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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와 혹시사이(달리는 의사들 워크숍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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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3-02-11 13:22 조회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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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토)강남 성모병원 의과학 연구원 1층에서는 2003년도 제1회 달리는 의사들모임 주최 워크숍이 있었다. 몇몇 달리기 동무들과 함께 비 그친 오후에참석했다. 달리기를 좀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무엇보다 건강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라톤 대회에서의 급사와 레이스 패트롤"이라는 주제하에 1)마라톤과 심장질환, 2)탈수증, 저온및 고온손상, 3)마라톤 경기에서의 바람직한 응급의료체계,4)레이스패트롤의 프로토콜,5)레이스패트롤의 법적한계등 세부주제 발표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달리는 의사들 홈페이지를 참고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문적인 의학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해서 워크숍에 참가하고 느낀 소회를 간략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이동윤 회장님을 비롯해서 주제 발표에 나선 의사선생님들이 모두 마라톤을 직접하시는 분이시라 체험과 임상경험이 아울러진 강의내용이 현실감이 있고 이해하기 쉬워 무엇보다 좋았다.

작년 한 해 일어난 마라톤 관련 사고를 실례로 든 대목에서 나는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건강하자고 하는 운동이지만 무작정 아무 준비없이 하면 도처에 치명적인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레이스 패트롤제도의 운영과 대회주최측의 응급의료시스템도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서는 인력이나 장비 예산면에서 모두 형식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발표에는 아찔했다.

그동안 주최측이나 참가자 모두 티셔츠, 완주메달같은 기념품이나 이온음료, 바나나, 쵸코파이 같은 간식같이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시비가 일어난 것이 사실이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인데도 설마하며 그 가능성과 위험성은 모두 무시한 것이다. 사고예방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정작 사고가 터지면 책임소재를 놓고 모두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설마와 혹시 사이에서 방황하며 마라톤을 한 것같다. 설마와 혹시사이에는 무지(無知)와 자만과 감성과 낭만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코스는 푸른 하늘과 만산홍엽의 산, 맑은 호수를 배경으로 하는 절경을 자랑하지만, 그리고 모두 그 절경에 매료되어 칭송하지만 긴급구조체계를 가동하기에는 사각지대가 많아 치명적으로 위험한 코스라는게 의사선생님의 견해였다. 의암호 건너편에서 사고가 나면 접근과 후송이 모두 어렵다는 것이다.

지방대회에 참가하면 하루 전인 토요일에 내려가기가 쉽고 그립던 달리기 동무들과 즐겁운 술자리를 질펀하게 벌리고 못다 한 이야기 하느라고 밤이 이슥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그리고 이튿날, 숙취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풀코스를 완주하고 극기와 인간승리를 뽐낸다. 그 악조건을 무릅쓰고도 완주를 그것도 좋은 기록으로 했으니 내가 얼마나 힘이 좋고 건강하냐며 으시댄다. 그리고 또 완주의 기쁨과 작별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한잔, 또 한잔... 정말 철인들이다. 설마는 이런 철인들을 너무 좋아한다.

적절한 간격이나 휴식없는 무리한 대회출전은 쌓이는 완주메달과 기록증처럼 자랑이 결코 될 수 없다. 그것은 설마의 달콤한 유혹이다. 알게 모르게 몸은 위험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회요강을 볼 때 무엇부터 눈이 먼저 가는가? 기념품? 출발시간? 참가자수?코스....?
레이스 패트롤의 운영방식과 응급의료체계는 보이지도 않고 있어도 형식적이며 그래서 모두 간과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은 대회 참가비중 상당부분을 보험과 이 응급처리시스템에 투자하여야 한다. 마라톤은, 우리가 밥먹듯이 풀코스를 뛰는 그 마라톤은 과격하고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지금이라도 공론을 모아 표준을 만들고 법제화해야 한다. 생색이 나지 않는다고 설마에 의지하면 사고의 개연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마와 혹시 사이를 곡예하듯 뛰어다니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설마는 때때로 혹시로 변하여 사람을 잡는 법이다.

대회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주최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모두 본인 책임이라는 서약의 한 귀절은 설마와 혹시사이에 주최측의 무관심과 참가자의 자만이 공모하여 파놓은 죽음의 함정이다.

마라톤은 감상도 낭만도 정력제도 다이어트의 수단도 아니다. 마라톤은 과학적인 훈련과 치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 과격한 스포츠의 하나일 뿐이다.

어떤가? 이래도 설마와 혹시사이에서 방황하며 그저 달리고 볼 것인가?
달린 거리와 횟수와 시간에만 집착할 것인가?
(2003/02/11)

모닝스타 정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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