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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덤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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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팔영 작성일05-10-17 09:18 조회3,1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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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덤비지 말자"


금년 초여름 니치난울트라마라톤대회의 37km 부문에 참가했다.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는 100km 단일종목이지만 일본 니치난대회는 우리 같이 훈련이 덜 된 마라토너들을 위하여 37km부문을 배려해 놓은 듯 싶다.(100km를 달려보고 느낌)

니치난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태의 나에게 우리 마라톤동호회회장(채모)이 참가를 적극 권유해 왔고
수차 참가권유를 뿌리치고 있던 차에 허리에 통증이 아주 심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가 아닌가 싶어 허리까지 아파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우리회장 왈, 함께 가지 않으려고 별 핑계를 다 댄다며 믿으려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뿌리칠 수가 없어 광진구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아가 현재 허리통증이 아주 심한데 열흘 후 쯤 일본에 가 37km를 달려도 괜찮겠는지 상담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의사라면 “아이고, 큰일납니다. 절대 뛰시면 안됩니다” 라고 할 텐데 그 원장님은 가기 전 천천히 달리면서 치료하면 충분히 37km를 완주할 수 있단다.

하는 수 없이 우리 회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의원에 가 출발전까지 침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일본니치난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니치난대회의 특징은 매우 가파르고 긴 언덕과 작지만 많은 언덕길 코스로 되어 있다.
언덕훈련이 전혀 안된 나로서는 37km를 달리면서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때 당시 국내에서 풀코스 3시간50분의 기록이 있던지라 4시간에는 완주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간 4시간 20분대로 골인했다.
함께 참가했던 동료 임모회원이 당초 37km부문을 신청했다가 100km부문으로 변경하고 나는 동료회원의 37km부문 배번을 변경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회원중 100km부문에 참가하기로 했다가 사정에 의하여 참가하지 못하는 회원을 대신하여 임모회원이 변경하여 참가하게 되고 나는 그 자리를 땜방하는 것이었다.

동호회장의 권유에 못이겨 참가한 대회이지만 산수가 수려하고 우리 한국인에 대한 일본행정관청을 비롯한 주민들의 열열한 응원과 주로에서의 간식지원등에 대하여 감동하게 되었고 다음기회에도 가고픈 대회로 간직하며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

100km를 달리기로 한 동료 임모회원은 풀코스 완주 3회경력에 연습도 별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 과연 1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13시간 14분대로 완주를 한 것이다.
그 이후 100km를 완주한 그 회원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니며,
야 100km를 완주한 사람이다. 언제 한번 겨뤄 볼거냐교 약을 올린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 보고도 싶었고 우리동호회장 또한 12시간 이내로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울울트라대회 100km부문에 참가신청을 해 놓았단다.

이렇게 해서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 좋다. 한번 도전해보자 어차피 입상할 것도 아니고, 좋은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으니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6월 니치난 대회에 처녀 출전하여 100km를 완주한 동료보다는 한발짝 앞서리라고 다짐하며 제6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를 참가하게 된다.


10월 8일 토요일
전야제가 있는 날이다.
금년 7월부터 주 5일근무제가 시행됨에 따라 쉬는 날이다.
오늘은 푸욱 쉬고 오후에 전야제나 참석한 후 다음날 대망의 울트라대회에 참가하리라 마음먹고 어떻게 하면 그 긴 달리는 시간중 즐거움의 시간은 길게 하고 고통의 시간은 짧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대회장 인근에서 숙박을 하여야 하나 아니면 한두시간의 수면을 취하더라도 집이 나을 것인지를 고민해 왔는데 출근해야 한단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장충단추모제행사가 열리는 장충단공원에 평상시 출근시간과 다를게 없는 09시 30분에 도착하여 행사에 참가하고 직장에 돌아와 점심식사 후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직원과 함께 현안업무 토의를 오후 5시가 넘도록 한 것이다.
토의도중 우리 회장께서 전화를 걸어 전야제에 참석하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 한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나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전야제 장소를 향해 달려갔으나 교육문화회관에 도착하니 행사장안내도 없고 다른 참가자도 보이지 않는다.
행사시작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그러려니 하고 주차안내요원에게 문화예술공원의 위치를 물어 문화예술공원안으로 들어가니 행사장은 보이질 않고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우리회장이다. 우리 회장이 물품을 수령해 가지고 나올테니 교육문화회관앞에서 만나자고 해서 기다렸지만 함께 부킹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어렵게 동호회장을 만나 맛있는 저녁식사를 제공 받고 귀가하여 대회당일 입을 셔츠에 배번호 및 등번호를 부착하고 운동화에 칩을 다는등 참가준비를 마치고 밤 11시경 잠을 청했다.


10월 9일 일요일
긴장된 탓인지 눈을 뜨니 새벽 1시, 다시 눈을 감고 잠에 취했는데 알람이 울린다. 2시 30분이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3시 조금 지나 회장님을 모시러 간다
회장님과 대회장에 도착하니 4시 20분이다.
대회전날부터 자꾸 일이 꼬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당일은 컨디션이 괜찮았다.
심인숙감독님의 지도로 스트래칭을 마치고 나의 경쟁상대 동료회원 임모씨와 힘찬출발을 한 시간은 05:00:10.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며, km당 6분30초대로 달리자고 했다.
그런데 달리다 보면 자꾸 속도가 빨라진다.
어둠을 헤치며 100km를 출발하여 6시가 조금 넘으니 먼동이 터온다.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10km를 1시간내로 달리고 있다.

28km지점에 이르니 자원봉사하시는분(김은영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인사를 나누고 힘을 보태 암사동 반환점을 향해 달려간다.
반환점을 돌아 km당 6분대로 아무런 불편없이 달리고 있는데 일본인 한분이 지나가는 모든분에게 힘을 외치며 앞서 갔다.

42km까지는 부담없이 km당 6분대를 유지하며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42km를 지나서부터 점차 힘겨움을 느끼며 56km지점부터는 조금씩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소요시간 6시간 40여분으로 64.4km 반환점에 도착했다.
반환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자원봉사자로부터 맛사지를 받고 전복죽과 음료를 마신후 양말과 신발을 갈아 신고 나머지 35.6km를 향해 출발선에서 처럼 힘차게 매트를 밟고 튕겨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완주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35.6km의 거리면 아주 여유있게 잡아 4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그러면 11시간 30분이면 완주가 가능하리라 예상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반환점을 출발하여 2km쯤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오른쪽 발목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달리기를 멈추고 발목을 돌려보고 스트래칭도 해보며 통증이 멎기를 기다리지만 방법이 없다.
조금만 걷거나 뛰어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낀다.
맨소래담이라도 바르며 통증이 멎기를 기대하는데 급수대가 나타나질 않는다.
다리를 절며, 절며 급수대를 만나게 되고 자원봉사하시는 여자분에게 발목이 너무 아파 더 달릴수 없다며 포기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그분, 김팔영 힘을 외쳐주시며 이제 걸어가도 완주할 수 있다. 힘내라 하시며 발목에 맨소래담을 듬뿍발라 문질러주신다.
정말 고마우신 자원봉사자님이시다.(이후 고통은 계속되었지만 -----)
약해진 마음을 다잡으며 또 달려본다.
달리다 보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하며, 한편으로는 이런 도전에서 좌절한다면 사회생활이나 인생길 역시 작은 난관만 부딪혀도 포기하게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걷든 뛰든 포기가 아닌 완주의 길을 선택했다.

72km를 지난 양화지구 선착장 급수대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분께 발목통증을 호소하였더니 운동화끈이 너무 조여진 것 같다며 풀어 매주시고 맨소래담까지 발라주시며 힘을 불어 넣어주시니 또 조금 달려본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여의도 급수대에 도착하니 박영석 회장님께서 격려와 응원을 해 주신다. 빵과 음료를 먹고 절룩거리며 걷기대회보다 못한 달리기를 이어갔다.
마음은 달리고 싶은데 발목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정말 괴롭다.
간신히 79km지점쯤 도착하니 광진정형외과 김학윤원장께서 급수대에 계신다.
발목을 보여 주며 어떻게 해야 될지 물어본다.
발목이 많이 부어오르지 않았으면 발목을 움직이지 말고 달려보라며 꼭완주하라고 격려해 주신다.
중간중간 급수대에서의 자원봉사자님들의 응원과 격려, 특히 한남대교아래에서 배추 김병조님, 땅꼬박사 유행애님의 특별한 응원과 격려로 또 다시 힘을 얻어 90km까지 이를 악물고 조금씩 조금씩 달려나갔다.

이제 10km가 남았다.
보통때 같으면 40여분만 달리면 되는 짧은 거리다.
이제는 발목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 가 없다.
누가 채찍을 가한다해도 쓰러질지언정 뛸 수가 없다.
그래도 골인점을 향해 완주를 향해 안간힘을 다 해본다.
한발자욱도 뛸 수가 없다.

뛰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라도 가보자.
걸어서 완주를 한다면 마라톤대회가 아니고 걷기대회가 될 것이이서 마라톤대회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지만 통상 완주로 인정은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 걸어서라도 완주를 하자고 생각한다.
5km 가까이를 절룩절룩 가다보니 골인점 전방 5.4km지점 급수대에 도착한다.
박희숙님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며 얼마 남지 않았으니 천천히 뛰라며 힘을 주시지만 뛸 수가 없다.

주로상에 100m마다 거리표시가 되어 있어서 조금씩 달려 보기로 했다.
100m 거리가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100m를 겨우 달리고 200m 걷고를 반복하지만 그것도 할 수가 없어 골인지점 300m 전방까지 걸은 후 발목 통증을 감추는등 표정관리도 좀하며 뛰기로 했다
골인점에 도착직전 구름다리위에 아내와 딸아이가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일본니치난정장의 모습도 보인다.
서울마라톤클럽과 일본니치난정과의 한일교류는 민간외교로써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회 아취와 피니쉬 라인이 눈에 들어오자 발목 통증도 잊은 채 손을 높이 들고 골인점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골인점에 도착하니 운동화끈을 풀어주시고 칩도 반납해주시고 어깨를 주물러 주시는 자원봉사자분이 계신다.
주물러 주신어깨 너무너무 쉬원했습니다.
김은영님 정말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혹시 맛사지 강습 받으신 것인지요?

이어서 월계관을 쓰고 완주패를 들고 기념촬영, 보너스로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또 찰칵, 그리고 국밥, 근데 맛있는 음식곁엔 꼬옥 김미영님이 계시지요.
아니 일본에서 온 니치난정 직원 히라다상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네요.

지난 6월 일본의 니치난울트라마라톤대회 때 그분의 친절에 우리일행 모두가 감동 먹었었지요.
집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며, 오이, 무우생채로 각종 요리를해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로 공급해 주시고 또 과일까지 제공하시며 늘 미소띤 얼굴로 봉사해 주신 그분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100km 완주 12시간 34분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100km 함부로 덤비지 말아야 합니다.
충분한 훈련과 각오와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번대회를 위해 수고하신 서울마라톤클럽 관계자 여러분, 함께 완주하신 달림이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완주 못하신 달림이 여러분들의 수고는 완주하신 분들보다 더 했으리라 믿습니다.
다음 대회때에는 꼭 완주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마라톤 (((((((((((((((아자아자, 히-----임))))))))))))))))))))

2005. 10 .12

중구청마라톤동호회 김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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