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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벼락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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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2-02-02 00:40 조회7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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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인 변화에 반항하는 자신!

시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어떤 변화를 주면서 흐르고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것을 세월이라고 말하면서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변화된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어릴 적에 설빔을 입게 될 설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부픈 마음만큼이나 시간은
애가 타도록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틈만 나면 설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손꼽아 헤아려보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그날은 홀연히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늘밤이 지나면 설날을 빼고 며칠 남았다고 계산해두었는데
다음날, 설날까지 합해서 손꼽아보면 남아있는 일수는 전날과 똑같았다.
그러면 괜히 더 답답해지면서 빨리빨리 날짜가 지나가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때는 시간 개념이 다가올 것만 생각했지 지나간 것을 되돌아 볼 필요가 없었다.
지내온 나날이 짧아 지난 일들을 회상할 만한 추억거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일에만 집착하여 기다리는 시간이기에, 생각하는 것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 갈수록 우리는
이미 아름답게 채색되어 버린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게 되었다.
연륜이 깊어 질수록 자신이 겪어 온 지난 일들이 더욱 많아지므로,
그 만큼 되돌아 볼 것들이 다양해져, 스쳐온 나날들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돌이켜볼 때마다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은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나 버렸구나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그에 수긍하지 않고 그 시절의 모습으로 자신을 회귀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초등학교 친구들을 생각하면
이미 머리가 희어지고 대머리가 되어있을 그에 대한 인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함께 놀았던 어느 한 순간의 모습만을 회상하면서
자신도 당연히 그와 함께 그 정다웠던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성장해버린 자신의 신체 때문에
정신적인 육체변화는 초등학교 시절의 그 앳된 모습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이 들었다할지라도 성년이 된 20대의 자신 모습으로 머물러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나이에 따라 그렇게 변해가겠지만,
자신만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 어떤 시점에서 세월과 무관하게 지낼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그 연륜에 따라 변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렇게 수긍만 할 뿐,
다시 자신의 상념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로 수구하여 그런 감정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은 항상 20대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신체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의 질곡(桎梏)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심적 질곡현상은 더 이상 자신이 늙지 않으려는 내적 저항에서 나오는 것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 저항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하여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이에 따라 변화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심적 순응은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변모되어 있는 신체의 특정부위에서 부터 점차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적응해 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쇠퇴해 가는 육체에 이어 마음마저
그에 따라 늙어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 중에 나보다 5살이나 연배인 분이 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얼굴형이 동안(童顔)이여서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말도 안돼는 소리 그만 하라고 버럭 화를 내곤 했다.
비록 내 머리카락의 많은 부분이 희다할지라도
어떻게 5살이나 더 많은 사람과 비교할 수 있냐며 따지고 들었다.
그러면 그렇게 보인다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항변을 받곤 했다.
그래도 내가 그 분 나이만큼 들어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어려 보여 내 나이 또래로 보인다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인정은 해주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면, 나와 친구처럼 지내려는 그 분 의도와 달리
나는 그분을 깍듯이 "형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러면 우리 사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스런 눈으로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군대에서 이제 막, 대령으로 예편한 "미스터 박"이란 분이 자신의 일 때문에 날 찾아와
우리는 서로 익숙하게 되었다.
그 후, 군 생활에 젖어 있었던 그 분은 날 볼 때마다
절도 있는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면서 무척이나 날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달리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서로의 상태가 아니었기에
서로의 관계는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지난 연말, 늦은 밤까지 홀로 사무실에 앉아 일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맨날 동네에서 어울리던 "형님"이었다.
지금 사무실로 놀러갈테닌까, 문 잠그고 퇴근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무슨 일 일까?
전화 끊고 기다리는 시간은 호기심과 함께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찾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그 형님과 함께 대령으로 예편한 그분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
"나하고 친구 맞죠? 이 사람이 도대체 그것을 믿지 않아서 이렇게 확인하러 왔다닌까."
"아니, 형님하고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됩니까, 형님이지......"
그러자 옆에 서있던 대령출신의 미스터 박이 깜짝 놀라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함께 생맥주나 한 잔 하자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술잔을 주고받다가
한 순간에 나는 심한 충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나더러 이제 코메디 같은 형님소리를 그만 하라면서 미스터 박이 내 나이를 물어왔는데
내가 형님보다 5살 아래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동안 자기가 내게 깍듯한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던 것은
내가 50대 중반으로 보였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나이도 어린 사람에게 어떻게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으나, 말을 할수록 진지해졌기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이런 날벼락이 있는가?
내 마음속의 나이는 항상 20대에 머물어 있는데,
단지 머리가 많이 희다는 이유로 날 50대로 보다니!
그에 대한 내 심적인 저항이 시간이 흘러도 수그러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머리 염색약을 사와서
오늘은 시간을 내어 생전 처음으로 흰 머리카락들을 흑갈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자 아내가 한결 젊어 보인다며 웃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반항하지 않으면 그 만큼 마음마저 연약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희긋해보이는 머리카락을 검은 색으로 염색한다는 것은
어쩌면 세월의 흐름에 대처하는 심적 질곡현상(桎梏現象)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질곡현상은 자신의 자연적인 변화에 어떤 악센트를 줌으로써
생에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긍정적인 요소로 봐야할 것이다.
흑갈색으로 변해져 있는 내 머리카락을 보면서
나도 이제 다시 20대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내 심적인 욕심에 불과한 것일까?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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