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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떠난 달림이의 겨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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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01-24 13:49 조회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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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떠난 달림이의 겨울여행

안녕하십니까 ?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입니다


잠실 롯데 호텔내의 렌트 카 아가씨는 커다란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나를 보자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아 ! 시간에 정확히 맞춰 오시는군요 ! 라고 말해주어 나를 괜시리 으시대게 만든다.
처절하리 만치 집착하는 나의 시간 약속에 대한 철저함을 몰랐단 말인가 ? 어쭈구리 !

나는 굿 모닝 ! 이라는 대답으로 아가씨 친절에 보답을 삼고, 한 달 전에 예약한
랜트 차량을 인수하는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대금 지불을 처리하는 렌트 카 아가씨의
가는 손마디가 애처로이 보이기까지 한다. 손마디가 짧고 굵은 나는 괜히 양손 열 가락을
싸잡아 빙빙 돌리며 추위 탓 인양 헛동작을 해본다

이윽고 난 15 인승 이스타나를 인수하여 운전대에 앉아 익숙치 않은 계기를 점검해보고,
역시 익숙치 않은 수동식 기어를 몇 번 작동해 보고 곧 차량을 출발시키어
친구들 여섯 명, 같이 나온 부인들 또 여섯 분, 도합 12 분 이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남녘의 K 시인이 작년부터 뜻을 전해 왔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로써 겨우 날을
잡고 여정을 확정하여 친구들 모두 출발하게 되었으니,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렌트 카 여행에 탑승한 친구들 모두, 부인들 모두 차가 들썩거릴 정도의 함박 웃음이
차내에서 끊이질 않는다. 지난 며칠 동안의 지독한 추위가 잠시 주춤한 듯 바깥 기온은
많이 누그러져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각자 차를 안 가지고 오고 이렇게 단체로
뭉쳐서 가니 꼭 소풍 가는 것 같다고 일행 중 누구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동의하며 함박 웃음이 다시 터졌다.

한 달포 전에 남녘의 K 시인은 전화기에 대고 말했었다.

" 으응, 나여 . 1 월 중순쯤 주말이면 어떨랑가 ? 마음이 스산하고 뭐 거시기 하면
그때쯤 친구들이랑 같이 내려와서 쉬었다 가, 잉 ? 그때쯤이면 내가 찹쌀 누룩으로
담아 논 과하주가 다 익어 항아리를 개봉해도 될꺼고 , 우리 집에 있는 백 동백도
두 세 송이 필 것이고... 매화는 어떨랑가 장담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 날
맞춰 서 너 송이는 피워 볼께. 내가 온도 맞춰서 안방으로 베란다로 한눈 안 팔고
옮겨 댕겨 신경 써 보면 두 세 송이는 피게 될꺼야. 머시던지 다 그렀지만
매화도 두 서너 송이 필 때가 제일 이쁘거던. 활짝 다 피워 버리면 그 맛은 또
거 거시기, 그 맛이 아니거든.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 다 성숙해져 버린 것 보다
그래도 거시기.. 뭐 약간은 덜 성숙한 게 사람 맛도 나고, 잉 ? "

그래서 출발한 오늘의 나들이, 초장만 약간 붐빌 뿐 천안에서 갈라져 논산으로 새로
뻗은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뻥이었다. 친구들만의 여행보다 부인들을 동반한 여행은
한결 포근하고 알 재미가 있다. 차안에서 몇 초 간격으로 터지는 까르르르.. 건강한
웃음소리는 일차 경유지인 고산 화암사에 차가 정차하고서도 끊일 줄 모른다

600 년 된 고찰, 화암사.
사실 이 사찰은 5 년 전, 책자에서 처음 접해서 아내랑 둘이 처음 들렀는데 조그맣고
이름 없는 이 절에 나는 금방 마음을 빼앗겼었다. 산골 벽지에서 살고 있는
전혀 화장이라고는 모르는 한 산골 아가씨 같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절같이
나의 마음을 쏘옥 앗아간 절, 나는 오늘 전주 나들이에 이 절을 포함시키어 친구들과
같이 그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더 맛보고 싶었다.

절 입구, 절 주변에 단 한군데의 먹거리집들이 없고 , 절로 올라가는 오솔길 내내
오염 없는 조그만 산 계곡 물이 쫄쫄 흐르고 있어 고즈녁하니 더욱 좋은 곳.
언제 단청이 있었는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가게 오랜 세월 전에 모두 퇴색 돼 버린
이름 없는 조그마한 절. 요사체 툇마루에 반나절 정도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쏟아
지는 햇살을 듬뿍 안아보고 나서 일어서고 싶은 절.

우리가 도착하여 절을 향해 오를 때 우리는 한 무더기 또 다른 외지 탐방객들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부산, 대구 등지에서 이 절을 탐방하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절 건축물에 대해 많은 호기심으로 뭉쳐진 열혈 신사, 숙녀 분들이었다.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작은 탄사를 발하며,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건전한 이들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보았다

작은 절 특유의 고요에서 샘솟는 안락함, 포근함을 마음껏 큰 숨으로 들여 마시며
절 뒷산으로 새로이 난 산 등성이 길을 따라 긴 비포장 도로를 따라 길게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재잘재잘, 까르르 우리들 함박 웃음들이 무표정하니 서 있는 겨울 산
나무들을 요리 조리 간지리고 또 간지렸다.

계획한 시간에서 약간의 여유가 있자, 우리는 지평선이 있는 김제를 가로질러 심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서해 바다의 낙조를 보고 저녁 식사를 했으면 하는 부인들의
제안에 어느 누구 불경한 다른 의견은 있을 수 없었다 . 차가 본격적인 김제 평야에
진입하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던 지난가을, 내가 이곳 지평선 마라톤을
뛰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 올려져 나는 탑승객들에게 예정에 없는 마라톤 코스 설명을
하게된다. 젖꼭지가 땀에 쏠리어 너무 쓰라린 나머지 길가의 빨강, 하양, 분홍 코스모스
잎파리를 뜯어 임시 브레지어를 하게 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곁들이면서...

겁나게 쭈욱 뻗은 끝간데 없는 징게 밍게 지평선 들판, 워메 징그런거 ! 신이시어 !
제가 정말 이 길을 뛰었단 말입니까 ? 나는 장난기 있게 한마디 해보고 징그럽게
곧은 그 길을 달리던 나의 지난 가을을 가만히 되살려보며 다시 뚫어져라 앞을 내다본다.

일행 중 이곳이 고향인 Y 가 말한다.

" 저기 저 일곱 집 중 가운데 집이 우리 집이었어. 이 들판을 농사 짓는 사람들의
집은 저렇게 일자 형식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랐는데, 겨울 아침이면 각자 솥에서
데운 물을 세수 대야에 담아 가지고 쪼르르 마당 끝에 나와 세수를 하곤 했는데,
울타리도 없는 바로 옆집이니 서로가 서로를 보며 세수하는 거지. 눈이 오면 서로
송판 당그레 들고 나와 누구네 집이랄 것 없이 같이 힘을 합해 눈도 치우고.... "

심포에서의 일몰은 그렇게 예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두꺼운 구름 층으로 넘어가는 해가 맥을 추지 못했고,
전주 K 시인의 집에서 약속된 우리의 저녁 식사시간이 빠듯하여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만 하였기에 우리 일행은 망해사 에서 서해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전주를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심포 항에서 의 백합 맛도 뒤로 미루고...

한 시간 후 우리는 전주시 인후동 아파트 단지 집 문 앞에서 K 시인의 영접을 받았다
K 시인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며 우릴 맞이하였으나 두 볼에 약간은 상기된
붉은 기운은 감추지 못했다. 친구들이 좋아 초대하였으나 나름의 걱정거리도
있었을 것이다. 음식은 무얼로 하나 ? 만일 음식이 맛없으면 어떻게 하나 ?
넓지 않은 아파트 , 들어와 앉았을 때 혹여 불편해 하면 어떻게 하나 ? 등, 등 등...

그러나 우리의 예의 바른 K 시인의 그런 걱정은 금방 기우로 판명 나는데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좌정해서 음식이 들어오자마자 적당한 시장기로
비워진 위에 음식을 나르는 숟가락, 젓가락 손놀림이 저절로 바빠졌기 때문이다.
부족할지 모른다는 소찬에 , 혹시 식사 전에 다른걸 드시고 오시면 입맛을 잃을지
모른다고 집에 오기 전에 다른 입맛 다시면 안 된다는 K 시인 부인의 엄명에 충실
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할까 ?

방안에 들어오며 방 입구에 세 송이 피워 놓은 매화 향기를 점쟎게 손 사례로 맡아본
우리들은 그 매화 향기도 향기려니와, 그 매화꽃을 우리들 도착 일에 맞추어 피어 내려고
노심초사 안 방으로, 베란다로 들고 다녔을 우리의 친구 K 시인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안방 입구에 두 송이 활짝 핀 하얀 백 동백꽃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고 ?

친구 L 이 일견해서 담박에 알아 맞춘 " 그리움 " 이라는 주제의 수석은 또 어떻고...
두 부부의 두 달 봉급을 털어 모아 샀다는 모 화가의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은 또 어떻고..
술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S 가 연방 감탄을 멈추지 않는 과하주의 그 맛, 술은 과연
담근이의 기술이 있어서 그리 맛이 있었을까 ? 절대 아닐 것이다. 친구들을 생각하며
65 여 일의 숙성 기간 동안 단 하루도 마음을 놓아보지 않은 그 진하디 진한 우정의
필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

서재로 쓰는 작은방에 옷을 걸려고 들어섰을 때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있다가 훅 !
하고 우리의 콧속에 사정없이 파고들던 묵은 고서들의 책 내음은 얼마나 좋은 단내인가.

끊임없는 파안대소 가운데 과하주를 담아 내오는 사기 주전자의 물 주둥이가 사기
술잔에 연신 고개 숙여 길고 긴 절을 해댈 때 우리들의 웃음은 창문을 통해 차거운
겨울밤 밤하늘을 향해 끝없이, 끝없이 피워 올랐다.

적당히 불러온 배들을 쓸며, 적당히 불콰해진 얼굴들을 서로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이조 고 가구에 대한 K 시인의 애정 어린 설명을 듣는다. K 시인은 후일의 재산 증식
수단으로 저런 우리의 고 가구들을 모았을까 ?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것을 사랑
하고 우리의 것을 보존해야만 하는 나름의 엄숙한 철학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애정이,
그 철학이 번듯한 반닫이 하나를 보면 십리를 마다 않고 달려가 몇 달을 쫓아 댕기며
쓰다듬고, 아우르고 그리고 임자 아닌 사람의 손에 넘어 갈까봐 또 다시 부부 두 달치
봉급을 털어서 사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진한 우정으로 익어 가는 남녘의 겨울 밤,
아파트 단지 동네가 떠들썩하게 저녁 인사를 하고 우리 일행은 교동의 한옥마을로
향했다. 신경을 많이 써서 정한 우리들의 오늘 밤 숙소, 한옥 마을 체험이다.
호텔을 숙소로 정하지 않고 한옥으로 정한 그 따뜻한 마음 배려는 우리가 한옥마을의
육중한 나무 대문 빗장을 열고 들어갈 때 이미 그 의미를 평가받았다.

지글지글 장작불을 때어서 놀놀해진 아랫목이, 옷도 채 벗지 않고 등을 뉘인 우리를
거기 그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 시커멓고 동그란 주물 문고리가 손에
잡히자 나는 내 어릴 때 먹던 내 작은 숟가락을 다시 찾은 것처럼 요리조리 돌려보며
손을 놓지 못 한다. 투명한 창호지로 바른 격살 무늬 방문으로 비치는 보름에서
하루 지난 둥그런 달님이 우리 서울 나그네들을 내려보며 살포시 기웃거리고 있고,
방문을 열자 크기별로 줄 맞추어 다소곳이 앉아있는 장독들, 그 위에 보물인양 내년까지
머리 위에 이고 가고픈 소담한 함박 눈덩이여 !!!

우리는 이곳에서 두 가지 프로그램을 짜놓았는데,

한가지는 접빈 다례의식의 시연으로, 불문에 들었다가 무슨 연유로 환속한 어느 분이
자상하게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의식을 설명하며 직접 시연해 주었다

또 한가지는 가야금 연주.
벗과 술이 있는데 음악이 빠지면 안될 터,
싸늘한 겨울밤에 우리의 전통 한옥 기와집 안에서 창호 방문 밖 고고한 달빛을
치마로 휘둘러 감고 앉아 친구들과 같이 듣는 가야금 연주는 우릴 당장 시선으로
들게 하였으니, 아 ! 이 밤이여 그저 이렇게만, 그저 이렇게만 머물었으면....

연주가 끝나고도 우리는 일어설 줄을 모르고 거기 그냥 한참을 머뭇거렸으나
밤이 많이 깊어져 연주의 재청을 할 수가 없어 이거이 못내 아쉬웠다.

각자 배정 받은 방으로 들어가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하려 했다
내 어릴 적 고만, 고만 형제들 흥부 새끼들처럼 검정 광목 이불에 하얀 호청 둘러친
큰 이불 속에서 오무레, 오무레 나란히 누워 잠들던 그 시절처럼, 우리는 큰 이불에
나란히 몸을 누이고 도란도란 우정을 이야기하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벗고 누운 우리가 그래도 덥다 느낄 정도로 지글지글 하게 찜질 방처럼 장작불을
처 때준 이름 모를 관리인에게 그저 고마움만 있을 뿐.... 아, 달콤한 우리네 한옥
구들장에서의 꿈결같은 꿀잠이여 !!!

.... 친구들과 같이 떠난 달림이의 겨울여행, 계속됩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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