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호수마라톤참가기]작은 것이 아름답다. > 만남의광장

본문 바로가기

만남의광장

[일산호수마라톤참가기]작은 것이 아름답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0-12-11 11:13 조회842회 댓글0건

본문

아침 사무실

지금 서울 온도가 영하7도라 한다. 올 들어 제일 추운 날씨라고도 하고.
월요일 아침인데도 그리 도로가 막히지 않아 사무실에 도착하니 7시 10분에 불과하다.
카페인을 줄였다는 맥심 인스턴트 막대커피 한 봉을 뜯어 머그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설탕을 별로 즐기지 않으므로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막대모양의 한 편 끝에 몰려있는 설탕의 량을 조절할 수 있으련만
무심코 다 부어버리고 마는 것은
이른 아침만큼은 머리를 쓰고 싶지 않은, 오래된 샐러리맨의 습관 탓일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오는 동안에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생각했다.
어젯밤에 본 티비의 프로그램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이들을 일시보호소에 맡긴 아버지가 하던 말,

'혼자라면 서울역에라도 가겠는데...'라는 말이
가슴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추운 날씨에 '툭'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버지는 다행히 아이들을 곧 되찾아 가정을 복구했지만
처음 아이 둘을 보호소에 맡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놓던
처절한 그의 뒷모습이 내 망막에 각인된 듯 하다.


일산으로

이제는 어제의 일산 마라톤을 생각한다.

산본의 아파트를 나서는데 가는 빗방울이 몇몇 듣는다.
뉴스에서 비 올 확률이 얼마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했었는데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우천불구 강행이라는 주최측의 의지를 확인했었던 탓에
애써 염려를 떨쳐버리고 도시고속도로에 올라 김포, 일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기판은 120, 130을 넘나든다.

오래 전 한 커미디언이 진행하는 에너지절약 프로그램에서
에너지관련회사에 근무하는 분이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볼 때마다
'...기름을 바가치로 퍼붓는 격...'이라고 설명하던 생각이 나서
혼자 웃으며 엑셀러레이터에서 잠시 발을 떼어내 보지만,
이내 지긋이 발에 힘을 다시 주고 만다.


백마역광장 풍경

9시 20분쯤 비교적 일찍 도착한 역 근처에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손으로 그린 안내판들이 여기저기 세워져있어 불편이 없었다.
주차장인 백마초등학교 인근에도 일산호수마라톤클럽회원(이하 '회원') 두 명이
배치되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추위를 생각하니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백마역광장으로 갔다.
추운 날씨에 모든 분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있다.
배번을 받고 나도 탈의실로 설치한 임시텐트 앞의 망설이는 대열에 섰다.
일진광풍이 불어 세 칸 짜리 이어진 천막이 무너질 듯 저만큼 끌려가다 선다.
광장 한 편에서는 따뜻한 커피물을 끓이고 있고
회원 두엇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펙(peg)을 구해 보도블럭 틈새에 박고
천막 모서리를 비끌어매고 있다.

10시 20분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윽고 출발시간이 다가오고... 사회자는 자연스레 둥그렇게 둘러선 사람들에게
새로이 재기하는 김완기선수를 소개했다.
서울 마라톤 웹페이지에서 그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진심으로 성공하길 빌었다.

다음에는 모 탤런트를 역시 소개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얼굴도 둥그렇고 몸도 아주 뚱뚱한 모습이었는데
너무 날씬하고 생각보다 어려보여 다시 한 번 놀랬다.
사회자는 그가 마라톤으로 몸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다음에는 고양시장이 간단한 환영사를 했다.
모두가 간략하면서도 지나친 격식을 차리지 않아 너무 좋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하였다.


달리기

역광장에서 징소리와 함께 출발하여 남쪽으로 약 2킬로미터를 갔다가
다시 역으로 되돌아와서 이제는 북쪽으로 3킬로미터 남짓을 갔다오면 1회 왕복으로
약 10킬로미터 남짓이 되는데 이를 두 번 반복하는 코스였다.

코스는 주로 공원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것이었으며
몇 군데 작은 도로를 건너야하는 불편은 있었으나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필요한 곳곳에는 경찰과 함께 회원들이 최선을 다하여 정리를 하고 있었으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회원들 중 상당수가 목청에 장애가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주자들이 많지 않은 탓에 혼잡도 없고 비록 대로를 달리는 맛은 없었지만
아담하고 단출한 분위기가 제법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잊게 해주었다.
망설이다가 그냥 운동복을 위아래 모두 입은 채로 달렸다.
충분한 스트레칭과 운동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간은
밖의 찬 공기에 적응이 덜 된 듯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첫 왕복 10킬로미터를 달려 역 광장에 도착한 후 급히 운동복을 벗어
광장의 벤취에 던져두고 마라톤 팬츠와 반팔 상의만을 입고 두 번 째 왕복에 임했다.
찬바람이 전신에 와 닿는데 유난히 허벅지 부위만이 긴장될 뿐 다행히
모두가 괜찮았다. 몸이 충분히 풀린 덕분으로 생각되었다.
낯이 익은 외국인 주자가 무섭게 달려 벌써 골인지점에 들어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2등과 8분 차이로 골인했다 한다.

일전에 동료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반환점을 돌고 나면 무척 힘이 들던데?' 라고.

나는,
'출발할 때가 제일 힘이 들고 반환점을 돌고나면,
특히 마지막 구간에는 기운이 더 나던데?'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이 그랬다.

일천하기 짝이 없는 경력이지만 출발선상에 서면 설레임(positive)과 더불어
아, 언제 이 거리를 다 뛸 수 있을까하는 염려(negative)가 공존한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중간선을 지나면 아,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았구나,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새롭게 설레고
심지어 골인지점에 다다르면 조금만 더 달리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드니,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변덕스러운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하튼 마지막 5킬로미터 정도에서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덕분에 기록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몇 분 단축하여
1시간 48분에 들어왔다.


깨달음과 감사의 말씀

마라토너는 달리는 것이 우선 가장 즐거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번 대회에서 거둔 큰 수확은
봉사의 기쁨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이었다.
준비과정의 어려움도 컷겠거니와 당일의 나쁜 천후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었기에
대회가 원만하게 진행되어감에 따라 회원들 한 분 한 분의 얼굴들이 그리도 밝아지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기쁨을 감추지 들 못하셨을까....

얼마전 모 클럽 웹페이지에서
매주 실시하는 달리기모임의 자원봉사자에 대한 토론을 보아오긴 했지만
이 번 대회를 통하여 그 의미를 새삼 체감하였음을 감사드린다.
그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봉사에
내년부터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손을 힘차게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진다.

왜 하필 내년부터냐고 물으신다면
12월31일 달리기에는 꼭 선수로 참가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아, 이 버릴 수 없는 집착이여.


(2000. 12. 11)


(느낌이 퇴색하기 전에 두서없이 몇 자 적었습니다.
귀 대회에 누가 되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1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