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마라톤의 끝은 어디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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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종현 작성일07-11-20 01:16 조회4,6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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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부어로은 오른쪽발목으로 치료하고, 사무실 책상에 조용히 앉자 오늘의 일을 정리하고 내일의 할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옆지기에게 전화가 온다. 지금 고덕동에 눈이 오는데, 명일동에도 눈이 오느냐고. 1.5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인데, 여기에 눈이 오지 않을리 없고, 그것을 옆지기가 모릴리도 없지만, 집에 빨리와서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첫눈의 느낌을 살리자는 그런 뜻이란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응 여기도 와"하면서 대답한다.
그러면서 지방간과 고지혈증 그리고 과체중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회사동료가 권장한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일과, 그끝이 어디일까에 대하여 생각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울트라마라톤을 할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마라톤은 그냥 시간남고 돈남고 그리고 세상이 심심한 사람들이 모여, 자기를 학대하는 운동이고, 울트라마라톤은 그런사람들중에 살짝 돈 골수들이 모이는 달리기라고 생각한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회사 런닝머신에서 양복바지에 양말만을 신고 올라가 몇분정도 밖에 뛰지 못하고 발바닥이 벗겨져 고생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하였고, 런닝머신에서 거리 10킬로미터에 도달하기 위하여 걷다가 뛰다가를 1시간 20분동안 반복하면서 사투를 벌인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먼 과거가 아닌 겨우 2년전의 일이라고 하면, 많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처음 10킬로 대회를 참석하여 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참으면서 완주했을때
하프대회에서 가슴이 터져나가는 시련을 이기고 포기하지 않았을때
그리고 첫 풀코스에서 양쪽무릅이 끊어지는 고통을 감래하면서 기어사라도 골인하겠다는 결심을 했을때 항상 눈물과 함께했고, 그때마다 옆지기는 이제 되었으니 그만하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기를 2년, 처음 어느 울트라를 참석하여 완주하면서 100킬로미터라는 거리가 그렇게 먼 거리인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마악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시작한 달리기는 그 다음날 해가 중천에 덨어도 끝이나지 않았다. 달리고, 먹고, 걷고, 버스정류장에서 토막잠을 자고, 길안내 자봉에게 길을 묻기를 수십번 반복하여 겨우 도착한 골인지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역시 울트라는 미친짓이다. 한번은 멋모르고 했어도 두번은 절대없다. 그러면서 나와 울트라는 인연이 없는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라톤동호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울트라마라톤이 있는데, 평지이고,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낮에 뛰는것이고, 특히 자봉과 기념품 그리고 앞풀이, 주로 및 뒷풀이 음식이 아주 좋다고 하면서 잘만하면 단체상으로 신발도 하나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난 울트라에 질려 더이상은 싫다고 해도, 일단 신청만하고 돈을 내지 말고 있다가, 정 마음이 없으면 그냥 두라고하는 말에 살짝 구미가 당긴다. 그리고 조선, 중마 등 큰대회는 모두 끝나고 한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말에, 특히 왠만하면 울트라마라토너의 꿈인 "언더텐"을 한다는 말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 못먹어도 고다. 서브-3는 못해도 언더텐은 한번해보자 하는 욕심도 생겨 얼떨결에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울트라를 위한 별도의 장거리 LSD연습은 꿈도 꾸지 못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마라톤 가을시즌을 맞이하여, 평화마라톤 풀코스, 아디다스대회 10킬로, 조선 풀코스, 중앙 풀코스를 참석하고, 그 사이 지역대회 단거리에 간간히 참석하였는데, 이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오른쪽 앞종아리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번 뛰고나면 2-3일 아프던 다리는, 그다음에는 5-6일, 다음에는 제법 부어오르기까지 한다.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왠만하면 자가치료를 했는데, 중앙풀코스 참석 다음날은 병원신세를 지지않으면 도저히 안될것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여 찾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2달이상 달리지말고 무조건 쉬라고한다. 2주후 중요한대회가 있다고하자, 무엇이 중요한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것일까 ? 달리는것은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내년에고 10년후에도 해야 하는데, 한번 심하게 당한 부상은 그런기회를 주지않을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단체참가건은 어떻게되나, 나 때문에 기대하고 있던 동호회 사람들은 어쩌지. 그러면서 시간은 잘도간다. 다리의 붓기는 빠지고 외형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단지 발목부분에 파란멍이 동전만에게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며칠뒤 사라졌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종합경기장의 트랙을 울트라 페이스로 돌면서 다리를 점검하였는데, 정말 아무문제 없을것같은 느낌이 든다. 드디어 17일 옆지기는 불안한 눈으로 회사에서 준비하려고 부탁한 낚지를 준비하여 저녁상을 차렸다. 나는 산낚지를 부탁했는데, 옆지기가 준비한 것은 낚지볶음이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고, 좋아하던 사극인 "000"도 보지않고 잠거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감고 천장에 주로를 그리고 천천히 달린다. 출발하여 유지해야하는 페이스, 먹어야하는 간식, 마셔야하는 음료, 갈아입어야하는 옷을 상상하다보니 벌써 결승점이다. 이상하게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 힘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옆지기가 나를 세차게 흔들어 깨운다. 너무 늦었어요. 일어나보니 벌써 3시 20분, 자명종으로 설정한 바보상자는 정상적으로 일어났지만, 방송국에서 협조를 먹잇감을 주지않아 파란색 화면만을 내보낸다.
일찍일어나 테이핑을하고 속을 비우고, 밥을 먹어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달릴때 입을 옷을 가리런히 정리하여 의자에 놓은 것이다. 옷을 차례 차례입고 주로 급수대 자원봉사를 신청한 옆지기가 준비하는것을 기다리는데 시간은 오늘따라 무척 빨리간다. 드디어 대회장으로 출발, 중간에 옆지기를 자원봉사장 근처에 내려주고 도착한 "평화의문" 대회장에는 대부분의 달림이들이 출전준비를 끝내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단 테이핑을 하자, 먹자,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속을 비우자, 머릿속이 대충 정리된다. 탈의실에서 채비를하는동안 아는 사람은 왜그리 많은지 테이핑시간보다도 인사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도 순서대로 일을 진행하고나자 겨우 3분이 남는다. 스트레칭은 생략이다. 그리고 바로 출발. 어둠속에서 페이스를 맞추어 달리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찾는일은 포기하였다. 4킬로를 돌아 한강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인 찬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1급수대에서 옆지기는 신랑이 지나가는것도 모르고 물을 따르기 바쁘다. 광진교 첫번째 반환점에서 지역 동호회 여러분이 응원을 오셨다. 이 새벽에 잠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사람 한사람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달리다보니 절로 힘이난다. 그런데 이러면 곤란하다. 초반에 철철 넘치는 힘은 막판에 죽음인데,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수많은 울트라맨들과 만나면서 내가 너무 앞부분에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10킬로를 지나면서 시계를보니 52분이 지난다. 55분을 생각했는데 너무 빠르다. 그러나 다리가 말을 듣지않고 자꾸 빨라진다. 그러는사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초겨울바람은 얼굴을 완전히 굳게 만들고, 숨조차 쉬기 어렵게 한다. 13킬로 지점에서 탄천으로 들어가자 바람이 사라진다. 이제 정상스피드를 찾자. 속도를 줄이면서 페이스를 유지하자 스스로 수백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러는사이 20킬로 1시간 45분에 지난다. 양재천 두번째 반환점을 돌아나오면서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한다.
"햇님아 얼른떠서 이 추위를 몰아내라" 부탁을 하지만 매서운 칼바람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양재천을 벗어나 다시 한강으로나오자 밝은 완전히 밝았다.
급수대에서 장갑에 흘린 물때문에 손은 완전히 얼어버려, 손가락이 붙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된다. 저멀이 한두명의 주자가 보인다. 초겨울 아침에 왠 안개가 이리 많이 끼었는지 고글 밖으로는 거의 푸였다. 초반에 오버하여 힘이 떨어진 한명의 주자를 잡자, 그앞에 또 한명의 주자가 보여, 앞주자를 추월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발걸음은 가볍다. 다리는 추위에 반쯤 얼었지만 왠지 달리기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도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연습한 페이스다. 성수대교에서 마주오는 지역동호회 사람들이 40등이라고 했고, 그사이 열명도 더 추월을 했으니 이 페이스라면 아홈시간이내에 15등도 할 수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사이 몇개의 급수대를 지나치면서 40킬로 지점에 이르러 시계를 보았다. 3시간 20분이 지났다. 처음 생각보다 20분정도 오버다. 이 페이스는 즐겁게 참석하는 대회의 풀코스 페이스다. 힘은 전혀들지 않으니 역시 식이요법 결과가 좋은것인가,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초반 오버는 막판 죽음이라는 울트라공식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는사이 여자 1등선수가 앞에 보인다. 아담사이즈의 일본선수다. 얼굴은 나보다 살짝 어려보인다. 몸짱이다. 자세 만점이다. 전혀 흐트러짐없이 이븐페이스로 달린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오죽하겠어", 잘달리는 그대 먼저가라,
40킬로 구간에서 50킬로 구간은 늘 대회에 참석하고, 연습을 위하여 달리는 즐거운 길이다. 간혹 지친 달림이 한두명을 추월하면서 얼어버린 얼굴을 장갑으로 녹이면서 안양천입구까지 갔다. 50킬로 지점의 안양천 급수대에서 시계를보니 4시간 15분이다. 언더텐은 따논 당상이고 잘하면 아홉시간 이내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몸에 김밥하나를 넣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턱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으로 얼굴을 녹이기 위하여 안경을 벗자 주위가 안개가 자욱하다. 동틀무렵부터 안개가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주변을 보니, 안개아 아니고 얼굴과 머리가 얼어버려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을 부비고, 더운불을 입안에 붓자 서서히 턱주변이 녹으면서 김밥을 씹을 수 있다. 그렇게 김밥하나와 3분간의 사투를 멀이고, 두번째 김밥은 30초, 세번째 김밥은 10초만에 전쟁을 끝냈다. 그러면서 서서히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 몸에 문제가 생긴것이다.
그러나 안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따뜻한 햇살과 뒷바람을 맞으면서 얼굴이 완전히 녹자 이내 걱정이 사라진다. 52킬로 지점에는 발을 접질린 선수가 쓰러져있어 지나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전화해줄것을 부탁하고, 홍천에서 왔다는 서브-3 주자와 즐거운대화를 나누면서 동반주를 했다. 주위에는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르는 커다란 풀들이 자라있고, 잘가꾼 국화화분이 있다. 아름다운 서울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주로에서 달리는 나도 행복하다. 오늘은 얼떨결에 참석한 대회이지만 이 시간이 있어 달리는 보람이 있다는 기쁨이 몰려온다. 그러나 그런 모든 행복은 60킬로 지점에서 완전히 깨졌다.
65킬로까지의 거친 찬바람은 도저히 인간이 달리면서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간에 세워둔 서울마라톤깃발은 나를 더욱 더 심란하게 만든다. 주위의 자전거들도 거의 달리지 못하고 억지로 간다. 마음속으로 수백번 참자, 참자, 참고 달리자를 외쳐보지만 어느새 내 다리는 걷고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5킬로를 경험한적이 없다. 빤히 보이는 다리가 왜 저렇게 내 앞으로 오지않는 것일까? 앞선 달림이 뒤에 살짝숨어 바람을 피해보지만 야속하게도 나를 멀리 떨쳐버린다. 마라톤은 신사의 운동인데, 이러면 곤란하지, 이름이라도 알아두었다가 항의라고 하려 했지만 눈에낀 안개때문에 배번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도착한 65킬로 자봉들에게 푸념을 했다. 왜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날로 잡았으냐고, 당신들 양심이 있느냐, 하지만 자봉이 무슨죄가 있으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상의 서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곳에 엎드리자 다리를 풀어주고 신발도 알아서 갈아 신키고, 부상부위에 맨소래담도 발라주고, 특히 게눈감추듯 먹어버린 두그릇의 전복죽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고통은 다 끝나고 이제 행복만 남은것 같다. 다시 출발이다. 이제 3분의 2가 지나고, 3분의 1이 남았다. 시계를보자 대략 5시간 50분이 지났다. 6분페이스로만 달리면 언더텐이다. 올때는 걷기도 힘들던 강한 바람이 등뒤에서 밀어주자 한결 달리는것이 부드럽다. 맞은편에는 아직 65킬로를 향하여 열심히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많다. 불쌍한 사람들, 이 추위에 무엇을 위하여 저리도 강한 바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노, 아까의 고통은 저 멀이있고, 순풍의 돗단배인 내몸은 즐겁기만 하다. 70킬로 부근에서 마지막주가가 온다. 키작은 일본 여자선수이다. 나를 보더니 "화이팅"을 외친다. 내가 응원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오히려 나를 응원한다. 표정은 완전히 즐겁다. 정말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정말 내가 추구해야 하는 즐달모드이다. 부럽다. 그러면서 사생결단으로 달리는 내 모습이 그위로 교차한다. 나도 몇가지 기록한 달성하면 그다음부터는 즐달모드로 달릴것을 결심한다. 그러면서 70킬로를 넘어서자 초반 오버한것에 대한 죄값이 서서히 나타난다. 다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느낌이 든다. 이럴때는 속도를 줄이고 급수대마다 물과 음식을 많이 먹아야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76킬로지점에서 누군가 응원을 한다. 그러면서 손에 무엇인가를 들려준다. 자세히보니 초코렛이다. 눈물이 난다. 78킬로 지점의 급수대와 82킬로 부근의 급수대는 정신이 거의없어 그냥 지나친다. 급수대의 자봉들은 그냥 지나치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따뜻한물과 음식을 먹고가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봉들의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릴적, 총각적 고생하면서 생긴것이 배가 고프면 가슴이 흥분되면서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과 함께 짜증이 나는 것인데, 가슴이 계속하여 울렁거린다. 출발전 주머니에 넣어둔 오천원이 생각난다. 급할때 음료수 사먹으려고 넣었는데, 지금은 어쩧게 차를 타는 방법이 없나, 차를 타면 어디까지 가야하나, 내가 달리는 동네의 바깥은 무슨동이고, 몇번버스가 다니지, 잠실쪽으로 사는 버스가 있기는 한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러면서 반포대교 언덕을 오르는데, 북채를 들고 응원을 하던 한분이 급히 나를 따라와 잡는다. 그러면서 "아저씨 여기는 차길입니다. 인도는 30미터 더 가야해요", 다시 길을보니, 옆으로 차들이 달려 내려온다. 내가 왜 이렇까?, 숨을 가다듬고, 다시 주로로 접어들자 자봉한분이 천천히 언덕을 넘어가면 급수대가 있으니 더운물을 많이 마시고 잠시라도 쉬라고 한다.
언덕을 넘어 조금가자 정말 급수대가 있다. 물과 음료, 그리고 과일을 먹자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또 달려야한다. 아직 15킬로가 남았다. 언더텐까지는 아직 두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서서히 달리자. 그러면서 하늘을 본다. 아직 안개는 심하다. 천천히 그러나 걷지않고 달리면서 92킬로까지는 개띠마라톤 두분이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분들도 힘이 없는지, 나와함께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난 항상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힘든것은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러면서 도착한 96킬로 지점의 급수대에 이르자 거의 완전무장한 옆지기가 파랗게 얼어버린, 완전히 기진맥진한 나를 보고 왈칵 눈물을 보인다. 그래도 옆지기는 씩씩하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나에게 물을 전해준다. 옆지기가 전해준 물을 마지막으로 마시고 97킬로 지점에 이르자 회사동료가 마지막 동반주를 위하여 나와있다. 이제 3킬로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서 달리자고 한다. 아니 자기는 집에서 늦잠자고 따뜻할때 일어나 점심까지 잘먹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타나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97킬로를 달려온 나에게 최선을 다하라니, 이럴수가 있는가. 그래도 나를 위하여 소중한 일요일을 희생한 동료가 좋다. 마지막 3킬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다보니 거리가 금세 줄어든다. 오늘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난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없는데, 내가 앞으로 절대 울트라 참석하지 않겠다고 열번도 더 말했다고 한다. 올림픽공원을 출발하여 250리 먼길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바람과 싸우면서 도착한 평화의 문에서 만세를 부르며 골인했다. 골인하자마자 다른대회에서는 엘리트 입상선수들에게만 주어지는 대형수건으로 몸을 감싸주고, 번쩍 번쩍 빛나는 메달도 직접 걸어준다. 마라토너로서는 최상의 호사이다. 응원나온사람들과 국밥과 막걸리,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참가선수들은 무용담이 한참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과연 마라톤이 특히 울트라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인가,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자기의 다리를 움직여 250리를 달리는것은 분명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도움이 없이도 가능할 수 있을까 ? 새벽바람에 수백명의 참가자를 위하여 준비한 아침식사, 주로의 간식과 음료수 그리고 계측요원들. 어느 한명의 소홀함이 전체대회를 망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숨어 봉사하는 그들의 도움이 있기에 기록도 있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다.
우리사회나 어느 단체도 마찬가지 이리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보이지만, 나의 성공과 안락함을 위하여 보이지않는 곳에서 수백 수천명이 정성을 다하고 있을것이다.
서울마라톤클럽이 개최하는 3개대회를 왜 명품마라톤이라고 할까?
기념품이 좋아서, 음료서비스가 좋아서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그것이 무멋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왠지모를 정이있다. 하나라도 더 달림이들을 위하려는 배려가 보인다.
오늘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나를 한참이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말렸는데, 이지경을해서 다시 왔으냐고, 달릴때 아픈것 어떻게 참았으냐고,
출발전 그리고 65킬로 지점에서 진통제 먹었다고 말하려다 목안으로 숨겼다.
그러면 다시 말할것이다.
당신 "마라톤에 00지"
난 마라톤에 미치지 않았다.
그냥 달리기를 즐길뿐이다.
그러나 내가 달리고 싶은 대회는 꼬옥 참석하고 싶다.
그리고 주로에서 그들과함께 숨을쉬고, 기쁨을 나누고 싶다.
누가 물어본다.
내년에 또 참석할것이냐고
난 대답한다. "그건 그때가서 말할께"라고
그러면서 지방간과 고지혈증 그리고 과체중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회사동료가 권장한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일과, 그끝이 어디일까에 대하여 생각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울트라마라톤을 할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마라톤은 그냥 시간남고 돈남고 그리고 세상이 심심한 사람들이 모여, 자기를 학대하는 운동이고, 울트라마라톤은 그런사람들중에 살짝 돈 골수들이 모이는 달리기라고 생각한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회사 런닝머신에서 양복바지에 양말만을 신고 올라가 몇분정도 밖에 뛰지 못하고 발바닥이 벗겨져 고생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하였고, 런닝머신에서 거리 10킬로미터에 도달하기 위하여 걷다가 뛰다가를 1시간 20분동안 반복하면서 사투를 벌인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먼 과거가 아닌 겨우 2년전의 일이라고 하면, 많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처음 10킬로 대회를 참석하여 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참으면서 완주했을때
하프대회에서 가슴이 터져나가는 시련을 이기고 포기하지 않았을때
그리고 첫 풀코스에서 양쪽무릅이 끊어지는 고통을 감래하면서 기어사라도 골인하겠다는 결심을 했을때 항상 눈물과 함께했고, 그때마다 옆지기는 이제 되었으니 그만하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기를 2년, 처음 어느 울트라를 참석하여 완주하면서 100킬로미터라는 거리가 그렇게 먼 거리인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마악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시작한 달리기는 그 다음날 해가 중천에 덨어도 끝이나지 않았다. 달리고, 먹고, 걷고, 버스정류장에서 토막잠을 자고, 길안내 자봉에게 길을 묻기를 수십번 반복하여 겨우 도착한 골인지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역시 울트라는 미친짓이다. 한번은 멋모르고 했어도 두번은 절대없다. 그러면서 나와 울트라는 인연이 없는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라톤동호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울트라마라톤이 있는데, 평지이고,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낮에 뛰는것이고, 특히 자봉과 기념품 그리고 앞풀이, 주로 및 뒷풀이 음식이 아주 좋다고 하면서 잘만하면 단체상으로 신발도 하나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난 울트라에 질려 더이상은 싫다고 해도, 일단 신청만하고 돈을 내지 말고 있다가, 정 마음이 없으면 그냥 두라고하는 말에 살짝 구미가 당긴다. 그리고 조선, 중마 등 큰대회는 모두 끝나고 한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말에, 특히 왠만하면 울트라마라토너의 꿈인 "언더텐"을 한다는 말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 못먹어도 고다. 서브-3는 못해도 언더텐은 한번해보자 하는 욕심도 생겨 얼떨결에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울트라를 위한 별도의 장거리 LSD연습은 꿈도 꾸지 못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마라톤 가을시즌을 맞이하여, 평화마라톤 풀코스, 아디다스대회 10킬로, 조선 풀코스, 중앙 풀코스를 참석하고, 그 사이 지역대회 단거리에 간간히 참석하였는데, 이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오른쪽 앞종아리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번 뛰고나면 2-3일 아프던 다리는, 그다음에는 5-6일, 다음에는 제법 부어오르기까지 한다.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왠만하면 자가치료를 했는데, 중앙풀코스 참석 다음날은 병원신세를 지지않으면 도저히 안될것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여 찾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2달이상 달리지말고 무조건 쉬라고한다. 2주후 중요한대회가 있다고하자, 무엇이 중요한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것일까 ? 달리는것은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내년에고 10년후에도 해야 하는데, 한번 심하게 당한 부상은 그런기회를 주지않을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단체참가건은 어떻게되나, 나 때문에 기대하고 있던 동호회 사람들은 어쩌지. 그러면서 시간은 잘도간다. 다리의 붓기는 빠지고 외형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단지 발목부분에 파란멍이 동전만에게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며칠뒤 사라졌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종합경기장의 트랙을 울트라 페이스로 돌면서 다리를 점검하였는데, 정말 아무문제 없을것같은 느낌이 든다. 드디어 17일 옆지기는 불안한 눈으로 회사에서 준비하려고 부탁한 낚지를 준비하여 저녁상을 차렸다. 나는 산낚지를 부탁했는데, 옆지기가 준비한 것은 낚지볶음이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고, 좋아하던 사극인 "000"도 보지않고 잠거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감고 천장에 주로를 그리고 천천히 달린다. 출발하여 유지해야하는 페이스, 먹어야하는 간식, 마셔야하는 음료, 갈아입어야하는 옷을 상상하다보니 벌써 결승점이다. 이상하게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 힘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옆지기가 나를 세차게 흔들어 깨운다. 너무 늦었어요. 일어나보니 벌써 3시 20분, 자명종으로 설정한 바보상자는 정상적으로 일어났지만, 방송국에서 협조를 먹잇감을 주지않아 파란색 화면만을 내보낸다.
일찍일어나 테이핑을하고 속을 비우고, 밥을 먹어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달릴때 입을 옷을 가리런히 정리하여 의자에 놓은 것이다. 옷을 차례 차례입고 주로 급수대 자원봉사를 신청한 옆지기가 준비하는것을 기다리는데 시간은 오늘따라 무척 빨리간다. 드디어 대회장으로 출발, 중간에 옆지기를 자원봉사장 근처에 내려주고 도착한 "평화의문" 대회장에는 대부분의 달림이들이 출전준비를 끝내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단 테이핑을 하자, 먹자,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속을 비우자, 머릿속이 대충 정리된다. 탈의실에서 채비를하는동안 아는 사람은 왜그리 많은지 테이핑시간보다도 인사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도 순서대로 일을 진행하고나자 겨우 3분이 남는다. 스트레칭은 생략이다. 그리고 바로 출발. 어둠속에서 페이스를 맞추어 달리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찾는일은 포기하였다. 4킬로를 돌아 한강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인 찬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1급수대에서 옆지기는 신랑이 지나가는것도 모르고 물을 따르기 바쁘다. 광진교 첫번째 반환점에서 지역 동호회 여러분이 응원을 오셨다. 이 새벽에 잠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사람 한사람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달리다보니 절로 힘이난다. 그런데 이러면 곤란하다. 초반에 철철 넘치는 힘은 막판에 죽음인데,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수많은 울트라맨들과 만나면서 내가 너무 앞부분에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10킬로를 지나면서 시계를보니 52분이 지난다. 55분을 생각했는데 너무 빠르다. 그러나 다리가 말을 듣지않고 자꾸 빨라진다. 그러는사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초겨울바람은 얼굴을 완전히 굳게 만들고, 숨조차 쉬기 어렵게 한다. 13킬로 지점에서 탄천으로 들어가자 바람이 사라진다. 이제 정상스피드를 찾자. 속도를 줄이면서 페이스를 유지하자 스스로 수백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러는사이 20킬로 1시간 45분에 지난다. 양재천 두번째 반환점을 돌아나오면서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한다.
"햇님아 얼른떠서 이 추위를 몰아내라" 부탁을 하지만 매서운 칼바람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양재천을 벗어나 다시 한강으로나오자 밝은 완전히 밝았다.
급수대에서 장갑에 흘린 물때문에 손은 완전히 얼어버려, 손가락이 붙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된다. 저멀이 한두명의 주자가 보인다. 초겨울 아침에 왠 안개가 이리 많이 끼었는지 고글 밖으로는 거의 푸였다. 초반에 오버하여 힘이 떨어진 한명의 주자를 잡자, 그앞에 또 한명의 주자가 보여, 앞주자를 추월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발걸음은 가볍다. 다리는 추위에 반쯤 얼었지만 왠지 달리기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도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연습한 페이스다. 성수대교에서 마주오는 지역동호회 사람들이 40등이라고 했고, 그사이 열명도 더 추월을 했으니 이 페이스라면 아홈시간이내에 15등도 할 수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사이 몇개의 급수대를 지나치면서 40킬로 지점에 이르러 시계를 보았다. 3시간 20분이 지났다. 처음 생각보다 20분정도 오버다. 이 페이스는 즐겁게 참석하는 대회의 풀코스 페이스다. 힘은 전혀들지 않으니 역시 식이요법 결과가 좋은것인가,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초반 오버는 막판 죽음이라는 울트라공식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는사이 여자 1등선수가 앞에 보인다. 아담사이즈의 일본선수다. 얼굴은 나보다 살짝 어려보인다. 몸짱이다. 자세 만점이다. 전혀 흐트러짐없이 이븐페이스로 달린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오죽하겠어", 잘달리는 그대 먼저가라,
40킬로 구간에서 50킬로 구간은 늘 대회에 참석하고, 연습을 위하여 달리는 즐거운 길이다. 간혹 지친 달림이 한두명을 추월하면서 얼어버린 얼굴을 장갑으로 녹이면서 안양천입구까지 갔다. 50킬로 지점의 안양천 급수대에서 시계를보니 4시간 15분이다. 언더텐은 따논 당상이고 잘하면 아홉시간 이내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몸에 김밥하나를 넣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턱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으로 얼굴을 녹이기 위하여 안경을 벗자 주위가 안개가 자욱하다. 동틀무렵부터 안개가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주변을 보니, 안개아 아니고 얼굴과 머리가 얼어버려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을 부비고, 더운불을 입안에 붓자 서서히 턱주변이 녹으면서 김밥을 씹을 수 있다. 그렇게 김밥하나와 3분간의 사투를 멀이고, 두번째 김밥은 30초, 세번째 김밥은 10초만에 전쟁을 끝냈다. 그러면서 서서히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 몸에 문제가 생긴것이다.
그러나 안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따뜻한 햇살과 뒷바람을 맞으면서 얼굴이 완전히 녹자 이내 걱정이 사라진다. 52킬로 지점에는 발을 접질린 선수가 쓰러져있어 지나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전화해줄것을 부탁하고, 홍천에서 왔다는 서브-3 주자와 즐거운대화를 나누면서 동반주를 했다. 주위에는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르는 커다란 풀들이 자라있고, 잘가꾼 국화화분이 있다. 아름다운 서울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주로에서 달리는 나도 행복하다. 오늘은 얼떨결에 참석한 대회이지만 이 시간이 있어 달리는 보람이 있다는 기쁨이 몰려온다. 그러나 그런 모든 행복은 60킬로 지점에서 완전히 깨졌다.
65킬로까지의 거친 찬바람은 도저히 인간이 달리면서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간에 세워둔 서울마라톤깃발은 나를 더욱 더 심란하게 만든다. 주위의 자전거들도 거의 달리지 못하고 억지로 간다. 마음속으로 수백번 참자, 참자, 참고 달리자를 외쳐보지만 어느새 내 다리는 걷고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5킬로를 경험한적이 없다. 빤히 보이는 다리가 왜 저렇게 내 앞으로 오지않는 것일까? 앞선 달림이 뒤에 살짝숨어 바람을 피해보지만 야속하게도 나를 멀리 떨쳐버린다. 마라톤은 신사의 운동인데, 이러면 곤란하지, 이름이라도 알아두었다가 항의라고 하려 했지만 눈에낀 안개때문에 배번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도착한 65킬로 자봉들에게 푸념을 했다. 왜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날로 잡았으냐고, 당신들 양심이 있느냐, 하지만 자봉이 무슨죄가 있으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상의 서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곳에 엎드리자 다리를 풀어주고 신발도 알아서 갈아 신키고, 부상부위에 맨소래담도 발라주고, 특히 게눈감추듯 먹어버린 두그릇의 전복죽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고통은 다 끝나고 이제 행복만 남은것 같다. 다시 출발이다. 이제 3분의 2가 지나고, 3분의 1이 남았다. 시계를보자 대략 5시간 50분이 지났다. 6분페이스로만 달리면 언더텐이다. 올때는 걷기도 힘들던 강한 바람이 등뒤에서 밀어주자 한결 달리는것이 부드럽다. 맞은편에는 아직 65킬로를 향하여 열심히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많다. 불쌍한 사람들, 이 추위에 무엇을 위하여 저리도 강한 바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노, 아까의 고통은 저 멀이있고, 순풍의 돗단배인 내몸은 즐겁기만 하다. 70킬로 부근에서 마지막주가가 온다. 키작은 일본 여자선수이다. 나를 보더니 "화이팅"을 외친다. 내가 응원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오히려 나를 응원한다. 표정은 완전히 즐겁다. 정말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정말 내가 추구해야 하는 즐달모드이다. 부럽다. 그러면서 사생결단으로 달리는 내 모습이 그위로 교차한다. 나도 몇가지 기록한 달성하면 그다음부터는 즐달모드로 달릴것을 결심한다. 그러면서 70킬로를 넘어서자 초반 오버한것에 대한 죄값이 서서히 나타난다. 다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느낌이 든다. 이럴때는 속도를 줄이고 급수대마다 물과 음식을 많이 먹아야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76킬로지점에서 누군가 응원을 한다. 그러면서 손에 무엇인가를 들려준다. 자세히보니 초코렛이다. 눈물이 난다. 78킬로 지점의 급수대와 82킬로 부근의 급수대는 정신이 거의없어 그냥 지나친다. 급수대의 자봉들은 그냥 지나치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따뜻한물과 음식을 먹고가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봉들의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릴적, 총각적 고생하면서 생긴것이 배가 고프면 가슴이 흥분되면서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과 함께 짜증이 나는 것인데, 가슴이 계속하여 울렁거린다. 출발전 주머니에 넣어둔 오천원이 생각난다. 급할때 음료수 사먹으려고 넣었는데, 지금은 어쩧게 차를 타는 방법이 없나, 차를 타면 어디까지 가야하나, 내가 달리는 동네의 바깥은 무슨동이고, 몇번버스가 다니지, 잠실쪽으로 사는 버스가 있기는 한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러면서 반포대교 언덕을 오르는데, 북채를 들고 응원을 하던 한분이 급히 나를 따라와 잡는다. 그러면서 "아저씨 여기는 차길입니다. 인도는 30미터 더 가야해요", 다시 길을보니, 옆으로 차들이 달려 내려온다. 내가 왜 이렇까?, 숨을 가다듬고, 다시 주로로 접어들자 자봉한분이 천천히 언덕을 넘어가면 급수대가 있으니 더운물을 많이 마시고 잠시라도 쉬라고 한다.
언덕을 넘어 조금가자 정말 급수대가 있다. 물과 음료, 그리고 과일을 먹자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또 달려야한다. 아직 15킬로가 남았다. 언더텐까지는 아직 두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서서히 달리자. 그러면서 하늘을 본다. 아직 안개는 심하다. 천천히 그러나 걷지않고 달리면서 92킬로까지는 개띠마라톤 두분이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분들도 힘이 없는지, 나와함께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난 항상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힘든것은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러면서 도착한 96킬로 지점의 급수대에 이르자 거의 완전무장한 옆지기가 파랗게 얼어버린, 완전히 기진맥진한 나를 보고 왈칵 눈물을 보인다. 그래도 옆지기는 씩씩하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나에게 물을 전해준다. 옆지기가 전해준 물을 마지막으로 마시고 97킬로 지점에 이르자 회사동료가 마지막 동반주를 위하여 나와있다. 이제 3킬로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서 달리자고 한다. 아니 자기는 집에서 늦잠자고 따뜻할때 일어나 점심까지 잘먹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타나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97킬로를 달려온 나에게 최선을 다하라니, 이럴수가 있는가. 그래도 나를 위하여 소중한 일요일을 희생한 동료가 좋다. 마지막 3킬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다보니 거리가 금세 줄어든다. 오늘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난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없는데, 내가 앞으로 절대 울트라 참석하지 않겠다고 열번도 더 말했다고 한다. 올림픽공원을 출발하여 250리 먼길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바람과 싸우면서 도착한 평화의 문에서 만세를 부르며 골인했다. 골인하자마자 다른대회에서는 엘리트 입상선수들에게만 주어지는 대형수건으로 몸을 감싸주고, 번쩍 번쩍 빛나는 메달도 직접 걸어준다. 마라토너로서는 최상의 호사이다. 응원나온사람들과 국밥과 막걸리,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참가선수들은 무용담이 한참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과연 마라톤이 특히 울트라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인가,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자기의 다리를 움직여 250리를 달리는것은 분명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도움이 없이도 가능할 수 있을까 ? 새벽바람에 수백명의 참가자를 위하여 준비한 아침식사, 주로의 간식과 음료수 그리고 계측요원들. 어느 한명의 소홀함이 전체대회를 망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숨어 봉사하는 그들의 도움이 있기에 기록도 있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다.
우리사회나 어느 단체도 마찬가지 이리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보이지만, 나의 성공과 안락함을 위하여 보이지않는 곳에서 수백 수천명이 정성을 다하고 있을것이다.
서울마라톤클럽이 개최하는 3개대회를 왜 명품마라톤이라고 할까?
기념품이 좋아서, 음료서비스가 좋아서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그것이 무멋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왠지모를 정이있다. 하나라도 더 달림이들을 위하려는 배려가 보인다.
오늘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나를 한참이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말렸는데, 이지경을해서 다시 왔으냐고, 달릴때 아픈것 어떻게 참았으냐고,
출발전 그리고 65킬로 지점에서 진통제 먹었다고 말하려다 목안으로 숨겼다.
그러면 다시 말할것이다.
당신 "마라톤에 00지"
난 마라톤에 미치지 않았다.
그냥 달리기를 즐길뿐이다.
그러나 내가 달리고 싶은 대회는 꼬옥 참석하고 싶다.
그리고 주로에서 그들과함께 숨을쉬고, 기쁨을 나누고 싶다.
누가 물어본다.
내년에 또 참석할것이냐고
난 대답한다. "그건 그때가서 말할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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