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와 권세도 한순간의 욕심에 불과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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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2-01-26 00:42 조회7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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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국토종단 달리기 - 5 (마지막 편)
그래서 다리는 점차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번 마지막 전구간을 완주해보고 싶었다.
가깝게는 3월에 있을 제주 210km울트라마라톤을 대비해야 했고
멀게는 한라산에서 시작된 국종달 전구간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언젠가 한번, 내가 태어난 국토를 의미 있는 행사에 맞춰 달리면서
부족한 내 표현력이지만,
그에 대한 느낌과 지명들을 역사와 전설과 함께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5. 부귀와 권세도 한순간의 욕심에 불과하거늘......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네 번째 휴식장소인 내유초등학교 앞에 도달했다.
이제 까지 달린 거리는 약 39km 였기에
다리를 주무르고 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떡과 과일을 먹으면서도 완주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 때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정해성님이
지난해 국종달 경험에 맞춰 전구간 완주 시간에 대해 말해주어
내 나름대로 앞으로 남은 구간에 대해 정리가 되는 듯 했다.
다시 출발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힘들 거라면 앞쪽에서 달리며 자신을 가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대열의 중간보다 앞쪽 부분에 합류했다.
달리기 시작하자 가랑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통증이 오는 것 같았다.
또한 아침에 국립묘지 앞 화장실 빙판에서 넘어져 다쳤던 발목과 무릎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이번 구간만 뛰고 나머지 두 구간 중, 한 구간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종달 행사가 구간별로 되어 있기에,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구간을 달리는 도중에, 뒤따르는 차량에 내 몸을 의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봉일천(奉日川)을 따라 펼쳐져 있는 겨울 들녘은 황량하기만 했다.
파릇한 보리밭으로 덮혀 있는 남쪽 들판과 달리
짙은 회색으로 덧칠해놓은 것 같은 논밭들은 고즈넉한 시간들을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곳곳이 개발이란 미명아래 생채기져 있기에
한적한 전원의 풍경마저 느낄 수 없는 어정쩡한 도회지 속에 여분의 땅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주로(走路) 우측에는
소나무로 둘러쳐진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 잡은 능(陵)들이
누리고 싶었던 이승의 영휴세월(盈虧歲月)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혼유석(魂遊石)과 돌말[石馬]들의 시립(侍立)을 받은 채, 생과 사를 반추하는 듯 했다.
그렇기에 난간 없는 봉분(封墳)을 두 마리의 염소와 호랑이가 앞에서 각각 호위하면서
한 때의 영화를 그리워하다 속절없이 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능들은 공릉(恭陵)과 순릉(順陵)으로
한 시대의 권문세가로 풍림했던 한명회의 딸들의 묘소인데
자신의 권력을 향유하기 위해 장녀를 조선 8대왕 예종(睿宗)의 세자빈으로 책봉하였으나
다음 해에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살의 어린 나이에 승하하였기에
장순왕후(章順王后)라는 시호(諡號)만 받게 되었다.
이를 너무 아쉬워하여 그는 둘째 딸마저 9대왕 성종(成宗)의 비(妃)로 책봉하였으나
그녀 역시 19살의 나이로 하직하여 공혜왕후(恭惠王后) 라는 시호만 헌액 받아야 했다.
부귀영화도 한 순간의 욕심에 불과하거늘
그것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에 취하여 사리분별을 잃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인가 보다.
어떻게 자매로 태어난 여식들을 하루아침에 고부(姑婦)간으로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때, 권세욕의 허상들이 솔 향기로 저미는 공순릉(恭順陵)을 지나자
봉일천의 성호아파트 단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곳은 가을에 열리는 통일마라톤의 하프 출발점이였기에
앞으로 달릴 거리가 명확하게 머리 속에 그려져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옆에서 계속 나란히 달리고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정해성님이
여유 있게 국종달 깃발을 들고뛰면서 말동무가 되어 주어 무료한 감이 덜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로 쉴 월릉역은 아직 멀었는지
활처럼 휘어지면서 철길을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지루하기만 느껴졌다.
그래서 선창에 따라 힘있게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열의 열정에 의지하고 싶었다.
그 때, 구파발부터 계속 국종달 대열을 리드하기 위해
앞뒤를 오고 가던 일산호수마라톤클럽 이종윤님이 인사를 해왔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지만
인터넷 상에서 익히 성함만 알고 있었던 터라 반갑기만 했다.
그분은 마라톤의 열정 때문인지 달리는 내내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내리막을 달리던 국종달 행렬은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앞을 보자, 월릉역이 편안한 휴식처처럼 러너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가 약 52km이고 앞으로 15km 정도 더 남아 있었다.
이제 미련 없이 차를 타고 한 구간을 쉰 다음, 마지막 구간에서 다시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긴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보았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 이였다.
어차피 마지막까지 쉬지 말고 뛰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자리 있어요! 자리! 편안하고 따끈따끈한 자리가 있어요!"
버스 뒷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런너스클럽 이경열님이 장난스럽게 호객을 해왔다.
차안으로 당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자석처럼 당기고 있었으나
같은 극에서 밀리는 힘이 더 강하게 작용했는 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달리는 대열로 합류했다.
다행히 다음 휴식장소가 월릉역에서 약 7.5km 떨어진 "문산 사거리"라고 했다.
대열의 후미에서 무거워진 다리를 달래며 천천히 따라 달리자
교통신호봉을 들고 아침부터 내내 설쳐대던 서울마라톤 사대천왕 윤현수님이
빨리 빨리 뛰라고 재촉해왔다.
쉬었던 다리가 달리기에 적응하는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나
트럭을 타고 가면서 하두 닦달하기에,
"자기는 뛰지도 않으면서 그렇기냐"고 한마디하자,
"차 타고 다니면서 이렇게 설쳐봐요! 얼마나 기분 좋은데......" 얌체처럼 대답해왔다.
아주 고약한 심보로만 무장한 사대천왕인 것 같았다.
언제 주로(走路)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그냥, 코피를 터 버릴테닌까!!!
뛰는데 다리가 편해져 다시 정상적인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앞에서 달려가고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맏형격인 기쁨세상 정승재님이
갑자기 뒤로 쳐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발목 부분이 별로 좋지 않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자,
얼마 전부터 바로 옆에서 연륜도 지긋하신 분이 털모자를 쓰시고
아주 가벼운 발놀림으로 달리고 있었다.
누구일까? 호기심으로 눈을 돌리자,
서울마라톤 박영석회장님이 고희를 훨씬 넘긴 세월을 마라톤으로 활력을 돋구시고 계셨다.
아직은 새파란 내 눈으로 부러움을 훔치자,
바로 앞에 SRF마라톤학교 송철강님이 여유 있게 달리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사를 먼저 건네자, 너그러운 미소로 화답해왔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다.
연세를 잊고 마라톤 열정에 빠져 있는 모습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와 어울리게 서울마라톤 젊은 이동욱님도
노오란 반달셔츠를 덧입고 줄기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활기차게 달려가는 이 분들을 보자
월릉역에서 한 구간을 쉬려고 할 때, 우려했던 몸 상태가 한결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홍은동 고개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던 서울마라톤 박희숙님이
아직까지 지치지 않은 기색으로 전구간을 달리고 있었기에 더 없는 자극제가 된 것 같았다.
단정하게 잘 꾸며진 좌측의 문산역을 볼 수 있는 문산 사거리에 이르는 시간은
그리 지루하지 않게 다가왔다.
휴식 장소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어준 후, 다시 출발 대열에 들어서자
이제 임진각까지 여유 있게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빨리 뛸 사람은 앞 대열로 모이고, 서서히 뛸 주자들은 뒤쪽에 합류하라기에
어차피 힘들 것이라면 빨리 뛰어버리고 싶었다.
거의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이어서
아무리 빨라봐야 내가 못 따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주로(走路)는 어슷한 길이였지만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청백리이자 명재상인 황희정승(1363-1452)이 태어난 문산읍을
옆에 두고 달려가자, 이동윤 박사님이 한껏 여유 있는 폼으로 다가왔다.
서울마라톤 사이트 만남의 광장에 항상 좋은 의학상식을 게재해주셔서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달리기 생활이 가능하게 열어 주신 분이다.
국종달이 출발하는 잠실운동장 앞에서 뵐 때, 나처럼 전 구간을 뛰실 것으로 생각하고,
마라톤에 빠지면 의학박사님도 별 수 없다고 농담한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쉬어가면서 몸 상태에 따라 달리시는 모습이
무리해가며 어거지로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주로(走路)를 따라 달리는 러너들의 모습은 이제 활기차 보였다.
골인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기에, 넓게 뚫린 통일로의 한 차선을 완전히 메우고
바쁜 발놀림으로 앞서 뛰어가는 모습들 이였다.
그러나 이제 얼마가지 않으면 이 길은 끊어지게 된다.
잘못 수용된 이념으로 조국의 혈맥을 인위적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공존을 위한 것보단, 적대와 갈등으로 처절한 민족 상흔마저 겪어야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누구를 위한 분단이 아니라,
쌍방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헤게모니(Hegemonie)가 판을 쳐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모순들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그 동안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미사어구로
현혹 당해야 했으며, 코 뚫리고 귀 막은 벙어리가 되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는가?
환하게 넓어 보이는 길을 제쳐두고 임진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심정은
무거워진 다리만큼이나 천근의 납덩이가 누르는 것 같았다.
그냥 곧바로 달려가면 똑같은 한민족의 땅, 개성(開城)인데,
왜, 그 동안 그렇게 말 잘 들어왔던 민초들처럼 여기서 아무런 저항 한번 못해 본 채,
무조건 되돌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몇 안되는 양쪽 권력자들의 이념 놀음에 계속해서 놀아나야 하는가?
그들이 한 순간을 누리는 권세가 민족을 분단할 만큼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그것이 아무리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주는 냉전의 이데올기에서 시작되었다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가 아닐진대
왜, 거기에서 서로의 불편을 제거하는 쪽으로 각자 한 발짝도 양보하지 못한단 말인가?
복잡해진 상념 때문에 어지러워진 머리를 씻기 위해 앞을 보자
국종달 임시 종착지인 임진각이 뿌연 연무에 휩싸여 아스라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민족 분단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임진각은 한국전쟁의 한이 서려있는 곳으로
1972년에 북녘의 실향민들을 위해 약 6천평의 대지 위에
통일공원과 함께 3층 건물로 세운 것이다.
이 곳에는 북녘 전반에 걸친 각종 자료 및 화보들과
한국전쟁 때 상용되었던 탱크, 전투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 근처에는 1953년 포로들이 송환될 때 건넸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미군들의 참전탑이 있고, 우리나라 지형을 본 뜬 통일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조국통일 선창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국종달 행렬이 임진각 쪽으로 접어들자
주로(走路) 변의 많은 관광객들도 같은 한민족으로써 조국통일을 열망한 듯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주고 있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달려가는 러너들의 열창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딛는 발자국들은 그 동안 함께 이어 달려온 국토종단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2001년 10월 27일,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던 이 행렬이
해를 넘기며 그 동안 남녘의 국토를 누비며 통일의 씨를 뿌려왔을 것이다.
비록 허울 좋은 이념의 장벽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지만
언젠가는 북녘의 땅에도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 국토를 이어 달릴 수 있는 국종달 행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동안 이 행사를 주관하여 추진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이러한 국종달 행사와 더불어 조국 통일이 하루 빨리 실현 되기를 기원하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2002년 01월
그래서 다리는 점차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번 마지막 전구간을 완주해보고 싶었다.
가깝게는 3월에 있을 제주 210km울트라마라톤을 대비해야 했고
멀게는 한라산에서 시작된 국종달 전구간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언젠가 한번, 내가 태어난 국토를 의미 있는 행사에 맞춰 달리면서
부족한 내 표현력이지만,
그에 대한 느낌과 지명들을 역사와 전설과 함께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5. 부귀와 권세도 한순간의 욕심에 불과하거늘......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네 번째 휴식장소인 내유초등학교 앞에 도달했다.
이제 까지 달린 거리는 약 39km 였기에
다리를 주무르고 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떡과 과일을 먹으면서도 완주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 때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정해성님이
지난해 국종달 경험에 맞춰 전구간 완주 시간에 대해 말해주어
내 나름대로 앞으로 남은 구간에 대해 정리가 되는 듯 했다.
다시 출발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힘들 거라면 앞쪽에서 달리며 자신을 가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대열의 중간보다 앞쪽 부분에 합류했다.
달리기 시작하자 가랑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통증이 오는 것 같았다.
또한 아침에 국립묘지 앞 화장실 빙판에서 넘어져 다쳤던 발목과 무릎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이번 구간만 뛰고 나머지 두 구간 중, 한 구간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종달 행사가 구간별로 되어 있기에,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구간을 달리는 도중에, 뒤따르는 차량에 내 몸을 의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봉일천(奉日川)을 따라 펼쳐져 있는 겨울 들녘은 황량하기만 했다.
파릇한 보리밭으로 덮혀 있는 남쪽 들판과 달리
짙은 회색으로 덧칠해놓은 것 같은 논밭들은 고즈넉한 시간들을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곳곳이 개발이란 미명아래 생채기져 있기에
한적한 전원의 풍경마저 느낄 수 없는 어정쩡한 도회지 속에 여분의 땅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주로(走路) 우측에는
소나무로 둘러쳐진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 잡은 능(陵)들이
누리고 싶었던 이승의 영휴세월(盈虧歲月)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혼유석(魂遊石)과 돌말[石馬]들의 시립(侍立)을 받은 채, 생과 사를 반추하는 듯 했다.
그렇기에 난간 없는 봉분(封墳)을 두 마리의 염소와 호랑이가 앞에서 각각 호위하면서
한 때의 영화를 그리워하다 속절없이 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능들은 공릉(恭陵)과 순릉(順陵)으로
한 시대의 권문세가로 풍림했던 한명회의 딸들의 묘소인데
자신의 권력을 향유하기 위해 장녀를 조선 8대왕 예종(睿宗)의 세자빈으로 책봉하였으나
다음 해에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살의 어린 나이에 승하하였기에
장순왕후(章順王后)라는 시호(諡號)만 받게 되었다.
이를 너무 아쉬워하여 그는 둘째 딸마저 9대왕 성종(成宗)의 비(妃)로 책봉하였으나
그녀 역시 19살의 나이로 하직하여 공혜왕후(恭惠王后) 라는 시호만 헌액 받아야 했다.
부귀영화도 한 순간의 욕심에 불과하거늘
그것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에 취하여 사리분별을 잃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인가 보다.
어떻게 자매로 태어난 여식들을 하루아침에 고부(姑婦)간으로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때, 권세욕의 허상들이 솔 향기로 저미는 공순릉(恭順陵)을 지나자
봉일천의 성호아파트 단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곳은 가을에 열리는 통일마라톤의 하프 출발점이였기에
앞으로 달릴 거리가 명확하게 머리 속에 그려져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옆에서 계속 나란히 달리고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정해성님이
여유 있게 국종달 깃발을 들고뛰면서 말동무가 되어 주어 무료한 감이 덜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로 쉴 월릉역은 아직 멀었는지
활처럼 휘어지면서 철길을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지루하기만 느껴졌다.
그래서 선창에 따라 힘있게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열의 열정에 의지하고 싶었다.
그 때, 구파발부터 계속 국종달 대열을 리드하기 위해
앞뒤를 오고 가던 일산호수마라톤클럽 이종윤님이 인사를 해왔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지만
인터넷 상에서 익히 성함만 알고 있었던 터라 반갑기만 했다.
그분은 마라톤의 열정 때문인지 달리는 내내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내리막을 달리던 국종달 행렬은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앞을 보자, 월릉역이 편안한 휴식처처럼 러너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가 약 52km이고 앞으로 15km 정도 더 남아 있었다.
이제 미련 없이 차를 타고 한 구간을 쉰 다음, 마지막 구간에서 다시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긴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보았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 이였다.
어차피 마지막까지 쉬지 말고 뛰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자리 있어요! 자리! 편안하고 따끈따끈한 자리가 있어요!"
버스 뒷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런너스클럽 이경열님이 장난스럽게 호객을 해왔다.
차안으로 당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자석처럼 당기고 있었으나
같은 극에서 밀리는 힘이 더 강하게 작용했는 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달리는 대열로 합류했다.
다행히 다음 휴식장소가 월릉역에서 약 7.5km 떨어진 "문산 사거리"라고 했다.
대열의 후미에서 무거워진 다리를 달래며 천천히 따라 달리자
교통신호봉을 들고 아침부터 내내 설쳐대던 서울마라톤 사대천왕 윤현수님이
빨리 빨리 뛰라고 재촉해왔다.
쉬었던 다리가 달리기에 적응하는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나
트럭을 타고 가면서 하두 닦달하기에,
"자기는 뛰지도 않으면서 그렇기냐"고 한마디하자,
"차 타고 다니면서 이렇게 설쳐봐요! 얼마나 기분 좋은데......" 얌체처럼 대답해왔다.
아주 고약한 심보로만 무장한 사대천왕인 것 같았다.
언제 주로(走路)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그냥, 코피를 터 버릴테닌까!!!
뛰는데 다리가 편해져 다시 정상적인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앞에서 달려가고 있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 맏형격인 기쁨세상 정승재님이
갑자기 뒤로 쳐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발목 부분이 별로 좋지 않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자,
얼마 전부터 바로 옆에서 연륜도 지긋하신 분이 털모자를 쓰시고
아주 가벼운 발놀림으로 달리고 있었다.
누구일까? 호기심으로 눈을 돌리자,
서울마라톤 박영석회장님이 고희를 훨씬 넘긴 세월을 마라톤으로 활력을 돋구시고 계셨다.
아직은 새파란 내 눈으로 부러움을 훔치자,
바로 앞에 SRF마라톤학교 송철강님이 여유 있게 달리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사를 먼저 건네자, 너그러운 미소로 화답해왔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다.
연세를 잊고 마라톤 열정에 빠져 있는 모습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와 어울리게 서울마라톤 젊은 이동욱님도
노오란 반달셔츠를 덧입고 줄기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활기차게 달려가는 이 분들을 보자
월릉역에서 한 구간을 쉬려고 할 때, 우려했던 몸 상태가 한결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홍은동 고개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던 서울마라톤 박희숙님이
아직까지 지치지 않은 기색으로 전구간을 달리고 있었기에 더 없는 자극제가 된 것 같았다.
단정하게 잘 꾸며진 좌측의 문산역을 볼 수 있는 문산 사거리에 이르는 시간은
그리 지루하지 않게 다가왔다.
휴식 장소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어준 후, 다시 출발 대열에 들어서자
이제 임진각까지 여유 있게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빨리 뛸 사람은 앞 대열로 모이고, 서서히 뛸 주자들은 뒤쪽에 합류하라기에
어차피 힘들 것이라면 빨리 뛰어버리고 싶었다.
거의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이어서
아무리 빨라봐야 내가 못 따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주로(走路)는 어슷한 길이였지만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청백리이자 명재상인 황희정승(1363-1452)이 태어난 문산읍을
옆에 두고 달려가자, 이동윤 박사님이 한껏 여유 있는 폼으로 다가왔다.
서울마라톤 사이트 만남의 광장에 항상 좋은 의학상식을 게재해주셔서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달리기 생활이 가능하게 열어 주신 분이다.
국종달이 출발하는 잠실운동장 앞에서 뵐 때, 나처럼 전 구간을 뛰실 것으로 생각하고,
마라톤에 빠지면 의학박사님도 별 수 없다고 농담한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쉬어가면서 몸 상태에 따라 달리시는 모습이
무리해가며 어거지로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주로(走路)를 따라 달리는 러너들의 모습은 이제 활기차 보였다.
골인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기에, 넓게 뚫린 통일로의 한 차선을 완전히 메우고
바쁜 발놀림으로 앞서 뛰어가는 모습들 이였다.
그러나 이제 얼마가지 않으면 이 길은 끊어지게 된다.
잘못 수용된 이념으로 조국의 혈맥을 인위적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공존을 위한 것보단, 적대와 갈등으로 처절한 민족 상흔마저 겪어야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누구를 위한 분단이 아니라,
쌍방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헤게모니(Hegemonie)가 판을 쳐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모순들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그 동안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미사어구로
현혹 당해야 했으며, 코 뚫리고 귀 막은 벙어리가 되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는가?
환하게 넓어 보이는 길을 제쳐두고 임진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심정은
무거워진 다리만큼이나 천근의 납덩이가 누르는 것 같았다.
그냥 곧바로 달려가면 똑같은 한민족의 땅, 개성(開城)인데,
왜, 그 동안 그렇게 말 잘 들어왔던 민초들처럼 여기서 아무런 저항 한번 못해 본 채,
무조건 되돌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몇 안되는 양쪽 권력자들의 이념 놀음에 계속해서 놀아나야 하는가?
그들이 한 순간을 누리는 권세가 민족을 분단할 만큼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그것이 아무리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주는 냉전의 이데올기에서 시작되었다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가 아닐진대
왜, 거기에서 서로의 불편을 제거하는 쪽으로 각자 한 발짝도 양보하지 못한단 말인가?
복잡해진 상념 때문에 어지러워진 머리를 씻기 위해 앞을 보자
국종달 임시 종착지인 임진각이 뿌연 연무에 휩싸여 아스라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민족 분단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임진각은 한국전쟁의 한이 서려있는 곳으로
1972년에 북녘의 실향민들을 위해 약 6천평의 대지 위에
통일공원과 함께 3층 건물로 세운 것이다.
이 곳에는 북녘 전반에 걸친 각종 자료 및 화보들과
한국전쟁 때 상용되었던 탱크, 전투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 근처에는 1953년 포로들이 송환될 때 건넸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미군들의 참전탑이 있고, 우리나라 지형을 본 뜬 통일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조국통일 선창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국종달 행렬이 임진각 쪽으로 접어들자
주로(走路) 변의 많은 관광객들도 같은 한민족으로써 조국통일을 열망한 듯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주고 있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달려가는 러너들의 열창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딛는 발자국들은 그 동안 함께 이어 달려온 국토종단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2001년 10월 27일,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던 이 행렬이
해를 넘기며 그 동안 남녘의 국토를 누비며 통일의 씨를 뿌려왔을 것이다.
비록 허울 좋은 이념의 장벽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지만
언젠가는 북녘의 땅에도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 국토를 이어 달릴 수 있는 국종달 행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동안 이 행사를 주관하여 추진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이러한 국종달 행사와 더불어 조국 통일이 하루 빨리 실현 되기를 기원하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200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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