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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양복과 작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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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6-28 13:59 조회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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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릭...'
'여보세요?'
'아, 우광호씨 전데요, 이번 일요일에 뭐해요?'
'특별한 약속은 없는데 아마 마라톤 할 것 같은데요?'
'그러지 말고, 우리하고 골프 한번 합시다.'
'누구하고 가는데요?'
'최부장하고, 머시기하고....거 있잖아요, 그 사람......'

망설여진다.
어떤 초청이든 쉽게 거절하지를 못하는 성격과 오랫만의 라운딩 유혹탓이다.
동반 플레이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확실히 이렇게 하루를 함께 해두면 관련업무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봉급쟁이에게 거의 20만원이 들어가는 골프는 큰 부담이다.
가정재정을 생각하니 선뜻 그러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잠시 보류.

'응, 퇴근 전까지 대답해줄께요.'


'띠리리릭...'
'전데요, 당신 오늘 몇시쯤 들어올 수 있어요?'
'글세, 일찍 퇴근한다고 해도 집에가면 8시반 정도, 되지 않겠어?'
'백화점이 몇시까지 하려나?'
'왜, 백화점 갈 일 있어?'
'응, 쎄일하는 걸 봤는데, 양복이 엄청 좋고, 많이 싸더라고요.'

공교롭게 집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은 후, 과감하게 친구에게 골프 불참통보를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식으로 못가는 이유를 밝힌 점이다.
자기 옷은 살 엄두도 내지않는 아내가
남편 양복 한벌 사주려고 별르고 별러오는 상황을 보니 차마 갈 수가 없다고했다.
바빠서, 또는 다른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지 않았다.
솔직히 가족 생각에 양심상 못가겠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는 수긍했다.
아내는 물론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다.


'당신, 이거 한번 입어봐요.'
'어? 옷 샀어?'
'응. 당신 다른 옷 가지고가서 같은 크기로 사왔는데, 정말 괜찮더라.'
'월드컵 4강 기념 쎄일 덕분에 양복 얻어 입네?'
'그러게 말이에요.'
'당신 것을 사야하는데...'
'난 됐어요.'

늦은 퇴근을 한 내게 낮에 사온 옷을 입혀놓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참 잘 샀네'를 연발하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안다.
저런 아내의 즐거움이 아마도 한참은 지속될 것임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만일 저런 아내에게 나 혼자 골프하러 가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또 아내 몰래 간다면 내 가슴에 걸릴 것이니,
불참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오늘은 이렇게
아내가 느끼는 작은 행복을 배반하지 않았음을 혼자 즐거워한다.


이번 일요일에는 반달에서 30km LSD를 해야겠다.

하지만 솔직히,
한동안 못했으니 골프도 함 가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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