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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내년에 한 번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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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석산 작성일02-07-15 14:01 조회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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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내년에 한 번 해 보세요.

"형님, 내년에 한 번 해 보세요. 재미있어요..."

김창희님이 한반도 종단 550km 대회에서 23시간째 달리는 도중에 저와 통화한 내용입니다.

"그래?"
"정말 재미있어요."
"..."

그렇습니다. 김창희님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서울마라톤클럽이 주최한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였습니다. 그는 100km에 저는 63.3km에 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대회에서는 50km까지는 같이 달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와 저는 우연히 달리면서 통성명을 하게되면서 같이 달렸었습니다.
12년 나이 차이지만 그는 한마디로 '인생을 살아가는 멋과 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바짝 긴장하여 뛸 그 순간에 그는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잠깐만요. 저, 사진 좀 찍어 주시겠어요?"

구간별 자원 봉사자들에 카메라를 맡기고 저와 그는 같이 포즈를 취했습니다. 어라? 이건 마라톤이 아니네? 맞아요. 마라톤이 아닙니다. 그럼 뭐야? 소풍이지요.
맞습니다. 그는 소풍을 나온 것입니다. 맛있는 것 많이 있다고 좋아하는 그. 저는 앞만 쳐다 보는 데 희희낙락 재미있어하는 모양이 어찌 보면 철없는 아이와 같아 보이지만... 되돌아보면 철없어 보인 것은 앞만 바라보고 갔던 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사진 나왔어요. 지난 번 소풍 때 찍은 사진 요. 찾아가세요. (주소지 연락 바람)'

라면서 그 때 같이 사진 찍었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 주었고, 또 제게는 직접 찾아와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당진에서 저는 서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진은 당진이었습니다.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서산과 당진은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전히 제 머리 속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는 제가 속해 있는 100회 마라톤클럽에 따라서 가입을 했습니다.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젊습니다. 젊다는 것은 일면 강함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면은 날카로움을 말합니다. 그러나 강함과 부드러움을 같이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그는 강함과 더불어 부드러움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의 상흔을 넘어, 안정의 시대로 접어들고, 과잉된 가치의 남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는 영웅이 흔치 않으나, 여유가 있는 세상에서는 영웅이 흔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영웅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지, 인기를 얻는 정도의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으로 영웅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하지 못하여 사라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 아닐 것입니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는 아마도 조그만 소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울트라 마라톤의 경우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 '할 수 있다.'라는 강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길.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달려간 사람이 끝에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고 평화로운 얼굴을 지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일등을 향한 움직임이 아니라 정말 일등을 향해 나아갔지만 행복하게 즐겼노라 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를 잠시 얼빠지게 했던 히딩크가 우승을 했기에 멋있게 보인 것은 아닙니다. 또 그를 영웅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축구를 정말 사랑했고, 즐겼다고 봅니다. 우리 마라토너들, 울트라마라토너들도 바로 그런 정신의 소유자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경쟁하는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합니다. 혹자는 스포츠를 대리전쟁이라 합니다. 전쟁에는 득과 실이 있습니다. 스포츠에도 득과 실이 있는 것입니다. 선수, 관리자, 관중들 모두가 어떤 득과 실을 챙기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면에서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 합니다.
정말 살아가는 가치가 경쟁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할까요? 미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곧 서부로, 서부로 나아가면서 자연과 더불어 경쟁하면서 살아갔던 것은 개척정신이라 부릅니다. 울트라 마라톤, 진정 승자는 살아남는 자입니다. 그들은 개척자로 살아 남았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경쟁으로 이해한다면, 생존 확률은 떨어집니다. 정말 피흘리는 전쟁이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듯이.
저는 바랍니다. 자연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완주함에 기뻐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을. 또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김창희와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와 저는 달리는 속도가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그는 sub-3를 하였고, 저는 겨우 제한 시간 내로 달립니다. 그러나 같이 달리는 때가 많습니다.

'즐겁게 달리자.'

라는 생각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대회에 나가서도 먼저 들어간 그가 쫓아와서 같이 동반주해 주기도 합니다. 그와 저는 서산당진마라톤클럽(서당패)를 만들었을 때부터 같이해 왔습니다. 지금 그와 달렸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와 같이 달리고 싶습니다.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즐겁게 달리자고 약속을 했고, 또 그렇게 달리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영웅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겉모양일 뿐이라 생각하기에, 진정 달리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14인의 참가자 모두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요, 우리의 앞장서는 사람들로 지금 이 순간을 달리고 있기를...

"그래, 재미 있었니?"
"네, 형님. 내년에 같이 가요."
"글세?"
"진짜 재미있었어요."
"정말이야? 그럼 우리 내년을 기약해 볼까?"
"좋지요."
"그럼 당장 뛰자."
"네?"
"*서당패 24시간주..."
"형님, 살려 주세요..."
"그래도..."
"참, 안 되요. 시상식에 가야 되요."
"쯧, 하는 수 없지...그럼 다음달에 하자."
"네."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김창희. 지금 왠지 그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달리면서 항상 웃고자 하는 사람. 대회 날이 다가오니 맛있는 것 사달라고 보채던 그였습니다. 누군가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행복이란 것이 바로 저런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당패 24시간주는 7/20 15시부터 7/21 15시까지 서산시 종합운동장 주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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