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산을 달려보고... (6월 8일 풀코스달리기 참가기) > 만남의광장

본문 바로가기

만남의광장

처음 남산을 달려보고... (6월 8일 풀코스달리기 참가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6-09 14:14 조회639회 댓글0건

본문


처음으로 남산을 달려보고(처음이라 어렵다고 주저하는 분들을 위하여)


서울이 본향인 사람들을 모아 놓고 남산 팔각정을 물으면,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반은 될 것입니다.
아마도 창경원내에 있었던 동물원도 비슷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글을 시작하느냐면,
남산,
그것도 달림이들을 위한 환상적인 코스가 있다는것을 수십년 서울살이에 이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인천마라톤 후 거의 한달 반을 훈련다운 훈련을 못해본지라 남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 모임에는 달리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무수히 나오실텐데,
원래도 잘 달리지 못하는 실력으로, 그나마 언덕길을 뒤뚱뒤뚱 거린다면 무슨 창피인가...
듣기로 주로가 경사길이어서 오르내리다보면 고수들도 무척 힘들어 한다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디지털시대에는 후발주자들이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게 통설입니다.
물론 경쟁자의 조건이 엇비슷한 상태에서의 얘기입니다만 마라톤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경력도 일천하고 훈련량도 거의없는 사람이 과연 나가도 되나... 를 고민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처음 나오실 분들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다소 창피를 무릅쓰고서라도 가게 된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도 보고싶고, 달리는 그 자체가 좋고, 무엇보다도 힘들다는 남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요즘 너무 나태해진 자신을 스스로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인 삼성동을 나서서 강변도로를 지나(저는 88도로란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강변도로란 말이 얼마나 운치가 있습니까. 88이란 의도적인 단어가 싫거든요)
동호대교를 건너서 장충체육관을 지났습니다.
좌회전이 되지않아 직진하여 동국대입구로 잠깐 들어가는 시늉을 하다가
유턴하여 우회전하니 장충단길이 나왔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들더군요.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연설장면이 떠오르고,
장충체육관에서 '국민 여러분, 여기는 장충체육관 특설링입니다...'
라디오 중계방송하던 권투와 레슬링이 생각나고...
잠시후에 국립극장엘 도착하여 근처에 적당히 주차를 하였습니다.


이미 모임 장소에는 20여분이 모여서 삼삼오오 정담들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많이는 낯이 익은 분들이어서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낯선 이들과는 통성명을 하였습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런클분들도 다수 보였습니다.
희망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특히 저는 이윤희, 한택희와 함께 멍멍이 삼총사 한컷 했습니다.
허창수, 송재익 견우들도 생각이 났습니다.(다음부턴 꼭 나/오/세/요, 응?)


출발을 했습니다.
오늘은 2시간대에 풀코스를 주파한다는 소위 써브쓰리(sub-three) 주자들도 몇 분이 계셔서
굉장한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무섭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제가 1등을 달렸습니다.
2위는 그 무섭다는 전설의 반달장군 이명준님...
아아... 이렇게 저는 쟁쟁한 수십명을 거느리고 잠시동안 1등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코스는 출발기점을 0m로 하여 매 500m마다 흰페인트로 바닥에 표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초반 1,000m 까지는 내리막이어서 매우 편했습니다.
이어서 500m 정도는 평지코스. 하지만 1,500m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700m 정도가 계속되어 매우 힘들었습니다.
2,000m와 2,500m를 지나 드디어 3,000m 반환점을 돌아서니
어느새 캠프를 설치한 윤현수 총무님과 양승삼님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고 좀 쉬고 싶은데 총무님의 호령이 떨어집니다.

'형님들 뭐하는거예요. 빨리 가지 못해요?'

언제 들어도 정이 넘쳐나는 밝은 목소리입니다.
목소리가 밝은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선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돌아오는 길이 시작됩니다. 돌아오는 길은 당연히 역순입니다.
처음에는 평지와 약간의 지속적인 완경사 내리막이어서 순탄하게 오지만
반환 2,000m 지점, 즉 출발기점 1,000m 지점에 이르면 급격한 오르막이 기다립니다.
정말 올라가기가 싫습니다. 저만큼 올려다보이는 언덕이 미리 겁을 먹게 만드는군요.
하지만 출발지점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분들과
수박화채, 오이·미역냉채와 바나나, 쵸컬릿, 김밥, 사탕, 쥬스 등등 먹거리들을 생각하며
500m 정도에 이르는 오르막을 간신히 올라챕니다.
이제 평탄한 직선주로. 저만치 드디어 골인지점입니다.
왕복 6km에 34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7분의1을 해냈을 뿐입니다.
한번 더 다녀와야 음식에 손을 댈 수 있다는군요. 겨우 물 한잔을 얻어마시고 돌아섭니다.

'야, 이윤희개. 어서 출발하자고...'


오늘 남산을 달리며 제가 새롭게 발견하고 배운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 길에는 나이드신 시각장애인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정말로 놀랐습니다.
대부분 흰지팡이를 짚고 길을 더듬으셨지만 더러는 그냥 발의 감촉만으로
그 아스팔트 길을 상당한 속도로 걸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분들이 안심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마 국내에서는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윤희님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정말 달릴 때는 그분들게 피해가 가지않도록 세심하게 마을을 써야하겠습니다.

둘째, 놀란 것은 아직도 낭만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는 길의 산 아래쪽 방향으로 벤치들이 많이 있었는데
군데군데 젊은 커플들이 더러는 서로 어깨에 기대고, 더러는 다리를 베고 누워있더군요.
그들은 우리가 달리기를 시작한 3시부터 끝나가는, 어둠이 깃들던 시각까지 그러고 있더군요.
보면서 제가 저만한 나이였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런 곳을 찾는 젊은 친구들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셋째, 코스의 쾌적함이었습니다.
아마도 강변이나 운동장에서는 오후의 햇볕이 뜨거워서 이렇게 달리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거진 숲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선선한 기운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 덕분에 조금도 덥거나 힘들다는 생각없이 달릴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도 무척 자주 눈에 띄더군요.
출발지점 인근의 체육시설도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왠만한 헬쓰클럽에 버금가게 시설도 많고, 운동하기에 참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넷째로 새로운 '시'를 알았습니다.
반환점 가까운 곳에 설치했던 급수지점에 조지훈님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비의 한 면에는 시인에 대한 안내글이 깨알같이 적혀있었고,
다른 면에는 '파초우'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잠깐 기억에 혼란이 일었습니다. 제가 알고있던 '파초'는 김동명씨의 것 뿐이었으니까요.

'조국을 언제 떠났노 /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 / 너의 넋은 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렬의 여인...'

그렇지요? 그런데 그 시는 이랬습니다.

파초우(芭蕉雨)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조지훈님의 시답게 서정이 물씬 묻어나는 시... 새롭게 알았습니다.

다섯째,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원래 저는 달리면서는 '생각'만 합니다.
거의 말은 하지않고, 소위 '치열하게' 달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오늘은 종일 다섯쎗트,
30km를 달리는 동안 이윤희개와 시종일관 이런저런 얘기들을 유쾌하게 주고받으며 달렸습니다.
그는 뉴욕, 보스톤, 암스텔담, 런던 마라톤을 다 달리고
일본 100km, 제주 200km를 달린 백전노장답게 자신만의 달리기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조금 덜 달린 탓에 일찍 마치고 인근 평상에 잠시 누웠다가,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다가...
모든 분들이 골인했을 때까지, 아마 8시 전후였던가요? 기다려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준비물들...
파라솔, 대형 아이스박스 3개, 아이들이 깨벗고 들어가서 목욕하던 화채용 초대형 청색물통,
밥솥, 접의자, 깔개용 천막, 시계, 시계다리, 깃발, 현수막, 빨간 콘형 도로표지판,
생수·이온음료 여러박스, 쓰레기 큰 두 푸대...
나도 마무리를 기다려 거들기야했지만, 한계가 분명히 있어
열성적으로 준비와 마무리를 하시는 분들을 보기가 미안할 뿐이었습니다.

'야, 오늘 회비는 안걷냐?'

멋적게, 뻔히 대답없을 줄 알면서 한택희견에게 이런 질문만 해보고 맙니다.
행사봉사자님들, 오늘 정말 수고들 하셨고, 감사했습니다.

(3대째 한다는 평양면옥에서 택희, 윤희가족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냉면과 수육을 사준 윤희개... 고맙네.)


p.s.

잘못알고 있는 상식1. 신동희님은 남산 독수리다?

신동희님이 제게 마음의 상처를 주셨습니다.
달리기가 끝난 후 그가 인근 화장실에서 아주 익숙하게 샤워를 하더군요.
저는 쑥쓰러워서 그리하지 못했는데.
그러면서 동희님이 말씀했습니다.

'여기는 마랴, 우리 남산 독수리들의 아지트였는데...'
'독수리요?'
'그럼... 아니, 우광호씨 독수리를 모른다 마랴?
그럼 마/라/톤/하/는/사/람/도/아/니/네...' 그러셨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독수린지 삐아린지, 걸 모른다고 해서 날 마라톤 유아취급을 하다니, 음...
이곳을 아지트삼아 마라톤에 열심했던 나금풍님을 위시해서 6분의 이름들을 주섬주섬 대셨습니다.
모두들 익히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독수리를 모른다면 마라톤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책에도 없는 그릇된 마라톤상식입니다.
더구나 독수리는 분명히 5형제라고 배웠잖습니까? '독수리 5형제...'
근데 이분들은 6형제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독수리 형제가 아닙니다.
아마도 까마귀나 까치나... 아니면 잘해봐야 솔개 정도일 것입니다.

잘못알고 있는 상식2. 벗고 달리면 시원하다?

젤 먼저 윤희개가 윗통을 벗었습니다. 이해해줬습니다.
보니까 몸매도 좋았거든요. 게다가 도중에 부인과 아이까지 응원을 왔는데 나무랄 수가 없었습니다.
뭐... 이해해 줘야지요.
잠시후에 신동희님이 벗었습니다. 이 또한 이해할 만 했습니다. 원래 벗는데 일가견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잠시 후에... 너도나도 다 벗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유를 대었습니다.

'야, 벗으니까 이렇게 시원하고 좋구나. 진즉 벗을걸... 달리기가 절로되네.'

아마 대여섯바퀴 돌았을 무렵에는 10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벗은 그 자체를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취향이니까요.
다만 벗고 달리면 시원하며,
시원해서 더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전 입고 달려도 몸이 안따라줘서 힘이 들 뿐, 덥거나 땀이 많이나 못달리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왜, 봉주나 영조도 다 입고 뛰지 않았습니까?


(웃자고 한 표현이 많습니다. 너그러이 읽어주시길...^^ 오늘 반달 못간 것도 미안합니다.)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