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와 결별을 선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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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장호 작성일04-12-02 19:57 조회1,4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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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어느 날 청청벽력과도 같은 C형 간염 진단을 받고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절망감으로, 이제 ‘이 세상을 정리해야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주체할수가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린 아이들을 여린 아내에게 어떻게 부탁을 해야 할지?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그리고 연로하신 할머니와 아버님과 어머님께는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포기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 최선을 다해보자는 것이었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6개월간의 인터페론 치료와 더불어 철저한 식사관리와 운동을 병행하여 2년 만에 완치되었다는 주치의의 치료 종료 선언을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운동만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으로 수영, 헬스, 검도, 등산 그리고 마라톤 등을 주변에서 부러워 하리만큼 열심히 해왔고 이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공중파를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성공사례 등으로 방영되고 인쇄되기도 했었다.
10년도 안된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즉흥적이고, 기획적이고, 연출적인 것이었던인가?
몹쓸 병들어 힘들게 치료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은 사실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점점 나태해지기 시작하더니, 자만과 게으름, 그리고 무계획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생활로 변해 지금은 실패 사례로 다루어도 좋은 소재가 될 만큼 엉망이 되어 버렸다.
한두 잔은 괜찮다는 주치의에 말에 호프 한두 잔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것이 점점 참이슬, 위스키, 꼰냑 그리고 폭탄, 사정, 금태, 충성, 폭포 등등 수없이 많은,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할 놈들과 너무 가까워져서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퇴근 후에 이놈들과 놀기 시작하면 적어도 예닐곱 시간은 놀아야 했고, 그것도 한 장소와 한 종류로는 너무 지루하다고, 장소를 몇 차례 옮겨가며, 종류도 몇 가지를 바꿔가며, 이것도 부족해서 가끔은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놀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인사불성이 되어 어떻게 집으로 들어 왔는지 기억조차 없는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 후유증은 어떠한가?
출근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푸륵푸륵거리며 자고 넘을, 그래도 남편이라고 아내는 출근은 시켜야겠기에 밉지만 깨워 해장국 차려주면, 위장에 남아있는 술독 때문에 한수저도 못 뜨고 넘어가다 남은 것 화장실로 뛰어가 확인하고, 결국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출근하면, 입에서는 술 냄새로, 머리에는 혼란함으로, 사지는 손 떨림으로 동료 직원들 눈치 보아야하고,
여기에 조금 더하면 위장에 고여 있던 썩은 알코올과 부산물로 범벅이 된 이물질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지 못하고 위로 올려 보내는 일들이 버러지기 시작하고, 주변 눈치 살피며 빈 화장실 찾아 들어가 주변에 사람 없는 것 확인한 후에야 꾸역꾸역 거려야 하는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누런 물이 넘어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 ‘이 화상아 너 왜 이렇게 살아야하니’라고 후회해 보지만.......
그 뿐인가. 기분 좋은 이슬이 한 병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슨 말을 누구에게 어떻게 했는지?
가위질 당한 영화처럼 중간 중간이 빠지고, 결국 불안해서 같이 있던 놈들에게 전화해서 별일 없었는지 물어 확인을 해야 하고, 그래도 잃어버린 기억은 모르니까 속편한데, 해서는 안 될 이야기, 상대방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쏟아버린 이야기, 지키지 못할 약속 또는 객기로 내 뱉은 거짓말 등이 뚜렷이 선명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를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없고, 집에 몇 시에 들어왔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만취가 되어,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광란의 후유증이 시작되었고, 마침 등교하지 않는 토요일이라 집에 있던 딸 아이 앞에서 아빠로서 보여서는 안 될 일들이 버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아빠 이제 술 끊으셔야 되겠어요.”라는 한마디에 적어도 부모로서 자식에게 지켜야할 아빠의 최소한의 도리와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매번 반복되는 후회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불혹의 끝자락에서 그 동안 무던히도 친했던 이슬이와의 이별을 하고자한다.
이슬이는 이제 내가 병풍 뒤에 눕는 날, 아들놈한테나 딱 한잔 받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푼수처럼(상근이 형님 버전인데) 한 개인의 바보스러운 행동을 고백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선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자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마라톤에서 과연 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는 당일에는 물론이고 그 후유증으로 며칠을 연습을 못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하기 싫어서 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대회는 다가오고.......,
결과는 지난번 서울울트라에서처럼 완주라는 성취감보다는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처절한 패배감으로 뒤 돌아 보기도 싫은 고약한 추억만 남아 있을 뿐......
세 번째 푼수 부부런너스 반쪽 이장호
아내에게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린 아이들을 여린 아내에게 어떻게 부탁을 해야 할지?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그리고 연로하신 할머니와 아버님과 어머님께는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포기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 최선을 다해보자는 것이었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6개월간의 인터페론 치료와 더불어 철저한 식사관리와 운동을 병행하여 2년 만에 완치되었다는 주치의의 치료 종료 선언을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운동만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으로 수영, 헬스, 검도, 등산 그리고 마라톤 등을 주변에서 부러워 하리만큼 열심히 해왔고 이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공중파를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성공사례 등으로 방영되고 인쇄되기도 했었다.
10년도 안된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즉흥적이고, 기획적이고, 연출적인 것이었던인가?
몹쓸 병들어 힘들게 치료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은 사실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점점 나태해지기 시작하더니, 자만과 게으름, 그리고 무계획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생활로 변해 지금은 실패 사례로 다루어도 좋은 소재가 될 만큼 엉망이 되어 버렸다.
한두 잔은 괜찮다는 주치의에 말에 호프 한두 잔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것이 점점 참이슬, 위스키, 꼰냑 그리고 폭탄, 사정, 금태, 충성, 폭포 등등 수없이 많은,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할 놈들과 너무 가까워져서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퇴근 후에 이놈들과 놀기 시작하면 적어도 예닐곱 시간은 놀아야 했고, 그것도 한 장소와 한 종류로는 너무 지루하다고, 장소를 몇 차례 옮겨가며, 종류도 몇 가지를 바꿔가며, 이것도 부족해서 가끔은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놀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인사불성이 되어 어떻게 집으로 들어 왔는지 기억조차 없는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 후유증은 어떠한가?
출근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푸륵푸륵거리며 자고 넘을, 그래도 남편이라고 아내는 출근은 시켜야겠기에 밉지만 깨워 해장국 차려주면, 위장에 남아있는 술독 때문에 한수저도 못 뜨고 넘어가다 남은 것 화장실로 뛰어가 확인하고, 결국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출근하면, 입에서는 술 냄새로, 머리에는 혼란함으로, 사지는 손 떨림으로 동료 직원들 눈치 보아야하고,
여기에 조금 더하면 위장에 고여 있던 썩은 알코올과 부산물로 범벅이 된 이물질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지 못하고 위로 올려 보내는 일들이 버러지기 시작하고, 주변 눈치 살피며 빈 화장실 찾아 들어가 주변에 사람 없는 것 확인한 후에야 꾸역꾸역 거려야 하는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누런 물이 넘어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 ‘이 화상아 너 왜 이렇게 살아야하니’라고 후회해 보지만.......
그 뿐인가. 기분 좋은 이슬이 한 병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슨 말을 누구에게 어떻게 했는지?
가위질 당한 영화처럼 중간 중간이 빠지고, 결국 불안해서 같이 있던 놈들에게 전화해서 별일 없었는지 물어 확인을 해야 하고, 그래도 잃어버린 기억은 모르니까 속편한데, 해서는 안 될 이야기, 상대방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쏟아버린 이야기, 지키지 못할 약속 또는 객기로 내 뱉은 거짓말 등이 뚜렷이 선명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를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없고, 집에 몇 시에 들어왔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만취가 되어,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광란의 후유증이 시작되었고, 마침 등교하지 않는 토요일이라 집에 있던 딸 아이 앞에서 아빠로서 보여서는 안 될 일들이 버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아빠 이제 술 끊으셔야 되겠어요.”라는 한마디에 적어도 부모로서 자식에게 지켜야할 아빠의 최소한의 도리와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매번 반복되는 후회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불혹의 끝자락에서 그 동안 무던히도 친했던 이슬이와의 이별을 하고자한다.
이슬이는 이제 내가 병풍 뒤에 눕는 날, 아들놈한테나 딱 한잔 받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푼수처럼(상근이 형님 버전인데) 한 개인의 바보스러운 행동을 고백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선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자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마라톤에서 과연 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는 당일에는 물론이고 그 후유증으로 며칠을 연습을 못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하기 싫어서 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대회는 다가오고.......,
결과는 지난번 서울울트라에서처럼 완주라는 성취감보다는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처절한 패배감으로 뒤 돌아 보기도 싫은 고약한 추억만 남아 있을 뿐......
세 번째 푼수 부부런너스 반쪽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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