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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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락 작성일06-08-15 10:01 조회3,2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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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등 했어요?
뭣이 그리 급한 지 열무비빔밥을 두어 숟갈 먹고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바로 귀갓길에 올랐다. 둘러보아도 인사를 나눌 정도로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대회가 끝나면 전화를 한다고 사전에 약속을 해두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일산에서 열리는 대한민국과학축전에 참가하고 있다고 지하철을 타고 일산으로 오라고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이 어렵고 귀찮아서 그냥 내려간다고 인사만 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서 몇 번이나 확인 한 뒤에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두어 정거장 가서 바꿔 타야 하는데 도무지 헷갈려서 몇 바퀴나 돌아다녔다. 안내판이 부실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촌놈은 촌놈이다. 10여 년 전에 유럽에 갔을 적에는 그 복잡하다는 파리의 지하철은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용케 잘도 타고 다녔는데 서울에서 이 지경이니 이젠 감각이 많이 둔해졌나보다.
열무 비빔밥의 양이 부족하였는지 배가 고파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잔치국수를 한 그릇 사먹고 포항행 차에 올랐다.
내려오는 도중에 딸아이한테서 언제 도착하느냐는 확인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 사는 막내 누이네 아이들이 첫 영세를 받는 날이라서 같이 성당에 가기로 했는데 혹시 내가 늦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미리 해두었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어제 집을 나서기 전부터 고생을 하리라는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힘들게 달렸다.
미안해서 피자라도 한 판 사 먹여 보낸다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해 두었더니 세 아이 모두 집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들어서니 대뜸 조카 녀석이 묻는다.
“외삼촌, 몇 등 했어요? “
우리 아들 녀석이 먼저,
“ 야 몇 등은 무슨 몇 등이고 그냥 달리러 갔는데........” 하며 대신 대답을 한다. 짧은 거리지만 몇 번 대회에 참가해 본 우리 아이들은 이제 안다, 뛰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촌놈, 서울에 가다.
나는 촌놈이다.
촌에서 나서 촌에서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촌에 살고 있으니 진짜 촌놈이다.
스무 다섯 해가 다 되어가는 교직 생활도 초반에 울산에 있던 두어 해를 빼고는 촌으로만 돌아다녔으니 진짜 촌놈이다.
촌놈인 나도 두어 해 전부터 일년에 서너 번씩은 서울에 간다.
무슨 대단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달리러 간다.
봄, 여름, 가을에 한 번씩 철 따라 달리려고 올라간다.
서울에만 가면 불안하고 가까운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도 길을 수없이 물어봐야 될 만큼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갑자기 어설퍼진다.
서른 해 전인가 진해에서 훈련 선을 타고 인천에 도착하여 서울로 가서 서울역 앞에서 대우빌딩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나 층수를 세다가 목이 아파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올 여름에도 지하철 갈아타는 일부터 여러 가지로 단단히 촌놈 행세를 했다.
유난스럽게 혹독한 더위와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는 험한 코스 때문에 연습을 하지 않은 몸 상태로 대회에 참가하면 고생을 할 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서울로 갔다.
혹서기대회에 처음 참가한 지난해는 목동 근처에서 여관에 자고 아침에 대공원으로 갔는데 혼자 자는 여관 잠도 결코 편치 않아서 이번에는 밤차를 타고 올라갔다.
심야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새벽에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두 시간 넘게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남들이 보면 시커멓고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내가 이른바 간첩이나 조폭처럼 보일 텐데 오히려 옆 사람을 보고 겁을 내서 갈아입을 옷가지 몇 개 든 배낭을 늘 끌어안다시피 했다.
터미널 앞의 벤치에 앉아서 준비해 간 떡으로 아침을 때웠다.
신청 경쟁부터 치열하기에.......
지난 해 겪어보니 혹서기는 신청 경쟁부터 치열하기에 4월 하순부터 서울마라톤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쉬는 시간마다 확인을 하고는 했다. 다행하게도 공지사항을 보고 출근 때부터 벼르다가 재빠르게 신청을 했지만 그것이 결코 준비의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4월 황사 기간에 풀코스를 달린 뒤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서 오래 지나도 낫지를 않았다. 밤만 되면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미련한 나는 병원 문 앞에도 가지 않았다. 미리 신청해둔 대회들을 연달아 포기하고 나니 달리는 일이 겁이 났다.
그렇게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지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날마다 꾸준하게 걷고 근력 훈련을 했더니 상체가 튼실해졌고 체중이 4킬로나 불었다. 늘 굶은 사람처럼 해쓱하던 얼굴에 윤기가 돌고 몸이 실해져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럽다거나 보기 좋다는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달리기와 영 멀어지는 게 아닌가하고 걱정도 되었다.
시간은 순간순간 잘도 지나갔고 걱정은 늘어만 갔다.
참가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고 고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보화전문 연수에 대회 전날인 11일 오후까지 매달려야 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유난히 약한데 보름 가까이 냉방병이 들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신선놀음이기는 한데 달릴 일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참가신청을 했으니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도 꼭 뛰어야지.
뭐 부끄러울 것 있나?
혹서기대회에서는 늦게 달린들 뭐 부끄러울 게 있나 하는 염치없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2-3년 내에 풀코스를 100회 완주하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했기에 연수가 끝나면 부랴부랴 컴퓨터연수 장소와 집 사이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의 체력단련장에 갔다.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땀으로 옷이 흠뻑 젖는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데 이런 증상이 냉방병일지도 모른다. 준비 운동을 한 후에 러닝머신에 올라섰다. 천천히 10분도 달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신발이 땀으로 다 젖는다. 옆 사람들 보기에 민망스럽다. 달리기가 힘이 들어서 근력 운동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한 시간 이상씩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마음만 앞서서 그렇게 며칠동안 무리를 하다가 고향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서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등이 결렸다. 숨을 쉬면 턱턱 막히니 담이 든 듯 했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앉아있어야 하는 교육이 고통스러워서 약을 사 먹고 버티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했다.
신청을 할 때는 한참이나 남은 것 같더니 대회 날자가 코앞에 다가왔다.
소위 테이프링을 해야 하는 기간인데 몸은 엉망이고 마음도 지쳐 있었다. 미리미리 연습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니 노력한만큼만 얻어면 될 것이다.
연습 삼아 달리자.
‘아주 느리게라도 걷지 않고 두 시간만 달릴 수 있으면 만족할 것이다.’
이른 새벽에 첫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에 도착해서 졸음에 감기는 눈을 비비며 이렇게 다짐을 했다. 물을 몇 컵이나 마시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출발은 맨 뒤에서 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출발할 때 내 뒤 주자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목동클럽 회원들이 단체로 달리는 뒤에서 따라 달렸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같이 달릴 사람도 없지만 이런 날은 오히려 그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커다란 동물들이 있는 동물원 구간을 두 바퀴 돌고나서 이른바 왕복 코스로 접어들었다. 지난 해 한 번 달렸던 코스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진다. 한참을 가니 이제 겨우 1킬로 표지판이 나온다. 이어지는 오르막 내리막을 느리게 달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달렸다. 선두 주자들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2왕복을 하고 오는 길인 듯 했다. 힘든 코스를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도 힘들어 보이지 않으니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들이 남모르게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왕복해야 하는 코스라서 누가 앞서는지 뒤서는지 모르니 오히려 편하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두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대로 달릴 만 했다. 힘은 들었지만 걷지 않고 두 시간을 달릴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기분은 괜찮았다. 두 시간 반을 그렇게 달리다가 왼쪽 허벅지 뒤쪽이 불편한듯해서 오르막에서는 잠시 걸었다. 연세가 지긋하거나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으로 삼았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가?
출발 한지 세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왕복 코스를 세 바퀴쯤 돌았다. 이제 주로에는 힘이 빠지고 지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밥이나 과일 등의 먹을거리가 많이 있어도 달리면서 먹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물만 마시고 계속 걷다가 달리다가 했다. 이온 음료수를 좀 마셨더니 옆구리가 당기고 아팠지만 아랫배에 힘을 주고 통증을 참으면서 그냥 걷다가 조금씩 달렸다.
칩을 단다고 신발 끈을 어설프게 묶었는지 신발 덮게가 한쪽으로 쏠려서 왼쪽 발등이 아팠다. 수십 번도 더 멈추어서 바로 잡았지만 여전히 한 쪽으로 돌아가버렸다.
땀에 전 지금의 내 꼴을 아내가 본다면 다시는 달리러 가지 못하게 하리라.
달리는 사람마다 목적이 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게 달리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용기를 얻고, 느리게라도 달릴 수 있는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리라.
내 모난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것을 반성하고 맡은 일에 게을렀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잘 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달리다가 걷다가 했다.
시각 장애인들과 도우미로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신의 의지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또다른 도전이 아닌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힘들게 함께 달리니 이내 친근감이 들었다.
대회의 꽃
혹서기 마라톤대회의 주인공은 우승자도 아니고 바로 완주한 참가자 자신이다. 그러나 꽃은 자원봉사자 들이다. 몇 시간씩이나 북을 울려대며 달리는 주자의 이름을 외치던 여성분들, 내 이름을 수 없이 불러준 3킬로 지점의 학생들, 올해도 변함없이 손이 시리도록 빙과류를 건네주시던 박회장님, 하루 중일 수박을 썰어대던 분들, 물이 모자랄까봐 애를 태웠다던 수많은 급수대 봉사자들, 칩을 풀어주던 고운 손, 일곱 시간 넘게 물품 보관소를 지키면서도 웃으며 맡긴 물건을 찾아주시던 분들, 열무비빔밥이 모자란다면서 애를 태우시던 분들, 막걸리를 철철 넘치게 따라 주시면서 웃으시던 분들, 그 외에도 고마운 수없이 많은 분들.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드릴 게 없다.
언젠가 넘고 말리라.
혹서기 대회가 있는 한,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연습하여서 느리게라도 걷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리라. 걷지 않고 완주하는 일이 두고두고 숙제로 남을지라도 기회가 온다면 해마다 즐겁게 참가하리라.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비록 힘들었지만 혹서기라는 인정 넘치는 보약을 먹었으니 이번 가을에는 곳곳에서 힘차게 달릴 것이다.
뭣이 그리 급한 지 열무비빔밥을 두어 숟갈 먹고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바로 귀갓길에 올랐다. 둘러보아도 인사를 나눌 정도로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대회가 끝나면 전화를 한다고 사전에 약속을 해두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일산에서 열리는 대한민국과학축전에 참가하고 있다고 지하철을 타고 일산으로 오라고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이 어렵고 귀찮아서 그냥 내려간다고 인사만 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서 몇 번이나 확인 한 뒤에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두어 정거장 가서 바꿔 타야 하는데 도무지 헷갈려서 몇 바퀴나 돌아다녔다. 안내판이 부실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촌놈은 촌놈이다. 10여 년 전에 유럽에 갔을 적에는 그 복잡하다는 파리의 지하철은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용케 잘도 타고 다녔는데 서울에서 이 지경이니 이젠 감각이 많이 둔해졌나보다.
열무 비빔밥의 양이 부족하였는지 배가 고파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잔치국수를 한 그릇 사먹고 포항행 차에 올랐다.
내려오는 도중에 딸아이한테서 언제 도착하느냐는 확인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 사는 막내 누이네 아이들이 첫 영세를 받는 날이라서 같이 성당에 가기로 했는데 혹시 내가 늦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미리 해두었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어제 집을 나서기 전부터 고생을 하리라는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힘들게 달렸다.
미안해서 피자라도 한 판 사 먹여 보낸다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해 두었더니 세 아이 모두 집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들어서니 대뜸 조카 녀석이 묻는다.
“외삼촌, 몇 등 했어요? “
우리 아들 녀석이 먼저,
“ 야 몇 등은 무슨 몇 등이고 그냥 달리러 갔는데........” 하며 대신 대답을 한다. 짧은 거리지만 몇 번 대회에 참가해 본 우리 아이들은 이제 안다, 뛰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촌놈, 서울에 가다.
나는 촌놈이다.
촌에서 나서 촌에서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촌에 살고 있으니 진짜 촌놈이다.
스무 다섯 해가 다 되어가는 교직 생활도 초반에 울산에 있던 두어 해를 빼고는 촌으로만 돌아다녔으니 진짜 촌놈이다.
촌놈인 나도 두어 해 전부터 일년에 서너 번씩은 서울에 간다.
무슨 대단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달리러 간다.
봄, 여름, 가을에 한 번씩 철 따라 달리려고 올라간다.
서울에만 가면 불안하고 가까운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도 길을 수없이 물어봐야 될 만큼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갑자기 어설퍼진다.
서른 해 전인가 진해에서 훈련 선을 타고 인천에 도착하여 서울로 가서 서울역 앞에서 대우빌딩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나 층수를 세다가 목이 아파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올 여름에도 지하철 갈아타는 일부터 여러 가지로 단단히 촌놈 행세를 했다.
유난스럽게 혹독한 더위와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는 험한 코스 때문에 연습을 하지 않은 몸 상태로 대회에 참가하면 고생을 할 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서울로 갔다.
혹서기대회에 처음 참가한 지난해는 목동 근처에서 여관에 자고 아침에 대공원으로 갔는데 혼자 자는 여관 잠도 결코 편치 않아서 이번에는 밤차를 타고 올라갔다.
심야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새벽에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두 시간 넘게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남들이 보면 시커멓고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내가 이른바 간첩이나 조폭처럼 보일 텐데 오히려 옆 사람을 보고 겁을 내서 갈아입을 옷가지 몇 개 든 배낭을 늘 끌어안다시피 했다.
터미널 앞의 벤치에 앉아서 준비해 간 떡으로 아침을 때웠다.
신청 경쟁부터 치열하기에.......
지난 해 겪어보니 혹서기는 신청 경쟁부터 치열하기에 4월 하순부터 서울마라톤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쉬는 시간마다 확인을 하고는 했다. 다행하게도 공지사항을 보고 출근 때부터 벼르다가 재빠르게 신청을 했지만 그것이 결코 준비의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4월 황사 기간에 풀코스를 달린 뒤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서 오래 지나도 낫지를 않았다. 밤만 되면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미련한 나는 병원 문 앞에도 가지 않았다. 미리 신청해둔 대회들을 연달아 포기하고 나니 달리는 일이 겁이 났다.
그렇게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지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날마다 꾸준하게 걷고 근력 훈련을 했더니 상체가 튼실해졌고 체중이 4킬로나 불었다. 늘 굶은 사람처럼 해쓱하던 얼굴에 윤기가 돌고 몸이 실해져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럽다거나 보기 좋다는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달리기와 영 멀어지는 게 아닌가하고 걱정도 되었다.
시간은 순간순간 잘도 지나갔고 걱정은 늘어만 갔다.
참가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고 고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보화전문 연수에 대회 전날인 11일 오후까지 매달려야 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유난히 약한데 보름 가까이 냉방병이 들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신선놀음이기는 한데 달릴 일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참가신청을 했으니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도 꼭 뛰어야지.
뭐 부끄러울 것 있나?
혹서기대회에서는 늦게 달린들 뭐 부끄러울 게 있나 하는 염치없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2-3년 내에 풀코스를 100회 완주하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했기에 연수가 끝나면 부랴부랴 컴퓨터연수 장소와 집 사이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의 체력단련장에 갔다.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땀으로 옷이 흠뻑 젖는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데 이런 증상이 냉방병일지도 모른다. 준비 운동을 한 후에 러닝머신에 올라섰다. 천천히 10분도 달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신발이 땀으로 다 젖는다. 옆 사람들 보기에 민망스럽다. 달리기가 힘이 들어서 근력 운동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한 시간 이상씩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마음만 앞서서 그렇게 며칠동안 무리를 하다가 고향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서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등이 결렸다. 숨을 쉬면 턱턱 막히니 담이 든 듯 했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앉아있어야 하는 교육이 고통스러워서 약을 사 먹고 버티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했다.
신청을 할 때는 한참이나 남은 것 같더니 대회 날자가 코앞에 다가왔다.
소위 테이프링을 해야 하는 기간인데 몸은 엉망이고 마음도 지쳐 있었다. 미리미리 연습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니 노력한만큼만 얻어면 될 것이다.
연습 삼아 달리자.
‘아주 느리게라도 걷지 않고 두 시간만 달릴 수 있으면 만족할 것이다.’
이른 새벽에 첫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에 도착해서 졸음에 감기는 눈을 비비며 이렇게 다짐을 했다. 물을 몇 컵이나 마시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출발은 맨 뒤에서 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출발할 때 내 뒤 주자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목동클럽 회원들이 단체로 달리는 뒤에서 따라 달렸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같이 달릴 사람도 없지만 이런 날은 오히려 그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커다란 동물들이 있는 동물원 구간을 두 바퀴 돌고나서 이른바 왕복 코스로 접어들었다. 지난 해 한 번 달렸던 코스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진다. 한참을 가니 이제 겨우 1킬로 표지판이 나온다. 이어지는 오르막 내리막을 느리게 달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달렸다. 선두 주자들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2왕복을 하고 오는 길인 듯 했다. 힘든 코스를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도 힘들어 보이지 않으니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들이 남모르게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왕복해야 하는 코스라서 누가 앞서는지 뒤서는지 모르니 오히려 편하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두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대로 달릴 만 했다. 힘은 들었지만 걷지 않고 두 시간을 달릴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기분은 괜찮았다. 두 시간 반을 그렇게 달리다가 왼쪽 허벅지 뒤쪽이 불편한듯해서 오르막에서는 잠시 걸었다. 연세가 지긋하거나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으로 삼았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가?
출발 한지 세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왕복 코스를 세 바퀴쯤 돌았다. 이제 주로에는 힘이 빠지고 지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밥이나 과일 등의 먹을거리가 많이 있어도 달리면서 먹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물만 마시고 계속 걷다가 달리다가 했다. 이온 음료수를 좀 마셨더니 옆구리가 당기고 아팠지만 아랫배에 힘을 주고 통증을 참으면서 그냥 걷다가 조금씩 달렸다.
칩을 단다고 신발 끈을 어설프게 묶었는지 신발 덮게가 한쪽으로 쏠려서 왼쪽 발등이 아팠다. 수십 번도 더 멈추어서 바로 잡았지만 여전히 한 쪽으로 돌아가버렸다.
땀에 전 지금의 내 꼴을 아내가 본다면 다시는 달리러 가지 못하게 하리라.
달리는 사람마다 목적이 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게 달리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용기를 얻고, 느리게라도 달릴 수 있는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리라.
내 모난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것을 반성하고 맡은 일에 게을렀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잘 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달리다가 걷다가 했다.
시각 장애인들과 도우미로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신의 의지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또다른 도전이 아닌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힘들게 함께 달리니 이내 친근감이 들었다.
대회의 꽃
혹서기 마라톤대회의 주인공은 우승자도 아니고 바로 완주한 참가자 자신이다. 그러나 꽃은 자원봉사자 들이다. 몇 시간씩이나 북을 울려대며 달리는 주자의 이름을 외치던 여성분들, 내 이름을 수 없이 불러준 3킬로 지점의 학생들, 올해도 변함없이 손이 시리도록 빙과류를 건네주시던 박회장님, 하루 중일 수박을 썰어대던 분들, 물이 모자랄까봐 애를 태웠다던 수많은 급수대 봉사자들, 칩을 풀어주던 고운 손, 일곱 시간 넘게 물품 보관소를 지키면서도 웃으며 맡긴 물건을 찾아주시던 분들, 열무비빔밥이 모자란다면서 애를 태우시던 분들, 막걸리를 철철 넘치게 따라 주시면서 웃으시던 분들, 그 외에도 고마운 수없이 많은 분들.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드릴 게 없다.
언젠가 넘고 말리라.
혹서기 대회가 있는 한,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연습하여서 느리게라도 걷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리라. 걷지 않고 완주하는 일이 두고두고 숙제로 남을지라도 기회가 온다면 해마다 즐겁게 참가하리라.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비록 힘들었지만 혹서기라는 인정 넘치는 보약을 먹었으니 이번 가을에는 곳곳에서 힘차게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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