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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도 어김없이 새벽은 왔다(제주일주 200K 완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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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윤희 작성일04-03-23 09:56 조회3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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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쩔 수 없지만 목표를 수정하다.
계획했던 목표시간(27시간)은 일단 불가능하다. 그럼 완주만 남은 것인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 일단 내 몸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 몸은 싸늘하게 식었고 다리는 훨씬 무겁게 반응한다.

달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다리는 따라주지를 못하는가 보다. 전에 이 보다도 더 먼 거리 대회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던 다리가 탈이 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걸어서라도 가자.

열심히 걸어 02:30경 150Km 지점에 도달했다. 따뜻한 커피한잔하고 전복죽 한 그릇 비우니 살 것같은 기분은 충만한데 마음은 영 편치를 않다. 쉴 수 있는 것도 지금 나에게는 허영이요, 사치다. 남은 시간동안 걸어서 가야 하는데, 끝까지 몸이 따라줄지도 모르는데....

7.칠흑 같은 밤을 걸어서 통과하다.
이젠 달리지를 못하니까 체온도 내려가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열심히 팔을 힘차게 앞뒤로 휘젓지만 체온은 제자리에서 머물고 이젠 한기로 다가온다. 2시간 5분만에 160Km에 도착했지만 자원 봉사하시느라 피곤하여 차안에서 피곤에 떨어진 그분들이 깰세라 물통에 물만 채우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전해주셨던 격려전화를 떠올리고, 전화메시지를 가끔 보는 것이 유일하게 지금의 나를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하곤 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고 시간이 잘 가지 않는 듯한 판단력 저하가 뚜렷해진다. 그럴 때도 됐지만 말이다.

다리에 통증은 조금씩 더해가고, 그 때문인지 그 동안 수없이 졸았던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잠도 오질 않는다. 커피도 한몫을 했겠지만...
해안도로에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훨씬 춥게 느껴진다. 한겨울에도 이런 추위는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8.그래도 새벽은 왔다.
언제나 새벽이 올까? 동이 트기는 할까? 라는 우매한 질문을 수 없이 되뇌며 추위를 이기고자 갖은 생각, 노력은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이제는 턱도 떨려오고 콧물도 심하게 흐른다. 팔도 자꾸 아래로 처져가고 다리는 마음대로 통제가 전혀 되질 않는다. 그냥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반복동작만을 열심히 하자 라는 것 이외에는....

서서히 길바닥이 보이고 주변이 구별되며 새벽이 온 것이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고 좀 따뜻해지겠지!! 밤새도록 간절히 바라던 오직 한가지 소망이었다.

170Km을 지나 180Km 지점으로 향해 가는 길에서 해가 솟아오르자 또 다른 삶의 환희를 맛본다. 살았다. 이젠 살았다. 완주도 가능하겠다. 남은 시간은 7∼8 시간여...
비례하여 다리에 통증은 점점 더 심하게 전해진다. 노면의 약간의 요철도 나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9. 어금니로 20Km
180Km지점(09:00 시경)을 지나며 제한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 생각하니 걷는 속도를 늦춰본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발을 내딛는 각도를 다양하게 시험해보아 비교적 편안한 자세를 가져보고자 했으나 별 소득은 없고 그저 여기서 더 진전되지 않기만을 기대하며 김녕을 지나 협재로 들어가 조천에 당도했다.

지난 번 대회에서 퍼져 나오는 맛있는 짬뽕냄새에 어쩌지 못하고 들러 한 그릇 게눈 감추듯 한 중국집을 이번에는 눈물을 머금고 시간관계상(?) 그냥 지나치자니 얼마나 아쉽고 처량한지!!!

2시간 20 분여 소요되어 190Km 지점(11:30)에 도착하자 약간 마음이 놓였다. 물한모금 마시고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실로 오랜만에 한가로운 여유를 즐긴다. 방심은 금물.
제주시내로 들어서자 비교적 울퉁불퉁한 인도는 훨씬 큰 고통을 안겨준다. 신호등마다 서서 기다리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시내의 수많은(?) 언덕을 넘는 것은 나에게는 큰 과제였다.

10. 아!아!! 그립고 그리웠던 KAL호텔.
이제 통증은 말로 그리기에는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걷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끌려온다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억지로 내딛어보려고 했으나 아픔만 갖다줄 뿐이다.
"KAL 호텔 얼마나 남았어요?" 하고 물으며 "아 예 거의 다 왔어요!!" 하는 들으나 마나 한 답변만 공허하게 돌아온다. 뻔히 알면서 질문을 한 내가 죽일 놈이지....

쉬다 걷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여 언덕을 넘고 신호등을 지나 190Km지점을 떠난지 3시간여가 다가오자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KAL 호텔이 반갑게 나타났다. 두 눈에 KAL이라는 단어가 확연하게 들어왔다. 그래 맞다. 시간을 내 편이었다.한 낮의 햇살은 고맙게도 나에게는 아주 따뜻하게 내리쬐고 그것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그 동안 주로 에서 수많은 주자가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나를 추월해가면서 "힘내세요"" 조금만 더가면 돼요""다 왔어요" 하는 격려의 말에 정말 인간미가 배어 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마음이 푸근하게 해줄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끊이질 낳는다

여러 동호회 회원 님들, 완주하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지인들 얼굴이 하나하나 슬라이드 환영처럼 스쳐지나간다.
마지막 신호등 앞에 섰다. 반대편 결승점에서는 "뭐하다 왜 이제 오느냐?" 웃으면서 농담을 건넨다."으응, 놀다 걷다 하느라고 쫌 늦었어!!" 나도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마지막은 좀 뛰지?" 라고 재촉하는데 "나도 그렇고 싶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안돼...."
결승테이프는 어김없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34시간 27분)


수많은 교훈과 삶의 가르침을 얻은
Muscle guy
이윤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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