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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가지 하나 목숨으로의 마라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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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5-01-28 22:14 조회4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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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가지 하나 목숨으로의 마라톤여행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민족 최대의 비극 6. 25가 발발되어 거의 1 년여가 흐른 한 여름,
대둔산의 남쪽 끝자락 조그만 산골 동네에서 개나리 봇 짐 몇 개,
세간 살이 몇 점, 식솔들을 당장 끓여 먹일 부엌 살림도구 몇 가지 주절주절
이고지고 자식들 한데 모아 무리지어 피난을 떠나는 한 식구가 있었다합니다.

조상대대로 이어 온 산골 마을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이유는
밤마다 산속에서 내려와 쌀, 콩, 보리 등, 식량을 약탈해 가는 빨치산이 무서웠고,
전기불이 있을 리 없는 칠흑 같은 산골짜기 스무 채도 안 되는 마을에
밤마다 볶아대는 빨치산의 따발총 소리에 소름이 돋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어도 개명된 너른 들판에서 죽겠다고 산골마을을 등지고 너른 들로
이사를 가던 그 무리는 조금 더 큰 면 소재지를 지나자 같은 이유로 피난길에
오른 또 다른 무리와 어우러져 웬수같은 산골 동네를 떠나 너른 들녘으로,
들녘으로 가는 신작로 길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합니다

그러던 도중 이제 겨우 두 살인가 , 세 살인가 하는 사내 아이 하나가 피난민들
틈에 끼어 밀치고 달치며 겁먹은 얼굴로 일행을 따라 끌리어 가다가 엄마 손을
놓치고 흐르는 시냇물 물살에 그만 휩쓸려 떠내려 갔다합니다.

엄마는 화들짝 놀래 들고 있던 세간살이를 패대기치고 사람 살려 !! 라고
울부짖었고 이를 본 어느 용감한 청년이 물속에 뛰어들어 그 아이를 구해
주었다 합니다. 엄마는 이 아름다운 청년에게 감사 사례를 하려하나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들고 있던 쌀바가지 하나를 건네주며 자식의
목숨을 구해주신 그 고마움에 , 고마움에 두 손을 부여잡고 끊임없이 고맙단 인사를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처럼 초라한 사례밖에 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해
몸 둘 바를 몰라 그 바쁜 피난길에도 더 한참이나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합니다.

그 피난길의 그 식솔들은 바로 지금은 돌아가신 저의 부모님이시었고,
쌀바가지 하나와 목숨을 맞바꾼 그 아이는, 그 얼마 후 바로 세상을 떠나가서
이듬 해 태어난 저와는 눈 한번 마주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저의 바로 위 형
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그 때의 그 고마운 청년에게 낡은 쌀바가지 하나로
고마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두고두고 말씀하시며, 지금만 같아도 돈을
얼마 드릴 수 있었을텐데, 지금만 같으면 모시고 와서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 드릴텐데,
지금만 같으면 이름 석자, 주소라도 알아 놔서 명절 때만이라도 고기 몇 근이지만
보내 드릴 수 있을텐데.. 라고 하시며 매우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저는 자라면서
많이 보았습니다.

비록 그 자식은 얼마지 않아 하늘나라로 가버려 그 엄마의 마음에 대못을 박게 만들
었지만 당신은 은혜를 입은 그 청년에게 합당한 보은을 하지 못한 게 그렇게도 가슴이
아팠던 게지요. 황망히 피난길에 오른 마당에 연필 한 자루 있어서 이름을 적었겠습니까?
전화번호는 고사하고 전화라는 명사를 알아 후일 연락을 위해 묻고 대답했겠습니까?
그러나 돌아가신 저의 모친은 은혜를 입으신 그 사실 하나로, 그 젊은 청년에게 마땅한
보은을 하지 못한 죄책감 하나로 평생을 살면서 많이 아쉬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곳 그 시냇가가 어디인지, 나와는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세상을 홀연히 떠나 하늘나라로 가버린, 쌀바가지 하나와 목숨을 바꿨던 그
형은 어떻게 생기었는지, 마치 옛날 이야기 속 어떤 비밀의 문처럼 자라면서 문득문득
상상의 문을 기웃기웃 거려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 사실에 가장 근접하게
접근해 보려는 시도를 해 보려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자라면서 가끔씩 들은 노모로부터의 이야기와, 어릴 적 빈약한 내 상상력이 일군 초라한
기억은, 오래 전 무릎도리 상채기 마냥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상태로 사라지지 않고
생명력 길게 내 기억 언저리에 맴돌아 자리 잡고 붙어있었지요. 똑 그 자리는 아닌지만,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면 감과 곶감이 많이 나는 고산 근처 화산 어느 마을, 큰 구렁이가
들어갔던 구렁먹이라던가요? 소를 메어 놓으면 송아지가 다가와서 젖을 먹인 쇠젖메
라던가요? 골이 깊어 사람 왕래가 뜸한 곳 골뜸이라던가요? 그도 저도 아니면 바로 그
위 윗말이라 하던 마을이던가요?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운명은 저를 그곳으로 인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을 가보려 합니다. 이번의 제 1 회 전주 울트라 마라톤 100 km 대회가
내 유년 시절 상상 속 마을 그 근처를 통과한다 하니, 열일 제쳐놓고 저는 가보겠습니다.
저는 가서 그 근처를 밤을 세워 가며 두 눈 가느다랗게 뜨고 뛰어 보려 합니다.
내 유소년 시절, 내 상상의 문을 그렇게도 많이 기웃거리게 만든,
내 사랑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렇게도 애타게 만들었던 그 시냇가, 그 산골 마을의
기억 속 나라를 찾아 그곳에 가서 뛰어 보려 합니다. 어차피 희미한 상상 속 마을 그리고 그
시냇가, 낮인들 더 잘 보이겠습니까? 밤인들 더 잘 들리겠습니까?

저는 기다립니다.
정월, 이월 다 지나고 춘삼월 진달래 개나리 널 부러진 내 고향 완산골, 전주 울트라 마라톤
100 km 그 날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월남해서 북에 두고 온 산하를 그리며 날밤을 희미해져
가는 이북 고향산천 기억으로 애간장을 끓이고 계신 이북 이산가족보다 더 진한 감정으로
저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3 월 26 일을 기다립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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