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그렇게 뛰었습니다 > 만남의광장

본문 바로가기

만남의광장

어제 우리는 그렇게 뛰었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07-15 18:11 조회632회 댓글0건

본문

2002. 7. 15

나는 매우 가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전에 야구 연습 하다가 팔을 다쳐서
그 후로는 먹고사는 문제인 자판 두둘기는 것 이외에는 거의 팔을 쓰지 않아
많이 퇴화되어 있습니다.

팔이 너무 가늘어 어쩌다 친밀감을 표하기 위해 누가 내 팔을 잡을라 치면
나는 거의 자지러 질듯 놀래고, 어색한 동작으로 그 사람의 팔을
나에게서 떼어놓습니다.

그 동안 숨겨진 비밀이라면 비밀이지요.

그런데, 이 어색한 동작을 떼어 내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 가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시각 장애우와 동행해서 어디를 갈 때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시각 장애우를 도우려고 같이 길 안내를 하며 동행 할 때는
거기에 불문율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 시각 장애우의 신체를 잡는게 아니고요
그 시각 장애우의 어께를 가만히 툭툭 쳐, 도우미의 위치를 알리면서,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밝히고,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왼손이나, 오른손 팔목을 내밀면
그 시각 장애우는 도우미의 왼 손목이나,
오른쪽 손목을 잡고 같이 동행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전술한 이런 이유로 많이 쑥스러워 마음 고생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그럭저럭 참을 만 하여지더군요
까짓거, 가는 팔 흉 볼테면 흉 봐라 ! 일종의 뭐, 이런 식이지요.

어제는 시각 장애우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날씨는 안 좋지만, 오랫동안 뛰지 못해서 그러는데 오늘 꼭 한번 뛰고 싶다고....
같이 안내하며 뛰어줄 동반주가 가능한지 아주 조심스럽고도
몹시 미안해하는 목소리이었습니다.

비오는 일요일, 긴 소파에 인형 쿠숀 베개 머리 깊숙히 넣고
아내보고 부침이 좀 부쳐 달래며 " 도전 지구 탐험대 " 보려고 했던 계획이
뮤직 비디오 화면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순간이었지요..

누가 안된다고 하겠습니까 ? 당연히 나가야지요 !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못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일요일 반나절 단순히 쉬는 과정, 어떻게 쉬느냐 하는 방법론 뿐 인 것 을...
더구나 내 좋아하는 달리기를 같이 하자는데....
세상에, 얼마나 많이 망설이다 이렇듯 어렵게 부탁했을까 .... !!!

부상당해 거의 뛰지 못하는 발목이 마음에 걸리지만
까짓거, 우선 뛰고 보자 하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지요
그래, 오늘 같이 한번 뛰어 주고 나서 또 며칠 꿍꿍 앓자 !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이 가는 팔 또 한번 잡히게 되는구나 ! 라고 속으로 웃으면서.

그리고 나의 가는 팔을 잡히고는 뛸 장소인 양재천 대치교 아래에 도착,
둘이서 달리기 복장을 주섬주섬 챙기어 입었지요.

그러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내리는 비의 양도 더욱 많아졌지만,
우리는 뛰려는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나의 친구, 장애우는 준비해온 약 70 Cm 길이의 하얀 면끈을
나에게 내 밀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양쪽 끝을 잡았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가는 팔을 잡히지 않아 마음의 평정을 되 찾았구요

내리는 굵은 비로 방금 꺼낸 끈은 벌써 젖어 있어서 잡는 순간 촉촉한 물기가
고스란히 손목 안으로 전달되어 왔습니다
장애우의 슬픈 눈물만큼 젖어 있는 하얀 면 끈,
나의 못난 마음 자세를 돌아보며 잠시 숙연해져 봅니다
가는 팔이 마음에 걸려서 내 자신 속을 끓이다니...
쯧, 쯧... 언제나 철 나려나 ?? 발목이 아파도 싸다, 싸 !!

잠시 잠깐이지만 나 자신을 준엄하게 꾸짖어 보는 순간입니다.
........

자, 이제 우리 한번 뛰어 볼까요 ??

그리고 우리 둘의 폭우 속 달리기는 시작되었지요.
들풀이 사람 키를 훌쩍 넘어 터널을 이루고
갈대 잎은 그 폭이 30 Cm 뿔 잣대 폭 만큼 자라
후려치는 빗줄기에 제 몸을 가누질 못하는 양재천 길,

양 볼과 두 어께에 내리 쏟아져 쇄골 뼈에서 한 바탕 미끄럼 타고
다시 앞가슴과 뒤 어께 쭉지 아래로 내리 곤두박질치는 빗물 , 빗물,

뛸 때 마다 달리는 신발 밑에서 차박 ! 차박 ! 고인 빗물 갈라져
옆으로 튕겨 나가는 소리 ! 흥겨운 그 장단 !

공중 고가 도로의 빗물 홈통에서 거꾸로 쳐 박히는 월드컵 분수 물살 같은
가공할 빗물 낙하 !

탄천의 냇물은 급속히 불어나 유속을 빨리 하며
저만치 앞서서 우리를 빨리 오라 손짓합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폭우 속을 20 여 Km 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 끈을 풀었습니다
누워서 부치미 먹으며 두 눈만 꿈벅거리는 도전 지구 탐험보다는,
비오는 한강 둔치를 철벅거리며 마음의 눈, 귀, 가슴을 몽땅 열고
비오는 일요일 한강변 대 자연과 합환하였습니다

성한 자 에게는 쥐뿔도 새로울 것 없는 한강변 둔치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우 앞에는 어떤 감동으로 다가서는지
나의 설명을 들을 때 마다 끝없는 감탄사를 토해 내는 그의 반응에
나는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구요,

"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한강물이 많이 불었겠네요 "
" 아, 그럼 !. 둔치 밑 바로 저 계단까지 차 올라왔네요 "
" 와, 정말요 ?
" 아, 그럼 ! 그렇다니까 ! 저기 바로 계단 밑까지 왔네요 "
" 와, 그렇겠구나 !! , 한강 저 쪽도 불었어요 ? "
" 아, 그럼 ! 물이란 것은 항상 수평이니까, 저쪽도 그 만큼 올라왔지요 "
" 와, 정말요 ? "
" 아, 그럼 ! 그렇다니까 ! "
" 아, 그렇겠구나 ! "
..............

눈 한번 찔끔 뜨면 죄 보일 것을, 그렇게 봐버리면 쥐뿔도 화제도 아닐 것을
우리는 뛰고 또 뛰며 한강 다리 두 개 사이를 지나가도록
그 물음과 대답함을 이어 갔습니다

처벅 ! 처벅 ! 불어나 고인 빗물을 운동화로 가르며, 장단 맞추며
비오는 일요일 한 나절을 그렇게, 그렇게 뛰었습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