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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는 백년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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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경석 작성일03-02-22 11:40 조회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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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정도로 어렸을 때에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서
50십리 오솔길, 신작로길, 산길을 걸어서
외갓집에 다녀온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가 구워주신 군고구마와
돌아오는 길에 낭떨어지 아래로 고무신이 떨어져서 주워온 장면
딱 두 장면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외갓집도 서울로 이사와서
어렸던 시절 시골 외갓집은 이렇게 하여 아스라한 기억 속에 묻혀 버렸다.

외가(外家)는
아버지에게는 처가(妻家)
나에게는 外家
나의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外家, 즉 진외가(眞外家)집이 된다.

이렇게 3대가 흘러가면
처가,외가 진외가는 우리 인간관계에서 지워져 버린다.

그래서,
예로부터
1세대가 30년,
3대면 90년인데,
대충 100년이라 하여
사위는 백년객(百年客)이라 하였다.

요즘 세상은 모든 것이 변하여 가고 있지만,
아직도 본가 중심 세상이다.
처가는 소홀한 대접을 받게 마련이다.

일전에
저의 장모님께서 췌장암 3기로 반년 이상을 고생하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으로부터 2003.2.12.(수) 아침에 전화가 왔다.

"야 왜 월요일 저녁 향우회 모임에 나오지 않았느냐."

'지난 목요일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토요일 산에 뫼시고,
월요일은 삼우날이라서 그랬다'

"야 마나님께서 신랑이 같이 가주어서 기분이 좋았겠다"


이런 사고방식의 동창들에게
장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어떻게 내겠는가.
그래서 조용히 지낼려고 하였는데,
처가의 일이라 알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으시고 귀하신 발걸음을 하셔서
분향하여 주신
마라톤 동지 여러분들에게
뒤늦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고,
일일이 전화도 드리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주신 따뜻한 마음은
살아가는 동안,
마라톤을 달리는 동안
깊이 깊이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양경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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