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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에 대한 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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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창수 작성일02-06-09 18:41 조회6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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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에 대한 개소리.

곧 ‘스타워즈 에피소드 투’가 상영된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 구근 거립니다.
왜 애같이 그러느냐구요 하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보고 싶은 것을요.

뺑뺑이 하향평준화 세대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어려서 ‘황금박쥐’ ‘아톰’ ‘타이거마스크’를 보고 자라서인지, 조금 우리보다 나이든 분들과는 모든 것이 파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우리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듭니다.

일본에서도 만화 영화의 주인공인 ‘아톰’에게 국가 훈장을 주었다 합니다.
실제 인물도 아니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하여 일본이 세계적인 공업 산업국이 되는 데 있어서 이바지 한 바가 너무도 크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태권 동자 마루치 아루치’나 ‘태권 V’는 우리 다음 세대입니다.
이 영화들은 제가 중학교 때 나온 국산 만화 영화였습니다.
이미 중학생이 되면서 맞이한 사춘기 때인지라 만화 영화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졌을 때였지요.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삐죽 튀어 나와서, 이것 저것 만져보고 느껴보고 일깨우기 시작한 유년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시절이 생애에 있어서 제일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이때 만났던 ‘아톰’.
그러니 만화 영화같은 ‘스타워즈’를 아직까지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두 달 전에 있었던 일본 만화 영화 ‘공각 기동대’도 몰래 가서 보았거든요.
근데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생각만큼 못하더군요.

어찌 되었든 오노의 나라 미국에서 만든 영화이지만, ‘스타워즈 투’가 곧 상영된다니 많이 기다려 집니다.
근 20년 만에 나온 ‘스타워즈 에피소드 원’.
저와 비슷한 나이 대의 미국 시민들이 평균 1.8번 이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20년 만에 나오니까 옛 향수를 그리며 몰래 혼자 가서 한 번 보고, 아들 딸 가족들과 함께 또 한 번 보고 그랬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흥행을 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저도 2번 영화관에 찾아가서 보았습니다.
나이 70 넘어서도 이런 영화들을 좋아할 지 저도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많은 볼거리가 나온 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우주선과 미래 건물들 전투머신과 해괴망측하고 다양한 우주 생물들이 나옵니다.
저도 나름대로 엉터리 같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스타워즈’만 보면 저도 입을 쫙 벌리고 마는 경우가 이제까지 허다합니다.

저 번 ‘에피스드 원’ 장면에서도 여지 없이 수 많은 우주 생물들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무대를 우주라는 장으로 확대하다 보니 지구상의 인간만이 아니라 상상의 외계인 기괴한 화성인 등이 등장하는데, 마치 흑인이나 백인의 차이처럼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거래하고 또 서로 마시고 다투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여러 장면 중 가장 인상 깊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험상 굳고 무섭게 생긴 생물이 나오는 데, 그 옆에 민밋한 낙지같은 동물이 그러더군요.
‘이거 식용이야’

그러고는 그 옆에 리어커 같은 좌판대에서 도축한 그 동물의 고기를 파고 있는 장면이 언뜻 나오는 것 이였습니다.

실로 충격적 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충격적이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해괴망측한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니까 혼돈스러워서 그랬는지 뭐가 충격적이었는지 확실치 않게 그냥 막연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분명히 뒤통수 한 대를 호되게 얻어 맞았는데, 누가 때렸는가 돌아보니 누가 때린 것인지 모르는 뭐 그런 상황 같은 것 이였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가 몇 달 후인가 지나서 그 정체를 알았습니다.


실로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30년 안에 현존하고 있는 동물의 2,30 %는 멸종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멸종되어가는 속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것은 멸종하는 허약한 동물들의 나약한 DNA의 구조적 결함에 그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인간들 전횡에서 비롯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인간같이 생겼다고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모든 생물에 있어서 신 대변자로써 모든 생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또 신은 인간 중에서도 백인이기 때문에 다른 인종을 마치 동물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 들의 문화만이 신에게서 비롯된 선진 문화이고, 그와 다르면 야만인과 같은 하류 동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오신 양경석님께서 모처럼 좋은 말씀 한 마디 하셨습니다.
그래서 퍼 왔습니다.

“인도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신성시 하는 소를 잡아 먹는 민족들을 야만인이라 비하하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을 보이콧 하자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감사합니다.

서구 열강이 전 세계를 자신들의 사냥터로 생각하고 설치기 전까지 바로 그 이전까지 인류는 주어진 여건에서 별 욕심내지 않으며 그런대로 살아왔습니다.
각 문화권들은 변방에서 작은 충돌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그 문화권에서 잘 살고있었습니다.

우리도 옛부터 유교문화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고유의 문화를 나름대로 가지고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음식문화도 우리민족 나름대로 특색 있게 자리잡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불교 문화권도 함께 했던지라 우리민족은 육식보다는 채식이나 곡류를 주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왜 조선 말 때 사진보면 그 당시 밥 먹는 사진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밥그릇에 한 가득 덮은 밥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어린 시절보면 고기나 생선은 어쩌다 생일 때나 먹고, 평소에는 짠지나 김치 그리고 때마다 나오는 나물을 먹지 않았습니까.
제가 생각해 보아도 국민학교 시절 먹었던 밥그릇이 지금 먹고 있는 밥그릇의 두 배는 더 컷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종기 싸이즈가 요즘 밥그릇 크기입니다.

달리 밥 말고는 하루 생활에 필요한 영양가를 섭취할 수 없었던 때라 무지 많이 먹는 것으로 필요 영양가를 얻을 수밖에요.
우리 어린 시절까지 그랬으니, 그 이전이야 뻔하지 않았습니까.
괜히 밥그릇 큰 사진보고 놀란 척했지 사실 아닙니까.

하였튼 우리민족은 서양처럼 육식을 주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곡류와 함께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나물’ 문화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수도 없는 나물 종류.
콩나물, 취나물, 고사리나물, 달래나물, 쑥나물, 도라지나물...
정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물 종류에 참기름 몇 방울과 함께 범무려 놓으면 얼마나 맛이 있습니까.
채도 있지요.
무채, 오이채, 호박채, 잡채 등등등...
참 너무도 순박했던 또 맛도 있던 우리의 전통 고유 음식 아닙니까.
히야~ 입맛 돈다.

요즘 아이들은 간식으로 매일 닭다리 닭날개 뜯더군요.
언젠가 맛이게 하는 삼계탕 집이 생겨서 아는 분이 매일 먹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이 삼일인가 맛있게 먹고, 한 마디 하였습니다.
‘아무게님, 삼계탕 이거요, 일 년에 한 두번 먹는 거예요, 우리 벌써 일 년치 이상 먹었어요, 더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그렇습니다.
우리 유전자는 말입니다.
매일 육식하는 서구 식생활처럼 그 쪽으로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그 들은 3끼 식사에 고기가 들어가야 식사가 됩니다.
그 들의 주식은 빵이 아닙니다.
그 들의 주식은 고기입니다.

개고기도 그렇습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고기로 하는 서구와는 달리 우리는 일년에 서 너번밖에 먹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보신탕입니다.
달리 고기를 주로 먹지 않는 민족이다 보니 축산업이 발달되어 있을리도 없고, 몸은 허하고 그렇다고 농사 짓는 소를 잡아 먹을 수도 없고 해서 기르던 닭이나 개를 잡아 먹는 것 이였습니다.
돼지도 있지만, 이 큰 가축은 잔치나 큰 일이 있을 때 잡았지요.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개를 잡고 먹었습니다.
복날이라고 하는 시기는 말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릿고개도 힘들게 넘고, 아직은 수확할 때도 이르고 한 시기라 거의 먹을 것이 없을 때입니다.

어찌 이것을 하루 세끼 각종 고기로 식사하는 그것도 매일 매일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야만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전후 앞뒤 사정도 안 살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일년 열 두달 풀만 먹고, 나물만 먹고, 빵만 먹고 살면서 우리들 보고 야만인이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겠습니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오만한 사고방식으로 타 생물들을 얕보고 아무 죄책감 없이 함부로 살육하고 종 멸종이라는 파국으로까지 몰고가면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했습니다.
좀 진정하겠습니다.

만일 외계인이 있어서 지구를 방문했다고 가정합시다.
그가 소나 코끼리를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에 머리에 흉칙한 뿔과 코끼리 상아를 보면 무서워할 것입니다.
반면 털도 없고 뿔도 없는 인간과 마주치면 손가락을 내밀고 우습게 생긴 동물이라고 배꼽 잡고 웃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물로부터 커다란 소나 코끼리가 자신들의 식용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웃음을 그치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놀랄 정도가 아니라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스타워즈에서 받은 충격이 바로 이런 것 이였습니다.
제가 잠시 외계인이 되어 영화 속에 들어가서 그와 같은 상황을 만나고 충격받은 것이지요.

우리는 농경사회에서 착하게 살다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식민주의로부터 억압과 핍박을 받으며 또 그 들의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서로 싸우고 죽고 분단된 채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너무도 억울하기만 하여 쌍하고 팔 걷어붙이고 일어서서 200년 걸렸다는 산업화를 20년 단 순간에 본때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
그러나 그 만큼 너무나 많은 것을 단순간에 잃어버렸습니다.
서구의 산업화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뭔가의 희생을 밟고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식민 착취에서 이루어냈고, 우리는 많은 환경을 망가트리면서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를 있게 해주었던 소중한 가치를 일순간에 헌 마라톤 신짝 버리듯이 팽겨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이 나라에는 어른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헌신적인 어머니도 이제는 더 없습니다.
아이들만 있습니다.
천민 자본주의 사고만 남아있어, 한시도 쉬지않고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예(禮)라는 것을 이야기하다가는 도리여 봉변 당하기 일쑤입니다.

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개 이야기로 마무리 질까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동물은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애완동물과 가축 그리고 야생동물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유교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사람이 사는 방안에서 동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옥 구조상으로도 마루가 있는 독특한 우리가옥 안에서는 동물을 기를 구조가 아니였습니다.
그런 반면 통채로 된 서구의 가옥구조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집안에서 쉽게 길렀습니다.

이게 작은 차이 같지만, 한 지붕 아래 살게 되면 아무리 그 자체가 금붕어일지라도 한 가족, 한 식구이며 잡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서구에서는 개를 한 가족이나 식구로 여기게 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잡아 먹는다는 일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 겝니다.

우리는 유교국가였습니다.
유교적으로 부모를 버리는 일이 있을 수 없듯이, 유교적으로 빈약한 그들은 부모를 버리듯이 개를 버리곤 합니다.
왜 휴가 철이면 수 많은 개들이 버림을 받아 길거리를 헤메고 있어 큰 골치덩어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문제를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고, 우리 문화가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의 개식용 문제를 보고 야만스럽다 볼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화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 또한 개를 식구처럼 집안에서 키우는 가정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다니시면 아시겠지만, 보신탕 집보다는 몇 십배 많은 가축병원이 거리에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연히 개를 먹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도 어쩔 수 없는 현대화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문화가 자기네와 다르다고 함부로 한 국가 국민 전체를 보고 야만인이라고 지껄이면서, 세계 축제인 월드컵을 보이코트 해야만 한다고 설쳐대는 것입니까.
이거 다 자업자득입니다.
말이야 말이야.
못 배운 것이 함부로 마구 지껄이고 말이야.

다시 한번 프랑스 정부에 말씀 드리지만, 무식한 자국민 단속 똑바로 하십시요.
그런 사회 질서 규범도 없이 어떻게 전 세계를 상대로 세계최고가 된다는 말입니까.
보따리 싸게 된 것은 참 안 된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거듭나기 위해서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무기는 예였습니다.
서구에서도 그러지 않습니까.
멕시코도 있고 자원이 미국보다 풍부한 남미나 동남아도 있지만, 극동의 한국, 일본 그리고 지금 중국이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밑바닥에는 예를 중시하는 유교적인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예의 정신이 많이 아니 거의 없어져 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었던 예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천민 자본주의 사고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교외에 나가면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개 농장’ ‘개 사육장’ 입니다.
평생 철창에 갇혀 살 찌우는 수 많은 식용개들의 짖어 대는 소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개를 이렇게 식용으로 사육하였단 말입니까.
저 어렸을 때 이와 같은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88올림픽 이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 무식한 프랑스 여자가 떠들고부터 더 먹어대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생각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개 표정을 보면 이 개가 즐거워 하는지 무서워 하는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개과 동물인 늑대조차도 사람을 해칠려고 먼저 덤비지 않는다고 합니다.
로마의 시조 로물로스 형제도 개 젖 먹고 컷다고 하지 않습니까.
개라는 동물은 그 유전인자가 사람과 친하게끔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얻어맞으면서 훈련 받은 개들이거나 평생 묶여 있다가 어쩌다 개줄이 끊어져 뽕 맞은 것처럼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스트레스 받던 개라고 합니다.
풀어서 키우던 도사견이 세수대야 물에 얼굴 처박힌 어린 아이를 구했다는 애기도 있습니다.

식용 개 집단 사육.
저는 이거 반대합니다.
평생 철창에 갇혀 스트레스 받으며 사육된 개 그리고 그 개고기 반대합니다.
몸 보신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과연 평생 철창에 갇혀 죽는 날까지 스트레스 받던 그 개고기, 그 평생 한 맺힌 개고기가 과연 우리 몸에 얼마나 보신이 되겠습니까.

지금 광우병의 나라 영국에서는 획기적으로 이제까지의 낙농방법에서 그린-낙농방법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초원을 뛰어 다니면서, 양고기 내장이 혼합된 사료를 먹지 않고 신선한 풀을 먹으며 자란 소고기를 생산하여 철창에서 자란 소고기보다 비싼 값을 받고 불티나게 팔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개 식용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우리의 옛부터의 고유 음식문화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날부터 개 사육을 철창에서 식용을 목적으로 식당음식점에서 나온 찌꺼지로 개를 키웠는가요.
그리고 ‘보신탕’에서 88올림픽 이후 이름이 바뀐 ‘사철탕’ 그 이름처럼 일년 사계절 내내 개고기를 먹었는가요.

과연 우리가 부르짖는 우리의 전통 고유 문화라는 것처럼 옛부터 이렇게 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고유 전통 문화는 바로 '예'였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어찌 프랑스 예선 탈락이 씁쓸하네요.


멍멍멍.



hur. 개소리 허창수였습니다.


p.s.
먼저도 ‘개 먹지 맙시다’ 올려 놓고 많은 비난 받았습니다.
많은 비난 각오합니다.
그러나 꼭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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