 보내줄 수 없냐고 하니 주인은 제가 아니므로 다시 보내 드릴 수 밖에요.
>
> 하지만 가끔씩 선물로 받는 CD는 왠지 정이 가질 않습니다. 선물 주는 사람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까지 포장도 뜯지 않고 있는 게 허다합니다.
>
> 뭐 랄까 요... 레코드판 위에서 바늘이 지지직거리며 지나가는 걸음걸이를 보노라면 함께 바늘 지나는 자리 따라서 탱고라도 추고싶은 마음이 들지만 CD는 왠지 인간적인 냄새를 거부하며 혼자서 논다고 해야 할까요?
>
> 제가 음악의 깊이를 몰라서도 이겠지요. 하지만 왠지 제겐 그렇습니다. 바늘이 지나가는 자리에 눈길을 주면 어쩔 때는 레코드판의 숨소리와 더불어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해상력이 보여지지 않음에도 제 가슴으로는 감지가 된다는 거였지요.
>
> 오늘은, 오늘 날씨의 청냉함과도 어울릴듯하여 등불과 달빛이 밝기를 경쟁하듯 실가지 사이에서 빛자락 춤사위를 보낼 시간쯤에 오래된 턴테이블을 닦아서 바늘을 올려볼까 합니다. 근데 바늘이 없네...
>
>
>
> 옛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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