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못 꾸어 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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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남 작성일05-01-13 09:56 조회6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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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2003년 언제까지
오랜 시간 함께 했었다.
이젠 그 기억들
야윈 잔설처럼 듬성거린다.
매년 3월 첫 일요일이면
겨울, 혹독한 사지의 훈련을 마친
먼데의 건각들은 한강으로 한강으로 몰려들고
그런 날은 우리는 또 한 번
새벽에서 늦은 밤으로 한바탕 분주한 날
내리고 설치하고 다시 올리고…
그러다 허기지면 등 돌아 몰래 컵라면
두어 개를 뚝딱,
팀장이란 명찰이 무색하게도 나는
유독 배고픔을 못 참는 주린 하이에나였다.
2.
나이 들어 이젠 힘이 부치나 보다.
2004년 7회부터 불참했다.
누가 회초릴 든 것도 아닌데
천성이 게으른 탓에 어울림에 무뎌졌다.
만나면 반가운, 그래도 옛정은 있었던가.
얼마 전, 내어 민 손들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시청을 출발한 남산 길
너무 추워, 남산이 너무 추워
못 다한 악수 뒤에 두고 슬그머니
10km 대회를 5km에서 기권하고는 와 버렸다.
그래도 한 때는 일본 아마가사끼를 사로마를
광풍으로 호령하던 내가 솔가지 사이로 등 감추어
기권, 몰래 와 버렸다.
언제 또 만나면……. 그래,
우리가 한 솥밥을 한 두 끼 먹었더냐?
이대로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또 보자.(현수형님 오늘 전화 고마웠다.)
3.
잠원동에 사는 채 씨라는 사람이
동아에서 내기 하잔다.
택도 아닌, 몇 분 준다고
심약한 날 꽤서는 내기 하자고
고래심줄 같은 내 돈 탐내어 꼭 내기 하자고
키는 째깐한 사람이 어찌나 깐죽거리던지
홧김에 내기를 했는데
동아 2주 앞, 나의 마라톤 고향
서울마라톤에서도 꼭 뛰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두 번씩은 못 뛴다 했더니
불똥 튀는 저 핏발 선 눈으로
“콱 죽여 버려 씨발!”
휴~
우리 아버지는 일찍 돌아 가셨고
나는 닭 모가지 하나 못 비틀고
……, 깔 수밖에.
줄잡아 100명은 모일 것 같은데
모여 밥, 술, 고기, 다 사 줘야 할 텐데
아파트값은 자꾸 떨어지는데
그 사람은 50평, 나는 30평, 쨉도 안되는데
나 지면 전쟁이나 안 날랑가 몰라.
4.
오늘 윤현수 앞으로 4만원 보냈다.
대회를 주관하던 내가 그 대회에 참가자 신분으로
참가를 한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 했던가.
꿈도 못 꾸어 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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