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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17) -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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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강하 작성일02-06-07 08:28 조회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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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17) -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

>막대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짓거리를 볼짝시니 佛자와 卍자를 그리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숭제(崇濟)라는 땡중이 이렇게 노는 아이를 보고
>진내말, 길보랑 부부에게 한마디 이르는 것이었다.
>그넘참! 쪼끄만 넘이...
>훗날 저 아이에게 문자가 생길껀디 그라믄
>머글껀 피루음꾸 빅장 소기 쳐 바가 둔 채글 싸 각꾸
>발바다기 부리나케 큰뫼로 한거름에 줄다름쳐 오라니 깐두루. 각께. 다매바.

- 아직 4겹의 꿈속에 있음 -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그렇게 보통아이와는 다르게
성장하던 아이는 어려서부터 걸핏하면
휑하니 집을 나가 이곳저곳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하며
돌아다니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곤 하였는데 그러던 어느 봄 날,
하루는 아이가 쇠살이 달린 대나무 총으로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수십 마리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사냥 후에 가져가리라 생각하고 둠벙에 담가 두었다.
그리고는 사냥에 너무 열중 하다가 그 사실을 잊어 먹었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다시 사냥 가던 중
논두렁을 지나는데 어디서 아주 고통스런,
보통 우는 소리와는 다른 처절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지난해 자신이 버들가지에 꿰여 놓고 둠벙에 담가 둔 그 개구리들이었다.
- 내가 무심코 저지른 일로 이 많은 개구리들이 해를 넘기도록 고통을 받다니....
충격을 받은 아이는 몇 날, 몇 일이고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먹고
거의 피골이 상접하여 목불인견의 형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불현듯 땡중의 말이 생각난 진내말, 길보랑 부부는
벽장 속에 쳐 박아 둔 서책을 꺼내들고
아이를 안고 30리를 단숨에 달려 큰뫼로 갔다.
숲 속에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예의 그 땡중이 마당을 쓸고 있다가


완능가? 와 이리 늦게 완능가? 쪼까 있으먼 머얼리 가야는디...
거기 부려놓고 니 자슥은 주것다고 생각허고 꺼져뿌라.
그게 니 자슥 살리는 기리니께 아여 찾찌두 마!
차즈먼 니 자슥은 주거. 즉사혀.
허는 소행봐서 니 말년에 만나게 해줄끼구마.
허구헌날 정한수 떠노코 빌기나 혀! 그라고 시주나 마니혀.
명시며! 아랐찌? 그라믄 후닥딱 꺼져뿌라. 다매바.


열 두 살 어린것을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 버려놓고 돌아 온
진내말은 한시도 외아들을 잊을 수는 없었지만 꾹꾹 눌러 참아야만 하였고...
아이의 암자에서의 생활은 물통잡이로, 불목하니로, 사미승(沙彌僧)으로 지내었는데
그의 암자에서의 일이란 옹달샘 물을 길어오고, 장작이나 패고 아궁이에 불이나 지피는 일등과
의발을 챙기고, 해우소 청소나 하고, 소세물이나 떠오고 하는 등 허접스런 일 뿐 이었다.
그 일을 무려 십 여년이나 하였지만 땡중은 아이에게 변변한 말 한마디 건네기는커녕
따뜻한 눈길 한번 안주고, 글자 한 조각도 가르쳐주지 않고 허구헌날 핀잔만 주더니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면서 갓두리뫼라는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었다.
기실 땡중은 갈 때가 되었던 것인데 조용히 혼자서 좌탈입망하려고
아이를 떼어버리려 가르쳐 줄 것이 없다고 핑계를 댄 것인지도 몰랐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일년도 안 되어 부처가 될 수도 있다면서
그 세 권의 경전과 쌀 20말을 쪄서 말려 맷돌에 곱게 갈은
미숫가루가 들어있는 자루까지 챙겨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가는 도중에 숲을 보고, 짐승을 보고,
온갖 풀과 꽃을 보고 사람 사는 마을을 보았다.
그가 눈치 챌까봐 구름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이슬처럼
새가 된 나도 조심조심 따라 날아갔다. 살며시 그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이윽고 새가 된 내가 높이 떠서 가만히 살펴보니
아이가 도착한 곳은 갓두리뫼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동굴이었는데
그 동굴은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생각을 끊고 뜻을 구하는 곳)이라는 곳이었다.
밖에서 보면 민둥산같았는데 막상 올라보니 암벽이 병풍처럼 건들건들 하늘에 걸려있는 심산유곡이었다.
갓두리뫼 상봉에는 울금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아래 절벽 중간쯤에 동굴이 있어서
아이는 백 척이 넘는 단애(斷崖)의 낭떠러지를 칡넝쿨을 엮어 부여잡고 겨우겨우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절벽 틈서리에 네 평쯤 되는 수도하기 좋은 편평한 마당바위가 있는데
다람쥐 놀이터라고 이름지어 주고 싶을 정도로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측량할 수 없이 아스라한 단애의 골짜기이다.
골짜기에서는 스산한 바람이 숨막히게 몰아쳐 온다.
이러한 절경은 새가 된 나를 가만있지 않게 한다.
내가 지었는지, 누가 지었는지 모를
칠언율시 한 수를 지저귀어 본다.

공촉위제각저장(蚣矗危梯脚低長) 무지개 같은 칡넝쿨 다리 밑이 길어서
회신직하만심강(回身直下萬尋强) 몸을 돌려 곧장 겨우 내리니 만 길이 넘네.
지인이화금무적(至人已化今無迹) 지인은 이미 가고 자취마저 없는데
고옥수부상불강(古屋誰扶尙不疆) 다람쥐 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나?
장육정종하처현(丈六定從何處現) 장육은 어느 곳으로 좇아 나타날는지
대천유가통중장(大千猶可筒中藏) 대우주의 세계는 조그만 다람쥐 놀이터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네.
완산리은망기객(完山吏隱忘機客) 온뫼의 벼슬아치 하나 갓두리뫼에 숨어들어 나그네임을 잊으니
세수래분일변향(洗手來焚一辨香) 더러운 세속의 손 씻고 들어와 한 조각 향이나 살라볼까 하노라.


새가 된 내가 울금바위에 앉아서 보니
아이는 쌀가루 다섯 홉을 하루 동안의 양식으로 삼되,
그중 한 홉을 덜어내어 매일매일 벗처럼 찾아오는 다람쥐에게 주는 것이었다.
마치 다람쥐를 같이 수도하는 수행자처럼 대하듯이 다람쥐를 벗삼아 수도에 수도를 거듭하였다.
그렇게 칼로 베이듯 모든 생각을 끊고 수도를 하려 하였으나 생각 없이 수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아무튼 일찍이 샤카무니가 그랬듯이 선정(禪定, dhyana)을 드나들고 3업을 반추하는 수도(修道)에 수도를 거듭하여
(※ 三業 : 身業, 口業, 意業, 즉 신체의 동작과 언어, 의지의 작용을 말함. 이것에 의해 윤회의 길이 결정된다.)
1년이 지나,
2년이 지나,
3년이 지나도 수기(授記)가 없자 낙담한 그는 법의 그림자도 보지 못할 바에는 죽으리라 생각하고
부사의방장으로 내려왔던 울금바위로 다시 올라가 천길 단애의 아래로 몸을 던졌다.
파란 낙엽이 되어 청운의 꿈을 접고 그렇게 나락으로 추락하여 갔다.
이때 청의동자(靑衣童子)로 변신한 그가 기르며 같이 수도하던 다람쥐가 나타나
낭떨어지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몸뚱이를 받아 부사의방장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었다.

- 4겹의 꿈에 갇혀서 휘청휘청 달리다가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2002/6/7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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