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풀코스, 나는 나를 넘어섰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민철 작성일08-08-17 02:20 조회5,41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새벽 4시 40분.
오늘은 태어나서 가장 먼 거리를 달리는 날이다.
설레임과 걱정으로 새벽 2시까지 잠을 설쳤다. 긴장감이 흐른 탓인지 벌써부터 몸이 엷게 떨리기 시작한다.
‘언덕 경사가 장난 아니라던데 괜히 신청한 건 아닐까’
‘반달이라도 뛰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대회를 거의 한 달 앞둔 시점부터는 여름휴가에 바쁜 스케쥴이 겹쳐 전혀 연습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새벽 5시 35분. 과천행 첫차에 올랐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동호회 선배님들과 인사하기 바쁘게 묻기 시작한다.
“괜찮아, 너라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어”, “몸의 피로도는 하프코스나 풀코스나 거의 똑같으니까 걱정하지마” 동호회 선배님들의 든든한 말씀에 비로소 입가에 미소 지을 여유가 생긴다.
7시 20분. 첫 풀코스 출전자로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기분좋게 쌀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훈훈한 대화도 나눴다.
“오늘 예상 기록이 어떻게 돼?“ ”예, 4시간 30분이요!“
“엥? 내가 4시간 30분 예상인데? km당 6분대 생각하고 너무 무리하지마”
“그럼 5시간으로 정정할께요” “그래도 걱정마, 너를 버리지 않을게”
실제로 회장님께서는 중반 이후 쳐지기 시작한 나를 버리지않고 급수대마다 기다려 주셨다.
내가 회장님 발목을 잡다니... 버리셨으면 충분히 3시간대 들어오셨을 텐데...
8시. 드디어 출발!
동물들 사이로 1,400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한다.
여리고 큰 눈망울의 사슴들은 서로서로 모여서 달콤한 아침잠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10km까지는 여유 있었다.
아니, 18km까지만 해도 목표 시간내 완주가 가능하리라 믿었다.
상쾌했다. 자연스럽게 숲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어, 깊게 호흡해봤다. 저절로 노래가 나와 달리는 발에 박자를 맞추었다.
‘그래, 지금 난 날고 있는 거야!’
또한, 급수대마다 들러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작전을 세웠다.
혹서기는 행복하게도 먹거리가 가득했다.
"젊은 오빠, 많이 먹어~ 배고프면 못뛰어요~"
내가 좋아하는 메론이랑 콜라까지! 그 어느 대회보다 종류가 많아 너무너무 행복했다
어느덧 22km로 접어들었다.
몸이 갑자기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래도 초반 21km까지 시간을 벌어놨으니까, 나머지는 km당 8분씩 잡고 뛰어도 4시간 30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호흡이 거칠어진 것도 아니었다. 입은 움직이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을 뿐이다.
28km, 일단 허벅지 뒤쪽부터 경련이 왔다.
그 경련이 앞쪽으로 오더니 서서히 무릎, 양쪽 종아리로 내려왔다. 심지어 운동화 끈을 꽉 매다보니 발등에서도 신호가 왔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의자에 앉아 쥐를 잡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분들이 나를 스쳐갔다.
“그러게 왜 싱글을 따라가~ 내가 다음번 돌아올 때 너 잡을꺼야~”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정말이었다. 회장님과 함께 할 때는 나름 선두그룹이었는데, 계속해서 쳐지고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뛰고 있는데, 도대체 저분들은 얼마만큼 빠르다는 거야?
지금의 고통이 내게만 있는건 아닐건데, 완주하신 분들이 너무너무 존경스러워졌다.
그래도 동호회 선배님들을 마주칠 때면 크게 파이팅을 질렀다.
입은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있었다. 그 파이팅은 나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했다.
30km, 경련이 계속되어 언덕이 아닌 평지에서도 이따금씩 멈춰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급수대에서 맨소래담 바른 손으로 눈을 만지고 말았다.
얼음샤워 한답시고 눈의 물기를 닦기 전에 미쳐 손을 헹구지 못한 탓이었다.
렌즈를 했는데 빨갛게 충혈되어 따끔거리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머리 위로 내 이름이 적혀있는 현수막이 보인다.
"생애 첫 완주 혹서기에서 이루렵니다. 고민철... 이상 9명"
그래, 마라톤의 진짜 게임은 35km 이후라던데 아직 맛도 못본거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오르막에서는 걷고 내리막에서는 조금씩 뛰자. 이렇게 가다간 내내 걸어야 할 수도 있겠다.
35km, 이젠 오른쪽 발 뒤꿈치까지 욱신거려서 내리막에서도 뛸 수가 없다.
아직 1바퀴가 더 남았건만 계속 절뚝거리고 있었다.
사실 한참 전부터 뛰는 거나 걷는 거나 속도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근데 옆에서 걷는 아줌마가 더 빠르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 아줌마를 제끼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고 마지막 힘을 내본다.
41km,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코치님의 대사 중“초원아, 가다보면 비가 내릴꺼야. 거기서부터는 막 뛰어~”
고통과 쾌락은 종이 한 장 차이라던가.
그래, 어차피 즐기기 위해 온 거니까 이제부터라도 웃으면서 Finish까지 뛰어보는 거야!
비를 맞기위해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양팔을 쫙 벌려본다.
그리고 웃으면서 골인했다.
이상으로 제 첫 완주 후기를 마칩니다.
혹서기대회라서 더욱 영광스러웠고 오래토록 잊지 못할거에요!
P.S.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저는 이 혹서기 포기했을까요? ㅎㅎㅎ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