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가장 완벽한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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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기선 작성일11-02-24 23:13 조회1,6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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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뛸까?”
이런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마라토너는 없을 듯하다.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내가 뛸 수 있으니까 뛰고, 뛰다 보니 잘 뛰니까 더 뛰게 되고, 혹은 남들보다 더 잘 뛰고 싶어서 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뛰는 이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지금보다 더 잘 뛰어야 할 이유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로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뛰는 사람에겐 굳이 서브3가 목표일 필요는 없다.
허면 “서브3”를 목표로 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그것에 열광할까?
모든 예술은 완벽한 순간을 추구한다. 그러나 손에 잡힐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마찬가지로 마라톤도 그 어떤 완벽의 순간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손에 잡힐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달리기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서브3야말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피날레요, 만개한 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대회에서 45세 이상자에게 주어지는 배번 앞자리 “5” 를 부여 받고 기분이 묘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지만 굳이 특정 숫자로 낙인이 찍힌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나이에 들어서도 당당히 서브3대회에 출전자격을 얻었다는 의미일 것이므로 은근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번호이기도 하다.
나이 40줄에 마라톤이라는 것에 맛들이고 주구장창 뛰다보니 서브3라는 것도 해봤다.
나의 마라톤은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듯이 여겨졌지만 이후로 기록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더 나은 기록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고 그 사이 잔주름은 늘고 얼굴에 기름기는 점차 사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말라가는 얼굴을 보며 아내의 지청구는 늘어났고 아이들 앞에서도 지금보다 더 이상, 더 잘 뛰어야할 명분이 희미해 졌다. 나는 이제 어디에도 동정을 구해 볼 염치가 없었다.
허면 이제 그만 할까? 기록 같은 것엔 연연하지 말고 편하게 조깅 정도로만 즐길까?
내겐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그 때 서울마라톤 서브3대회 공지를 보게 됐다.
자격과 조건을 보니 나도 거기에 출전 자격이 있는 셈이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대회라도 되는 것처럼 어서 신청하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허나 당장은 망설여졌다.
아마도 거기엔 전국 마스터즈 마라토너들 중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다 모일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무턱대고 대회 출전 신청을 했다고 해서 서브3기록으로 결승점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기서 나는 꼴등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결승점도 밟아보지 못하고 경기를 그만둬야 할 상황까지 예상되었다.
다음 달에 있을 서울국제 동아마라톤을 신청해 놓은 상태에서 연습 삼아 경기에 참여한다는 명분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는 완주가 문제가 아니라 제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느냐가 문제인 거였다.
그러므로 신청한 이상 그것은 연습이 아니라 기필코 달성해야할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피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이미 설레기 시작하는 마음을 달래며 경기 일정에 맞추어 평소 훈련 계획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직장인 달림이에게 출퇴근주가 최고의 훈련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20분거리의 체력단련실에서 트레드밀을 주로 이용했다. 체력단련실을 이용하지 않을 때는 집에 와서 늦은 저녁 시간에 야외 훈련을 하였지만 올 겨울처럼 추운날씨에서는 도무지 그 효과가 미지수였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한 주에 75~80km 정도는 달려주어야 하기에 주말에는 예배를 마치고 무조건 야외에서 장거리주를 실천했다.
특별히 이번 겨울 훈련에서는 매일 훈련의 막바지에 가속주로 전력주를 실시해 주었는데, 이는 실전 경기에서 상당히 유용한 훈련이라 여겨진다.
이른바 “훈련의 정점을 찍으라.”는 것인데, 다시 말해 그날 훈련의 한 정점에서 자기 최고의 한계치를 경험해 보라는 의미에서 자기 최고속력을 내보면서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밀어붙여 달려 보는 것이었다. - 지난 춘천 마라톤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김00씨로부터 주워들은 교훈인데,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론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나 문제는 제대로 된 실천에 있었다.
사실상 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달린 다기보다도 차라리 그것은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살을 에는 칼바람과 주로 곳곳에 얼어붙은 눈길은 완전무장을 하고 달려도 부상당할 것을 염려하며 달려야 했다.
허나 이는 어느 달림이라도 조건은 비슷했으리라.
훈련의 결과로 나타난 기록은 에누리가 없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핑계란 없는 것이다.
1월이 가고 2월 들어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그나마 날씨가 괜찮고, 충분한 훈련량으로 몸이 만들어질뿐더러 그날의 컨디션이 정상이었을 때라야 겨우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서브3기록이 아니던가.
훈련량도 여전히 미진한 것 만 같고 서울의 날씨는 더욱더 움츠리고 주눅 들게 만들었다.
천우신조라던가.
경기일이 가까워지면서 날씨는 거짓말처럼 좋아지고 있었다.
마침내 대회당일은 아침 영하 1도에서 낮기온 10도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마라톤 경기에 있어서 최상의 날씨가 아닌가 여겨졌다.
경기 당일 이른 아침엔 바람이 불고 다소 한기가 느껴지긴 하였지만 나는 과감하게 싱글렛 차림과 팔토시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
경기 참여자의 숫자는 적었고, 선택된 자로서의 적은 숫자만큼 선수들 저마다의 얼굴엔 무언의 결기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저들 속에서 과연 얼마나 잘해 낼 수 있을까.
홀로 스트레칭하면서 화장실 주변을 들락거리며 배회했다.
F조에 배속된 나는 내내 긴장한 탓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크게 심호흡으로 쓸어내리고 마침내 힘차게 출발 매트를 밟았다.
당연한 말일 테지만 함께 달리는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만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자칫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 흐르듯이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주로 곳곳에 안내 스텝을 배치하고 터닝 포인트 지점에서 힘을 전해주는 분들을 보니 혹서기 마라톤에서 보았던 서울마라톤클럽의 관록과 노련한 경기운영에 안심이 됐다.
하프 기록 : 01:25:43
나로서는 긴장을 많이 하긴 한 것인지 하프를 지나면서 계속되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주로 옆 풀 섶에서 잠시 실례한다.
사실 겨울에 야외에서 장거리주 연습을 할 때 한 시간 정도 뛰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요의가 느껴진다.
기록경기에서 이게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닐 테지만 그만큼 몸은 가벼워졌을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시 새 힘을 쥐어 짜 보았다.
모두들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듯 아직까지는 포기하는 사람도 없어 보이고 추월하거나 추월당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나로서는 끝까지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좋다고 생각하면서 몸 상태를 어르고 달래본다.
30km부분을 지날 때쯤 두 번째 파워젤을 섭취했다.
이제부턴 더 이상 준비된 파워젤은 없고 허기가 오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드디어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게 되자 서브3완주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간혹 나보다 기록이 좋은 분들을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졌다.
이대로라면 완주는 물론 드디어 오늘 나 자신의 최고기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섯 바퀴씩이나 빙빙 돌며 이제 어느 정도 지겨워진 여의도에서 마지막 한 바퀴 만큼은 이 섬의 기를 마음껏 받아 마시자는 심산으로 달리게 되었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를 만들기 위해서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며 의식적으로 자기 암시를 거듭했다.
‘침착하게 끝까지!’
그러자 샛강에서의 맞바람이 5바퀴째에 와서는 그 맞바람에 더욱 세찬 나의 호흡으로 받아 마실 여유까지 생기는 걸 느꼈다(설마).
다만 완주 후에 적어도 그때 그 순간 몇 초만이라도 더 힘을 냈었더라면 하는 후회의 말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날씨가 그만큼 화창했기 때문에 가능한 희망이었으리라.
드디어 마지막 결승선.
그 결승선을 밟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던가.
물리적이며 심리적인 제한선의 의미?
그 선을 밟는 순간은 마침내 그동안 이 대회를 준비하며 고생한 보람의 결과가 나타나는 종결의 시간이요, 그 순간을 위해 준비된 공간일 테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으나 그 한순간, 그 정점에서의 감격을 나는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다.
깨끗하게 잘 닦여 드넓은 여의나루 광장, 그리고 양 옆에 도열하여 환희로 흩날리는 깃발들은 너무도 휘황했다.
그럴 때 영화 록키의 주제가 “gonna fly now”라도 울려 퍼진다면 금상첨화겠다.
나는 마치 이 대회를 준비한 모든 사람들의 수고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인 양 스스로 의기양양했다.
그리하여 아무라도 붙잡아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월계수 꽃관을 쓰고 오늘의 승자에게만 허락된 감격을 나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오로지 달림이만을 배려해주는 진행자의 노련하고 유연한 배려와 마지막엔 사진으로 봉사해 주시는 분의 기념사진까지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내게는 아직도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희열의 연속인 것을. 이는 내 생에 더없을 아름다움이요, 후회 없는 완벽한 순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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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2시간 53분 20초 (개인최고기록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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