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울트라를...[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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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형기 작성일04-11-04 16:52 조회8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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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울트라 후기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함께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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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늘 월요일, 관절 마디마다 통증을 호소하는 몸을 일으켜 사무실에 들러 업무를 보는 동안 많은 이들의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주변의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격려를 해 주심으로 인해 내 스스로의 능력에 비해 과다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또한 내게 주어진 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약 3년전, 우연한 기회에 첫 인연으로 무모하게도 하프마라톤에 도전하던 중 발바닥의 1/3 정도 물집이 잡히면서 모진 고통 속에 완주한 이후,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라톤은 고등학교 동문들로 이루어진 동호회의 연간 행사로서 국토횡단과 국토 종단 행사를 거쳐 3년 차에 이르러 급기야 ‘울트라맨의 해’를 선포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도전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나의 자발적 결정이었고 은연중 이러한 모험을 즐기는 성격에 기인함을 부인하진 않는다.
1주전 춘천마라톤에서 최고의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고지에 오르기 위한 중간 관문으로 인식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자신의 기네스 북을 기록해 가면서 해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습성 아닌 습성을 가지면서, 욱신거리는 사지를 제대로 추스리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도 내년엔 무엇을?...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웃기는 일이다.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구구절절 장문의 후기를 남기는 것이, 언젠가 나의 자전적 글을 쓸 때를 대비한 하나의 사료임을 언급하면서,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완독을 해준다면 그 또한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다.
[전야제]
교육문화회관 야외 행사장에 도착하여 기념품과 배번 등을 교부 받고 함께 할 동문 선배들과 간단히 맥주 한잔을 곁들인다. 지난 춘마 때 2분 15초 차이로 sub-3를 놓치면서 건강으로 인해 참여치 못하게 된 회장 선배님은 못내 아쉬운지 선배 ‘울트라맨’으로서 내일 있을 대회의 주행 요령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신다.
대학 응원단의 응원 행사와 30여명이 참가한 일본 팀의 가요, 부페식 식사를 마친 후, 새벽에 일찍 출발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거제도에서 올라오신 선배님의 숙소에서 함께 하기로 하고, 집에 들러 준비 한 다음 다시 회관 호텔에 도착하여 눈을 붙인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춘 후 잠들다.
[출발]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나 바셀린, 맨소래담, 반창고, 선텐크림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지점에 이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트레칭 하는 사람, 비닐을 덮고 가볍게 달리는 사람, 여기 저기서 그룹지어 화이팅을 외는 사람들… 모두가 활기차 있고 들떠보인다.
반환점과 결승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넣은 비닐 봉지를 맡긴 후 깊은 호흡과 함께 스트레칭,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몸을 맡긴다.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면서 이윽고 출발 신호와 함께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딛다.
[주행 1] 광나루 반환점 약 28킬로 지점까지
새벽 5시,
어둠을 뚫고 약 600여명의 건각들이 줄을 지어 앞으로 나아간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양재천 수면 위를 낮게 덮고 있는 짙은 안개가, 구미호를 연상케 할 분위기 임에도 불구하고 요정이 나타날 듯한 신비한 숲속의 샘과 같이 느껴짐은 고양된 분위기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에 임하는 설레임이 교차한 때문이리라.
함께 하는 선후배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탄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휘어 성남 방향으로 향한다.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탄천은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 내며, 거대한 서울이므로 어쩔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뿜기도 한다. 다시 방향을 돌려 한강을 향해 가는 동안 어둠이 걷히고,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분주한 모습들이 보인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과 봉사자들의 환호 속에, 달리는 이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가볍게 나아가는 동안, 드디어 한강이 보이고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광나루 쪽을 향할 때는 벌써 20킬로를 넘어선 지점이다. 아직은 몸도 가볍고, 새벽의 여운이 남아 있어 주변의 경관을 즐기며 몇몇 주자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유롭게 나아간다.
줄로 손목을 묶고 가이드와 함께 동반주를 하는 시각 장애우의 모습은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업하는 남편과 함께 마라톤을 즐기는 부인은, 내일 해야 할 일 때문에 이미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남편이 자원 봉사자로서 참여하여 여의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기필코 남편의 기록을 넘어서겠단다. 나중의 일이지만 반환점을 돌아 여의도를 통과할 즈음에 이러한 다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가슴 깊이 부부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었다.
한강 고수부지 곳곳마다 조기 축구회원들의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고, 강아지를 동반한 아낙네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침에 바라다보는 한강의 모습이, 상류로 올라가면서 더욱 청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상류 반환점을 통과는 28킬로 지점에 이르러서는 조금씩 몸이 무거워지며 다음 급수지점을 기다리게 되었다.
[주행 2] 53.3킬로 1차 관문지점까지
주행하는 동안 내내 느낀 바이지만, 이 대회를 주최한 서울마라톤 클럽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성공적인 대회를 만들어 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약 450명의 봉사자가 2.5킬로 간격으로 배치되어 온갖 음료와 영양 보충식들을 제공하여 지쳐가는 심신을 추스리게 해준다. 수박과 신선한 과일로 비타민을 보충하고 즉석 김밥과 떡으로 허기를 채우며, 곳곳에 포진하여 나팔과 호루라기, 배번의 이름 복창… 그들이 입은 노란색 자켓이 천사표 날개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맨소래담을 듬뿍 발라 맛사지를 해주는 이들의 손길에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며 녹아나는 듯 하다.
함께 골인하기로 한 선배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짐짓 여유롭게 나아간다. 42.195킬로를 약 4시간 반만에 통과하며 이대로라면 12시간 목표치는 달성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하지만…이제부터는 거의 미지의 세계로 접어든 셈이다. 나의 몸은 적어도 풀코스 거리의 코드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새로이 개척해야 할 도전의 영역인 것이다.
성공적으로 완주한다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내가 도전한 하나의이유가 아닌가?
건전한 육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정신적 성취를 얻을 수 없다 한다. 적어도 육신의 요구에 좌우되거나 타협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는 싫다.
63빌딩이 시야에 들어오고 평소 연습주를 해왔던 익숙한 코스를, 점점 피로를 호소해오는 두 다리에 의지하며 무의식적으로 나아간다.
무언가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휴대폰이 울리며 막내녀석의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 형과 함께 성산대교 부근으로 마중 나오겠단다.
제1관문인 여의도 53킬로 지점을 1차 목표로 하고 58킬로 지점이 될 아이들과의 만나는 장소를 2차 목표로 정했다.
드디어 10시 50분 께에, 부쩍 늘어난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53.3킬로 노란색 아치형 1차 관문을 통과하다.
[주행 3] 83킬로 2차관문 까지
국회의사당을 지나 당산철교를 지날 즈음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성당 교우 두분이 완전 복장의 차림으로 방화대교 반환점까지 왕복 동반주를 해주겠다며 배낭에 먹을 것을 잔뜩 담고 나타난 것이다. 이미 전화로 연락을 받긴 했지만, 그리고 배낭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진 못했지만 약 18킬로의 거리를 온갖 유머와 재치로 잠겨드는 심신을 일으켜 세워주어 큰 힘이 되었다.
가양대교를 지날 즈음 자전거를 타고 온 아이들을 만났다. 달려온 시간과 거리를 알아보고는 짐짓 놀라는 모습이다. 방화대교 반환점까지 함께 한 녀석들이 뭔가 느낌을 갖는 듯 하여 내심 반가운 마음이다.
아빠가 시도하는 여러가지 도전의 이유들을 녀석들이 일부나마 이해하기를 기대해본다.
60여 킬로 지점을 통과할 즈음 함께 잘 달리던 선배가 무릎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렇게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며 체력관리에 충실했던 분이 통증을 호소할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역시 미지의 세계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게 마련, 자만은 금물이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64킬로 반환점의 노란색 아치에 이르러 겨우 한시름을 놓는다.
전복죽 두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우고, 봉사자들의 스포츠 맛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약 30분의 시간을 보낸다.
무던히도 달려왔지만 아직도 36킬로 정도의 거리를 더 달려야 한다.
선배의 무릎 통증이 마음에 걸린다.
천근같이 느껴지는 몸을 다시 일으켜 발걸음 떼어놓는데 역시 장시간 휴식의 여파로 한걸음 한걸음 새로 적응해야만 했다.
선배와 보조를 맞추며,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도로를 한없이 나아간다.
정오를 훌쩍 넘긴 날씨는 점점 열기를 뿜어내어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선유도 즈음에 이르러 동반주를 해주던 교우들과 헤어지고 다시 여의도를 지날 즈음 봉사자 남편을 만나 힘차게 달려가는 부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일본 할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지친 몸을 가누며 ‘간바레’를 외쳐주는 소풍객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한다. 달리기와 고통을 즐기는 듯한, 연륜에서 오는 여유로움이다.
다행히 무릎 통증에서 벗어난 선배와 2.5킬로 주행 후 잠시 휴식하는 사이클로 나아가던 중 약 80킬로 지점에 이르러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며 도로옆 잔디밭에 눕고 싶은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다.
파아란 잔디가 침대보다도 더 푹신하고 아늑하게 보인다. 호흡을 크게 몰아쉬며 이제는 반대로 선배의 걱정하는 시선이 내게 쏟아짐을 느낀다.
고수부지의 잠원지구에 이르러 또다시 노란색 아치 밑을 통과 하매 제2관문인 83킬로 지점이다.
[주행 4] 100킬로 결승점까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시선은 계속 아래를 향하고 두 다리는 기계적으로 교차하여 전후진을 반복한다. 불현듯 처음 풀코스 도전했을 때 마지막 35킬로 이후 구간을 아스팔트 결을 헤아리며 달리던 3년 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나마 3년의 시차 동안 약 50킬로의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면 5년 동안 영안실에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라고 한 서울대 모 교수의 영안실 이론에 비추어 보면 나는 적어도 5년 동안 50킬로는 앞으로 전진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러한 고통을 자초해야 하나?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커뮤니티의 번개 모임에서 리더십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으로부터 마라톤을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정신력 운운 하였지만… 솔직히 그 본질을 아직도 나 스스로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계속하며 답을 구하는 과정에 있지 아니한가?
자신의 주관과 가치에 대해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강을 따라 달리던 무한의 주행 패턴이 탄천에서 오른쪽으로 꺽이면서, 땅 속으로 스며들고자 했던 마음의 한켠에 ‘오기’와 함께 휴식 없는 강행군으로 심신을 몰아넣기로 하였다.
머물고 싶은 유혹의 급수대를 그냥 지나치기로…
잘 가꾸어진 양재천의 옆길을 따라 알마 남지 않은 결승점을 향하며, 12시간이 넘게 나의 체중을 해준 두 다리에 감사하면서 교육문화회관으로 이어지는 짧은 다리를 어딘지 모를 곳에서 솟아나는 힘으로 힘차게 건너다.
그리고… 결승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 테잎을 가슴으로 안으며 하늘을 향해 힘껏 가슴을 펼쳐본다!
해냈다!!!!!!!!!!!!!!
[에필로그]
마치 어려운 숙제를 끝낸 뒤의 홀가분한 마음이다.
얼마 전부터 성당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였다.
고해성사가 왜 필요한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안고 가야할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마라톤의 본질 이전에 삶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으면…
‘그냥 풀코스 두번 뛴다고 생각해’ 라던, 이미 울트라맨이 된 친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 그냥 그렇게 쉽게 치부해버리면 될 것을…
뼈마디가 쑤시고 살이 떨리는 이 여운을… 나는 가능한 오래토록 느끼며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제 다시는 울트라 안하리라.
적어도 지금 순간 만큼은…
이끌어주고,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께 진심을 담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04년 11월 3일 새벽…
아울러 함께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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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늘 월요일, 관절 마디마다 통증을 호소하는 몸을 일으켜 사무실에 들러 업무를 보는 동안 많은 이들의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주변의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격려를 해 주심으로 인해 내 스스로의 능력에 비해 과다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또한 내게 주어진 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약 3년전, 우연한 기회에 첫 인연으로 무모하게도 하프마라톤에 도전하던 중 발바닥의 1/3 정도 물집이 잡히면서 모진 고통 속에 완주한 이후,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라톤은 고등학교 동문들로 이루어진 동호회의 연간 행사로서 국토횡단과 국토 종단 행사를 거쳐 3년 차에 이르러 급기야 ‘울트라맨의 해’를 선포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도전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나의 자발적 결정이었고 은연중 이러한 모험을 즐기는 성격에 기인함을 부인하진 않는다.
1주전 춘천마라톤에서 최고의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고지에 오르기 위한 중간 관문으로 인식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자신의 기네스 북을 기록해 가면서 해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습성 아닌 습성을 가지면서, 욱신거리는 사지를 제대로 추스리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도 내년엔 무엇을?...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웃기는 일이다.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구구절절 장문의 후기를 남기는 것이, 언젠가 나의 자전적 글을 쓸 때를 대비한 하나의 사료임을 언급하면서,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완독을 해준다면 그 또한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다.
[전야제]
교육문화회관 야외 행사장에 도착하여 기념품과 배번 등을 교부 받고 함께 할 동문 선배들과 간단히 맥주 한잔을 곁들인다. 지난 춘마 때 2분 15초 차이로 sub-3를 놓치면서 건강으로 인해 참여치 못하게 된 회장 선배님은 못내 아쉬운지 선배 ‘울트라맨’으로서 내일 있을 대회의 주행 요령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신다.
대학 응원단의 응원 행사와 30여명이 참가한 일본 팀의 가요, 부페식 식사를 마친 후, 새벽에 일찍 출발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거제도에서 올라오신 선배님의 숙소에서 함께 하기로 하고, 집에 들러 준비 한 다음 다시 회관 호텔에 도착하여 눈을 붙인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춘 후 잠들다.
[출발]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나 바셀린, 맨소래담, 반창고, 선텐크림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지점에 이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트레칭 하는 사람, 비닐을 덮고 가볍게 달리는 사람, 여기 저기서 그룹지어 화이팅을 외는 사람들… 모두가 활기차 있고 들떠보인다.
반환점과 결승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넣은 비닐 봉지를 맡긴 후 깊은 호흡과 함께 스트레칭,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몸을 맡긴다.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면서 이윽고 출발 신호와 함께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딛다.
[주행 1] 광나루 반환점 약 28킬로 지점까지
새벽 5시,
어둠을 뚫고 약 600여명의 건각들이 줄을 지어 앞으로 나아간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양재천 수면 위를 낮게 덮고 있는 짙은 안개가, 구미호를 연상케 할 분위기 임에도 불구하고 요정이 나타날 듯한 신비한 숲속의 샘과 같이 느껴짐은 고양된 분위기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에 임하는 설레임이 교차한 때문이리라.
함께 하는 선후배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탄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휘어 성남 방향으로 향한다.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탄천은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 내며, 거대한 서울이므로 어쩔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뿜기도 한다. 다시 방향을 돌려 한강을 향해 가는 동안 어둠이 걷히고,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분주한 모습들이 보인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과 봉사자들의 환호 속에, 달리는 이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가볍게 나아가는 동안, 드디어 한강이 보이고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광나루 쪽을 향할 때는 벌써 20킬로를 넘어선 지점이다. 아직은 몸도 가볍고, 새벽의 여운이 남아 있어 주변의 경관을 즐기며 몇몇 주자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유롭게 나아간다.
줄로 손목을 묶고 가이드와 함께 동반주를 하는 시각 장애우의 모습은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업하는 남편과 함께 마라톤을 즐기는 부인은, 내일 해야 할 일 때문에 이미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남편이 자원 봉사자로서 참여하여 여의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기필코 남편의 기록을 넘어서겠단다. 나중의 일이지만 반환점을 돌아 여의도를 통과할 즈음에 이러한 다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가슴 깊이 부부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었다.
한강 고수부지 곳곳마다 조기 축구회원들의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고, 강아지를 동반한 아낙네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침에 바라다보는 한강의 모습이, 상류로 올라가면서 더욱 청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상류 반환점을 통과는 28킬로 지점에 이르러서는 조금씩 몸이 무거워지며 다음 급수지점을 기다리게 되었다.
[주행 2] 53.3킬로 1차 관문지점까지
주행하는 동안 내내 느낀 바이지만, 이 대회를 주최한 서울마라톤 클럽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성공적인 대회를 만들어 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약 450명의 봉사자가 2.5킬로 간격으로 배치되어 온갖 음료와 영양 보충식들을 제공하여 지쳐가는 심신을 추스리게 해준다. 수박과 신선한 과일로 비타민을 보충하고 즉석 김밥과 떡으로 허기를 채우며, 곳곳에 포진하여 나팔과 호루라기, 배번의 이름 복창… 그들이 입은 노란색 자켓이 천사표 날개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맨소래담을 듬뿍 발라 맛사지를 해주는 이들의 손길에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며 녹아나는 듯 하다.
함께 골인하기로 한 선배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짐짓 여유롭게 나아간다. 42.195킬로를 약 4시간 반만에 통과하며 이대로라면 12시간 목표치는 달성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하지만…이제부터는 거의 미지의 세계로 접어든 셈이다. 나의 몸은 적어도 풀코스 거리의 코드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새로이 개척해야 할 도전의 영역인 것이다.
성공적으로 완주한다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내가 도전한 하나의이유가 아닌가?
건전한 육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정신적 성취를 얻을 수 없다 한다. 적어도 육신의 요구에 좌우되거나 타협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는 싫다.
63빌딩이 시야에 들어오고 평소 연습주를 해왔던 익숙한 코스를, 점점 피로를 호소해오는 두 다리에 의지하며 무의식적으로 나아간다.
무언가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휴대폰이 울리며 막내녀석의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 형과 함께 성산대교 부근으로 마중 나오겠단다.
제1관문인 여의도 53킬로 지점을 1차 목표로 하고 58킬로 지점이 될 아이들과의 만나는 장소를 2차 목표로 정했다.
드디어 10시 50분 께에, 부쩍 늘어난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53.3킬로 노란색 아치형 1차 관문을 통과하다.
[주행 3] 83킬로 2차관문 까지
국회의사당을 지나 당산철교를 지날 즈음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성당 교우 두분이 완전 복장의 차림으로 방화대교 반환점까지 왕복 동반주를 해주겠다며 배낭에 먹을 것을 잔뜩 담고 나타난 것이다. 이미 전화로 연락을 받긴 했지만, 그리고 배낭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진 못했지만 약 18킬로의 거리를 온갖 유머와 재치로 잠겨드는 심신을 일으켜 세워주어 큰 힘이 되었다.
가양대교를 지날 즈음 자전거를 타고 온 아이들을 만났다. 달려온 시간과 거리를 알아보고는 짐짓 놀라는 모습이다. 방화대교 반환점까지 함께 한 녀석들이 뭔가 느낌을 갖는 듯 하여 내심 반가운 마음이다.
아빠가 시도하는 여러가지 도전의 이유들을 녀석들이 일부나마 이해하기를 기대해본다.
60여 킬로 지점을 통과할 즈음 함께 잘 달리던 선배가 무릎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렇게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며 체력관리에 충실했던 분이 통증을 호소할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역시 미지의 세계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게 마련, 자만은 금물이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64킬로 반환점의 노란색 아치에 이르러 겨우 한시름을 놓는다.
전복죽 두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우고, 봉사자들의 스포츠 맛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약 30분의 시간을 보낸다.
무던히도 달려왔지만 아직도 36킬로 정도의 거리를 더 달려야 한다.
선배의 무릎 통증이 마음에 걸린다.
천근같이 느껴지는 몸을 다시 일으켜 발걸음 떼어놓는데 역시 장시간 휴식의 여파로 한걸음 한걸음 새로 적응해야만 했다.
선배와 보조를 맞추며,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도로를 한없이 나아간다.
정오를 훌쩍 넘긴 날씨는 점점 열기를 뿜어내어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선유도 즈음에 이르러 동반주를 해주던 교우들과 헤어지고 다시 여의도를 지날 즈음 봉사자 남편을 만나 힘차게 달려가는 부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일본 할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지친 몸을 가누며 ‘간바레’를 외쳐주는 소풍객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한다. 달리기와 고통을 즐기는 듯한, 연륜에서 오는 여유로움이다.
다행히 무릎 통증에서 벗어난 선배와 2.5킬로 주행 후 잠시 휴식하는 사이클로 나아가던 중 약 80킬로 지점에 이르러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며 도로옆 잔디밭에 눕고 싶은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다.
파아란 잔디가 침대보다도 더 푹신하고 아늑하게 보인다. 호흡을 크게 몰아쉬며 이제는 반대로 선배의 걱정하는 시선이 내게 쏟아짐을 느낀다.
고수부지의 잠원지구에 이르러 또다시 노란색 아치 밑을 통과 하매 제2관문인 83킬로 지점이다.
[주행 4] 100킬로 결승점까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시선은 계속 아래를 향하고 두 다리는 기계적으로 교차하여 전후진을 반복한다. 불현듯 처음 풀코스 도전했을 때 마지막 35킬로 이후 구간을 아스팔트 결을 헤아리며 달리던 3년 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나마 3년의 시차 동안 약 50킬로의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면 5년 동안 영안실에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라고 한 서울대 모 교수의 영안실 이론에 비추어 보면 나는 적어도 5년 동안 50킬로는 앞으로 전진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러한 고통을 자초해야 하나?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커뮤니티의 번개 모임에서 리더십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으로부터 마라톤을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정신력 운운 하였지만… 솔직히 그 본질을 아직도 나 스스로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계속하며 답을 구하는 과정에 있지 아니한가?
자신의 주관과 가치에 대해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강을 따라 달리던 무한의 주행 패턴이 탄천에서 오른쪽으로 꺽이면서, 땅 속으로 스며들고자 했던 마음의 한켠에 ‘오기’와 함께 휴식 없는 강행군으로 심신을 몰아넣기로 하였다.
머물고 싶은 유혹의 급수대를 그냥 지나치기로…
잘 가꾸어진 양재천의 옆길을 따라 알마 남지 않은 결승점을 향하며, 12시간이 넘게 나의 체중을 해준 두 다리에 감사하면서 교육문화회관으로 이어지는 짧은 다리를 어딘지 모를 곳에서 솟아나는 힘으로 힘차게 건너다.
그리고… 결승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 테잎을 가슴으로 안으며 하늘을 향해 힘껏 가슴을 펼쳐본다!
해냈다!!!!!!!!!!!!!!
[에필로그]
마치 어려운 숙제를 끝낸 뒤의 홀가분한 마음이다.
얼마 전부터 성당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였다.
고해성사가 왜 필요한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안고 가야할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마라톤의 본질 이전에 삶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으면…
‘그냥 풀코스 두번 뛴다고 생각해’ 라던, 이미 울트라맨이 된 친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 그냥 그렇게 쉽게 치부해버리면 될 것을…
뼈마디가 쑤시고 살이 떨리는 이 여운을… 나는 가능한 오래토록 느끼며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제 다시는 울트라 안하리라.
적어도 지금 순간 만큼은…
이끌어주고,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께 진심을 담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04년 11월 3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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