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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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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12-14 15:05 조회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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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달리기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약 4 , 5 년 전에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의 워싱턴에 갔었습니다. 그 때에는 나의 미국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 다른 감흥을 기대하고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른 각도로 가슴이 야릇하니 설래이었습니다. 왜냐면 내가 그곳에 갔었던 목적이
좀 특이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15 살 때부터 거의 35 여 년 동안을 펜으로만 사귀어 오던 소위 말해서 펜팔
여자 친구를 처음으로 만나보러 나는 그곳에 나의 아내와 함께 갔던 것 입니다.
잠시만 조금 멈춰서 생각해 보십시오. 목소리 한 번 안 듣고, 얼굴 한 번 안보고
외국 벽안의 소녀를 상대로 35 년 동안 편지만 교환하며 우정을 유지해온 저의
우둔함을. 군대 갔다 와서 보니 옛날 주소가 몽땅 없어져버려 그 후 10 여 년
의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어, 다시 이어진 파란 눈 미국 펜팔 소녀 주소를 가지고
이역만리 마다하지 않고 만나러 갔던 이 엉뚱함을...

공항에 딸 둘과 남편을 데리고 나와서 나를 반기던 그 미국 펜팔 부인 그 어느 곳에
서도 내가 가지고 갔던, 그 소녀가 나에게 줬던 35 년 전의 긴 생머리 미국소녀의
흑백 사진 모습은 없었습니다. 이미 손녀 딸 하나를 가진 딸 셋, 아들 하나의 50 대
중반 미국 할머니는 그러나 얼굴 가득히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나의 아내를
금방 알아보고서 또박또박 아주 바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았었지요.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을 빠져 나오던 승객 중 동양인은 우리 둘밖에 없었으니 금방
알아보았겠지요. 같은 이유는 아닌데도 아내도 직감적으로 말하더군요. 저기 저
네 사람 서 있는 저 사람들이 긴 것 같아요, 라고 말입니다.

좌우지간 35 년간 계속되었던 우리들의 편지 우정을 하룻밤 사이에 다 풀 수는 없었지만,
우리 둘은 늦은 밤 호텔 바에서 그 동안 편지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고,
관객의 입장에서 나의 아내와 그 미국 소녀의 식구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자리를 같이
해 주었지요. 참 보기 드문 만남이었고, 흔치 않는 자리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아니 이제는 50 중반의 그 할머니 내 펜팔 친구는 버지니아의 샤롯스빌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평생을 자폐아를 돌보는 직업으로 살아온 마음씨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펜팔 친구의 편지에서 나온 자폐아라는 영어 단어를 몰라 사전을 찾았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오늘 또 다시 그 할머니로부터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이메일 (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제
편지가 아닌 이메일로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을 받고 보니 내가 그곳에 갔을 때,
그 때도 딱 이만한 겨울이었는데, 입김 풀풀 내며 백악관 앞을 뛰던 생각이 납니다.

늦은 밤 새벽까지 정담을 나누다가, 늦게 잠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하며 나는 생각했었지요.
그래, 여기 까지 왔는데 내일 새벽 여기 호텔에서 백악관까지 한 번 뛰어 보아야지.
아직 한국의 달림이들 중 나처럼 백악관을 뛰어 본 사람이 있을까? 라는 약간의 으시댐도
없지 않았지요. 네, 숨기지 않겠습니다.

불과 두 시간도 못되는 토막 잠을 자고 새벽 5 시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근무 중인 접수대 직원에게 시내 지도 한 장을 얻어 형광 볼펜으로
백악관 가는 길을 표시 해 달라하고 그걸 접어 손안에 넣고 새벽의 워싱턴을 달리기 시작
했습니다. 요리저리 몇 번 우회전, 좌회전을 해서 이제 백악관으로 가는 펜실베니아 대로
에 올라섰습니다. 생각만큼 백악관은 일반 주거지역에서 멀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백악관을 바라보는 정문, 도로 앞까지 뛰어와서는 걸음을 멈추고서 가만히
백악관을 바라보았습니다. 저게, 저것이 , 저 안에서 세계를 주무르는 모든 권력이 나온
단 말인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그 규모의 왜소함에 나는 조금은 실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그 소규모의 하얀 집에 대한 우러름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걸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내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그들은 세계의 중심
이었고, 세계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들은 꿰차고 앉아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들은 세계의 현장에 자기를 대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주변은 아주 조용했습니다. 순찰 경찰차가 걷는 속도보다도 더 느리게 왔다갔다 하는 게
보일 뿐, 도로 가장 자리에는 관광 기념엽서, 뱃지를 파는 리어커 행상 하나가 꼭두
새벽부터 나와 막 보따리를 풀고 있는 모습이 아주 평화로워 보입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뜀질을 시작해서 담을 따라 백악관 건물 뒤쪽으로 달려 가
보았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수 도 없이 익히 보았던 뜰, 나무, 분수들이
전혀 낯이 설지 않았습니다. 이곳이 백악관이라고 아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평범한 장소에 있는 평범하니 작은 건물, 심지어 한쪽으로 더
뛰어가니 그곳은 하수구 공사를 하는지 땅을 파헤쳐 놓았고, 위험이라는 작은 팻말
하나 뎅그러니 서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잘 안되는 너무 수수한 주변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뒤돌아서서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돌아오면서는
왔던 길이 헷갈려 몇 번을 골목을 돌고, 또 돌고 돌아 겨우 호텔을 찾을 수 있었던,
아주 평범한 외국 출장길 새벽의 나의 어느 뜀질이었습니다.

한동안 뜸했다가 오늘 아침 보내준, 35 년 된 내 미국 펜팔 친구 페기 할머니의
이. 메일이 데려다 준 나의 백악관 앞에서의 새벽 뜀질의 추억, 그 때도 겨울의
초입 이맘 때 이었었지요.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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