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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3 수필

꼴찌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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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범 작성일12-02-22 08:47 조회2,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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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찌의 반란

  서울마라톤 클럽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해보면 이번 제 2회 서브-3 마라톤대회 참가자 기록에 나의 기록은 아예 없다. 서브-3는커녕 싱글 기록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정범이란 똑같은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동명이인이다. 사실 내 이름도 그 참가자 기록 명단에 올리지 못한 처지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참으로 염치없고 내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부끄러운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를 내어 감히 이 글을 올린다. 그것도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니라 ‘꼴지의 반란’이란 제목까지 용감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달고........^^

  나는 사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영광이었다. 작년 가을 중일일보마라톤에서 아슬아슬하게 싱글(3시간 9분 59초)에 턱걸이해 겨우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회 며칠 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43명의 참가자 중 내 기록은 꼴찌였다. 그래도 다행라면 다행이랄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참가자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는 것이었다. 설사 대회에 참가해 꼴찌를 해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야.”하고 나를 변명할 수 있는 구실이 시합도 하기 전에 생긴 셈이다.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장사였던 것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바닥으로서의 꼴찌. 얼마든지 편한 마음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욕심은 그게 아니었다. 이왕이면 싱글 이내의 기록으로 골인하고 싶었고,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 개인 최고기록도 갱신하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는 실제 경기를 하며 처절하게 느꼈지만, 그래도 경기 전의 꿈은 야무져 최소한 싱글의 기록으로 골인한 후 통쾌하고 멋진(?) 참가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 나의 꿈이 실현되기라도 할 듯 새벽에 일어나 아파트 창문을 통해 북쪽을 바라보니 판교신도시 내의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겨울철 한강변 마라톤대회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그보다 귀중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조금은 마음이 들뜬 채 부푼 꿈을 안고 대회장에 갔다.

  그러나 새벽의 하늘을 소담스럽게 수직으로 솟아오르던 그 기분 좋은 연기는 오전 일찍 잠시뿐, 두 바퀴 째 돌면서부터 샛강을 지나 여의도 6.3 빌딩에서 다시 샛강 입구까지의 구간은 강한 바람을 안고 뛰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3시간 14분 대. 아무리 강한 바람이란 복병을 만났다지만, 또한 전체적으로 코스가 기록을 내기에는 별로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골인 후 내 시계를 보며 이만저만 실망이 큰 것이 아니었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 대회 복장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날씨가 좀 추워 상의는 마라톤 긴팔 T 위에 기모 소재가 들어간 파워스트레치 긴 팔 T를 겹쳐 입고, 바지는 짧은 마라톤 팬츠 위에 역시 기모 소재가 약간 들어간 긴 러닝팬츠를 겹쳐 입었다. 게다가 장갑도 기모 소재가 들어간 장갑에다가 속에 면장갑을 끼고, 대회 중간에 에너지 보충을 위해 카보샷 4개를 넣을 주머니가 하의에 없기에 별도로 색을 허리에 둘렀다. 신발도 오래 신어 바른쪽 신발 앞부분 반발력을 높이 위해 붙여놓은 곳이 상당부분 훼손된 타사재팬을 신었다. 옷에서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니고 있는 스피드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복장은 전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복장을 보니 대부분 나보다 최대한 얇고, 가볍고,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상당히 공격적인 복장을 보고 내가 얼마나 한심할 정도로 안이하게 이번 대회에 임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카보샷이 들어 있는 색은 달리면서 두 다리가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경기 중 3개만 먹고 1개는 남겼다.)

  4번 째 바퀴를 돌며 30km 전. 후에서 김창원 선수(옛 이름 도나티엔)와 정석근 선수에게 각각 한 바퀴를 추월당한 것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참가선수 중 내 나이가 제일 많고 기록이 꼴찌라 하여도 한 바퀴나 추월당한다는 것은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젊은 그들의 주력이 정말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실망할 일만도 아니었다. 한 바퀴나 추월당하는 수모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전하였다. 비록 싱글에 들어가지는 못했어도 나보다 늦게 골인한 선수도 꽤 여러 명이고, 그 중에는 서브-3 기록을 가진 선수도 제법 있었다. 등 뒤에 이름과 함께 기록이 표시된 배번호를 달고 뛰었기 때문에 내 앞에 뛰고 있는 선수가 어느 정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고, 나보다 기록이 좋은 선수들, 그 중에서도 서브-3 기록을 가진 선수를 추월할 때마다 여간 신나는 것이 아니었다. 네 바퀴 째인 한 32km 쯤을 뛰고 있을 때는 대회 운용요원이 내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158등으로 달리고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여, 내심 “기록은 예상보다 훨씬 밀리고 있으나 순위에서는 상당히 선전을 하고 있군.” 하고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도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여러 명을 추월하고 중간에 포기한 선수도 있었으니, 순위로 치자면 140등 이내는 되었을 것 같다. 맨 꼴찌의 기록으로, 더군다나 최고령으로 참가선수 243명 중 그 정도 성적을 올렸으면 상당히 선전을 한 것이 아닌가. 꼴찌의 반란이라 自評을 해도 큰 허물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제2회 서브-3 마라톤대회는 추위와 바람으로 인해 기록을 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날씨였다. 대회 결과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총 243 명 참가자 중에 서브-3를 기록한 선수가 69명밖에 되지 않고, 싱글을 기록한 선수도 42명밖에 되지 않았다. 싱글 이내의 기록으로 완주한 선수가 111명밖에 되지 않는다. 참가선수의 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초 고수들이나 추위에 강한 선수들은 날씨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잘 뛴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싱글 초과기록으로 완주한 선수는 나를 포함하여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완주는 하였으나 이날 대회 참가자 기록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얼마나 되고 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그렇다고 누구 하나 대회 주최 측에 나머지 완주자들도 기록을 올려달라고 주최 측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선수도 없다. 나는 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들은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싱글에도 못 들은 부끄러움은 다음 대회에서 설욕하면 되는 것이다. 한 번의 실패는 마음먹기에 따라 절치부심의 기회도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회 주최 측이 싱글 초과 선수들의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 하는 일이다. 생각하건데, 그것은 명품대회를 주관하는 주최 측으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대회 주최 측이 서브-3 마라톤대회 참가자 범위에 싱글 기록 선수까지 확대시킨 것은, 그 1차적인 목적이 서브-3가 가시권에 있는 선수들에게 서브-3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추위와 바람이란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참가선수들이 싱글 이내의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면, 일단은 철저한 대회 준비가 미흡했거나 몸 관리가 부실했던 등, 참가선수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만약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한 선수들 모두의 기록을 공개한다면 서브-3 마라톤대회란 명성이나 정체성이 상당부분 훼손될 수도 있다. 그러한 서브-3 마라톤대회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을 알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싱글 초과 선수들은 대부분 그러한 대회 주최 측의 조치를 더 열심히 뛰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명품 마라톤대회는 대회 주최 측의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참가선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부단한 정진이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하리라 본다. 서울마라톤클럽은 풀뿌리 마라톤의 붐을 조성한 그야말로 수도권 아마추어 마라톤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이 번 대회만 하더라도 243 명의 참가자한테 받은 돈으로 고가의 기념품 제공과 함께 대회를 운영하고 7명의 선수들에게 일본 후꾸오카 마라톤대회 참가 경비까지 부담한다는 것은 내 머리로서는 상상이 안 간다. 소규모의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명품대회가 가능한 것은 연로하신 박영석 회장님을 비롯한 서울마라톤클럽과 관계자 여러분의 봉사나 희생 등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가선수들이 그런 노고에 보답하는 최상의 방법은 더욱 열심히 훈련해서 싱글 이내 완주율을 더욱 높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이번 대회를 위해 수고하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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