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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열정은 한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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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행애 작성일04-11-29 11:13 조회1,3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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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트라 열정은 한계를 타고 넘어 ***

100K울트라마라톤 신청을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었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100K는 무리이고 63K로 종목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넌지시 그렇게 말문을 열었더니
그러면 더 연습 하지 않을 거라며 그냥 깨끗이 포기하란다.


냉정하고 쌀쌀한 남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잡지 못한 채


날짜만 흐르는 물처럼 여유를 부리며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더웠던 것처럼 추석마저 그 열기를 품고 빨리 찾아왔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친정식구들이 한곳에 모였다.


반갑고 즐거워야할 자리였지만 모두들 어두운 표정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루퍼스(전신홍반성)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작은 언니 때문이었다.


병마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언니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가슴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루퍼스로 면역성이 아주 약한 상태였기에 2차 감염에 의한 합병증을 두려워했다.




그동안 무균실에 가까운 수술 후 관리 때문에 병문안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추석을 기해 약간 호전된 기미가 보여 어렵게 언니를 만나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맞아주는 언니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흘러 나왔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약속 했다.


언니의 완쾌를 위해 이번 100K 울트라에서 10시간 이내의 완주할 테니


언니도 내가 고통을 참고 달리는 것처럼 이 시련을 꼭 이겨 내야 한다고.




그날 이후, 몇 년 동안 계속 해오던 아침수영마저 끊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우레탄으로 잘 다듬어진 성내천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올림픽공원을 지나 한강으로 들어서면 답답했던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연습부족으로 처음엔 10K도 힘들었지만 차츰, 13K, 16K까지 늘려갔다.


일요일엔 반달모임에서 장거리 훈련으로 느슨해졌던 마음을 더욱 조여 갔다.


숨이 가프고 다리가 무거워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땐 작은 언니를 생각했다.


내가 더 열심히 뛰어야 언니의 수술경과가 좋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면역항체 부족으로 수술부위의 괴사(怪死)가 생겨 언니의 기나긴 고통은 계속되었다.




새벽녘 주로를 달리다 붉은 기운이 남한산성에 드리우기 시작하면


그대로 엎드려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외마디라도 간절하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가 생로병사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물이지만


그래도 우리 형제자매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만큼은 재발 재촉하지 말아달라고.




나와 두 살 터울인 작은 언니는 어릴 적부터 자주 아픈 편이었지만


학창시절에 수학박사로 통할 정도로 아주 영특해서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날 부를 땐 언제나 언니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한때 그것이 싫어 언니를 이겨보려고 기를 쓰고 공부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언니는 저 만치 앞서서 만점짜리 시험지로 날 놀리듯 응대해왔다.


그로인해 서로 토라져 싸워 몇날 며칠이고 말도 않고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달리기만은 내가 언니보다 훨씬 더 잘했던 같다.


집에서 서로 다투다 매를 든 아빠에게 야단맞게 되면


나는 다람쥐처럼 날쌔게 도망쳤지만


그렇지 못한 언니는 내 것까지 모두 뒤집어쓴 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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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晩秋)로 깊어가는 시월의 마지막 날,


양재 시민의 숲에 여명(黎明)은 아직 드리우지 않았지만 수은등에 반사된 단풍들이


어머니의 적삼처럼 곱기만 하다.


출발신호와 함께 둑 터진 급물살처럼 달려가는 러너들은 양재천 흐름으로 접어든다.


그 흐름에 내동댕이쳐진 나는


모태에서 갓 벗어난 어린 연어처럼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회귀의 본능을 깨닫기에


햇살이 가을 중천에 무르익을 무렵이면


나는 이쯤에서 100K울트라마라톤 성어의 꿈에 젖어 있을 것이다.


새벽녘의 팔팔한 힘으로 울트라의 파고를 타고 머나먼 주로를 향해 떠나지만


그 힘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퍽퍽해진 다리를 절래절래 달래면서


모성의 본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완주만 생각하며 이 길을 따라 다시 달려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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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적셔오는 여명으로 어둠 속의 탄천을 털고 지나칠 때


촉촉한 대지는 메밀꽃처럼 피어오른 억새들의 합창으로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따사로운 봄볕이 파릇한 새싹처럼 다가올 무렵


동면에서 갓 벗어난 아이들처럼 언니와 함께 이 길을 따라 달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땐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던 언니였다.




우리들의 일생을 일년 사철로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어느 계절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을까?


그 소풍이 항상 즐겁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풍랑 속에 결실을 거둬가는 고깃배처럼 인생도 마라톤처럼 그러하리라.


그렇기에 울트라마라톤을 삶의 역정을 즐기는 시간 여행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비록 몇 해 전, 언니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였지만


그동안 잘 견뎌내며 직장생활에도 충실했다.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 위해 또 다른 시련을 겪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둠에서 차차 벗어나는 탄천을 지나 한강에 이르자,


확 트인 전망이 하얀 입김에 대비되면서 철새들이 부산한 하루를 맞고 있다.




암사동 반환점을 돌아 동호대교에 이를 무렵,


지난 대회 때 다리에 쥐가 나 고생했던 것이 영상을 되돌리듯 선명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 후로 반달모임에서 수없이 달렸던 길이지만


울트라를 뛰고 있는 감각은 근섬유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의 소자들을 다시 깨우치는지


자꾸만 불안한 생각들이 뇌리에 스쳐온다.


이번 대회에선 제발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야 언니와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텐데…….


그때, 달리는 의사 선생님들의 충고가 떠올랐다.


자신의 신체에 귀 기울이며 달리면, 쥐가 나기 전에 신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 시기를 놓치지 말고, 급수대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미리 대비하란다.


마비 증세가 나타난 경우라면, 마사지 등을 통해 곧바로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반복해서 당하지 않으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포대교 급수대에서 토마토 주스까지 직접 갈아주는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여의도 63빌딩 부근에 이르자, 자원봉사자들이 다리 맛사지로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그래선지 어쩌면 지난해처럼 쥐로 고생하지 않고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상쾌해진 물맛에 미소를 짓자, 카메라 셧터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주로변의 시민들이 박수로 화답해와 엘리트선수 같은 느낌이 들어 우쭐해진다.


그때, 대회진행요원께서 내게 여자 5위라고 소리쳐온다.




55K 지점에 이르러 10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한 지, 시간을 가름 하고 있는데


벌써 마지막 반환점(64.4K)을 돌고 달려오는 선두가 보인다.


동향 출신의 채성만 선생님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부부에게 관심을 베풀어주신 분이라 깊은 정감이 간다.


반가움에 파이팅이라 소리쳐주고 서두르자,


2위 진병환 선생님이 먼저 날 알아보고 힘을 외치며 뒤따라 달려가신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다.


지칠 줄 모르고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럽기만 하다.


잔상으로 스치는 두 분의 페이스를 생각하며 어디쯤에 있을 반환점을 그려보지만


아른거리듯 출렁이는 한강 물만 한없이 느긋한 여유로 응대해온다.


날씨마저 새벽녘과 달리 늦가을의 따가운 햇살이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


갈증과 함께 다리근육이 점점 뭉쳐오는 것 같다.


겁이 덜컥 나기 시작한다.


다리 마비증상이 악몽처럼 또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멈춰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줄 수밖에 없다.


방화대교 부근의 반환점에 6시간 13분이 지날 무렵에야 간신히 도달한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면 나는 100K마라톤의 두 번째 성어가 된다.


5K로 시작되었던 달리기와 인연이 겁 없는 거리로 나를 키워왔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이키면


남아 있는 잔상들이 스치는 무리들로 슬라이드 영상처럼 펼쳐져 온다.


하지만 마라톤으로 기억되는 지난날은 잔상의 무리를 떠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나약한 나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몸부림쳐온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항상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마냥 철없이 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로써 한가정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땐, 그것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여름 밤의 깊은 꿈으로 간주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면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내가 어릴 적에 바랐던 엄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어느새 내 몫이 되어 있었다.


모성에 대한 회귀의 본능은 세월 따라 윤회되어 나 자신에게 이미 와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몽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나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세 아이를 둔 어머니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그 위치를 깨닫는 것이 급선무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현실뿐만 아니라


미몽처럼 불확실하게 펼쳐질 앞날에서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자신감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믿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부모로써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험한 세상에 늘어진 거친 역정 속에서


자신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새로운 삶의 이벤트가 그 어떤 것으로든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마라톤으로 이어지는 달리기 생활이었다.


달리는 것으로 세파를 잊고 가장 먼저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그것은 가장 순수하게 나를 찾아가는 시간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울트라마라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반환점 전복죽을 한 그릇 비우고


발가락 물집 때문에 미리 맡겨두었던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시간을 보자, 작은 언니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의 응원을 기분 좋게 받으며 5K를 30분 이내에 뛰는 속도를 다시 유지한다.


하지만 다시 여의도에 이를 무렵부터 시나브로 무거워진 다리는


생각처럼 잘 나가질 않는다.


시계가 자꾸 봐지면서 불안한 생각들이 뇌리에 스쳐온다.


내가 만약 언니와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굳은 의지로 나를 믿고 있는 언니에게 어떤 큰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을까?


발길을 아무리 재촉해보지만 급수대에서 지체된 것만큼 구간 랩타임이 오버된다.


그걸 의식하고 더 속도를 내려하자, 온몸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며 난리다.


자꾸만 그에 타협하려는 나약함으로 빠져든다.


이럴 땐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내 몸속에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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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교 부근에 이르자, 러너들 사진 촬영에 여념 없는 남편이 보인다.


손을 들어 가볍게 포즈를 취하자, 놀란 표정으로 몸은 괜찮은지 물어온다.


아마 예상했던 것 보다 내가 더 빨리 나타난 것에 호의적 표현인 것 같다.


잠시 내 페이스에 맞춰 자전거로 따라오더니 일본 여성러너 사카모토에 대해 물어온다.




새벽녘, 출발 전에 그이의 소개로 그녀와 잠시 인사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것은 남편의 2003년 스파르타슬론 참가기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해, 그 험하다는 그리스 246K 스파르타슬론을 28시간대에 완주하면서


여성 러너부분에서 우승했다는 괴력의 주자이다.


그 여세를 몰아 2003 서울 100K울트라에 참가하여 8시간 초반 대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컨디션이 별로인지 상당히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동호대교 부근에서 내가 추월했기에


얼마 뒤에 그녀가 달려오고 있을 거라 하자, 남편은 정색하며 자전거를 휙 돌려 버린다.


어이없지만 어쩔 것인가?


스파르타슬론 완주 동지라며 그녀의 달리는 모습을 촬영해주어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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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46K 스파르타슬론 여성부분 우승러너 아키코 사카모토

10시간 이내 완주에는 49분이 남아있는데, 이제 남은 거리는 10K 이다.


지친 상황에서 나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병상의 언니를 생각하며 달려야 한다.


내가 약속을 지켜야만 언니의 병마에 어떤 서광이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언니와 굳은 약속이전에, 내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일에 심취하다보면 그것에 달인이 되어간다.


달인이란 어떤 특정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경우를 말할 것이다.


비록 내가 그렇겐 될 수 없어도 그 흉내만큼은 낼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내겐 100K마라톤을 UNDER-10 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점점 더 무거워 지는 것을 양재천으로 접어들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마음은 저 앞에 가 있는데, 중력은 두 사람의 몫처럼 더 강하게 나를 붙들려는 것 같다.


이럴 땐, 중력은 질량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어떤 과학자가 입놀림으로 만들어 낸 장식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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