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추천에세이

둘 다 시원하구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희순 작성일07-08-13 15:46 조회3,980회 댓글0건

본문

둘 다 시원하구만

애당초 써브 쓰리는 물론이고 기록경신이나 써브 훠조차도 감당이 안 된 채 시작된 혹서기 풀 코스 마라톤 등록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기록보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즐런의 소유자가 되었지만 시간으로 보면 결코 즐런의 대명사가 되지는 못한다. 4시간대를 기록할 때만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써브 훠를 하겠다고 호언 장담하던 내가 5시간대를 넘어서 이제는 그것마저도 위협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마라토너라 할 수 있을까?
혹시 써브 식스가 있다면 딱 알맞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리라. 그래도 근육 경련 없이 완주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는 하다.
예정에 없던 나의 영원한 사부인 단결 님의 동반주가 예정되어 있어 마음부터 편하다. 단결 님은 나의 마라톤 시작을 도와준 사부이면서 변함없이 든든한 마라톤 후원자이며 동반자이기도 하다.
처음 상암 벌에서 10키로를 시작으로 완주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내 옆에서 있었고, 드디어 풀 코스로 머리 올린다면서 동반 주로 나를 이끌 때에 마지막 고갯길 올라 서면서 거의 포기할 상황에서도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4시간 30분 안에 못 들어 가면 춘천에 안 데려 간대길래 죽기살기로 달려 4시간26분에 첫 완주 테이프를 끊었던 기억이 새록 하다. 조/중/동 마라톤에만 참가했는데도 어느덧 횟수가 누적해서 20회를 바라본다. 남들은 100회를 달린다는데 아직 20회도 안된 애숭이지만 그래도 회사에서는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 물론 단결 님 덕택이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허둥대며 대회장으로 달리니 너무 이른 시간인가?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였다. 벌써부터 주차장에서 이미 마라톤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이미 달리기 복장이 완성된 주자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하루 동안의 달리기를 상상해 본다. 일기예보가 비 온다 했는데 차라리 비 오는 것이 달리기에는 좋겠다 싶은 생각에 기상청에 한 껏 신뢰를 콱 던져본다.
‘아무리 헤멘다 해도 골인은 할 것 아닌가?’
‘시간이 문제지만 그래도 대회 이름이 혹서기 대회 아닌가?’
변명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단결 님을 접수처에서 만나 곧바로 탈의실로 간다. 배 번을 달고 주변의 어수선한 부분을 수습하여 동물원 입구에 마련된 준비 체조 하는 곳으로 가니 여느 대회와 달리 대회장 인사를 비롯한 불필요한 절차가 모두 생략된 채 체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시 아마추어를 위한 최고의 대회라 해도 하나 거스름이 없다. 진정 달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의미 있는 대회임이 분명하다.
워낙 유명인사인 우리 단결 님의 안내(?)를 받아 체조하는 동안에도 연신 형님, 아우님 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즐런, 즐런 한다. 즐런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의 즐런은 ‘주는 것 마음껏 받아 먹고, 충분한 휴식 속에 주변 경관 볼 것 다 보면서 최소한 완주는 한다’가 내 기준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즐런의 기준이 다른 모양이다. 기본이 써브 쓰리인데 오늘은 무더우니 3시간 30분이란다.
언덕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과연 어느 수준일까?’ 하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한다. 한 바퀴, 두 바퀴, 다섯 바퀴 하는데 다섯 바퀴가 마음에 걸린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다섯 번을 달린다는 것이 여간 지루하지 않겠나 싶다. 다행이 중간 중간 간식이 엄청 많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 동안 연습이 없어 내심 완주가 걱정된다. 언제나처럼 출발하면 무조건 골인해야 한다는 나의 마라톤 지론이 혹시라도 깨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하지만 오늘은 그래도 완주해야 한다. 이 혹서기 마라톤은 매년 시도하다가 금년에서야 겨우 등록하는데 성공하였기에 완주의 목표 또한 달성되어야 한다.
조심스럽게 출발하였지만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아예 처음에는 걷는 것이 나아 보인다. 동물원 밖으로 나와 서울 랜드 정문으로 해서 코끼리 열차 출발지점을 거쳐 다시 동물원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동물원 관계자들이 우리들을 환영한다는 플랫카드가 보인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동물원 안에 아직 관객들이 입장하기 전이라 동물들만이 우리들을 맞이 한다. 아니 맞이한다기 보다는 그냥 쳐다보고 있다.
‘희한한 동물도 다 있다’하면서…
‘왜 뛰지?’
동물원안을 두 바퀴나 돌았는데 겨우 7키로란다. 그렇다면 아직도 35키로는 족히 남은 것이다. 시간은 이미 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써브 화이브? 이거 무리다. 써브 식스라는 단어가 있던가? 감히 사부에게 물어보지 못하겠다.
달리는데 온통 우리 사부인 단결 님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대회는 우리 단결 님 보러 출전했나 보다. 덩달아 함께 뛰는 내가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다. 벌써 음료공급이 시작된다. 1키로가 채 되지 않아 음료대와 간식이 펼쳐진다. 수박화채가 왠지 오늘의 메인 간식이 될 듯 싶다. 갈증을 풀어주는데 그만이다. 어느덧 첫 번째 반환점 메트를 밟고 있다. 이곳을 앞으로 4번 더 와야 한다. 끔찍해라. 벌써부터 체력은 모두 바닥 난 것 같은데…
주로에서 여러 번 뵌 듯한 두 분의 여성분이 열심히 짝짝이를 마주치며 응원해 준다. 산꼭대기에서 작은 호수로 내려 치닫는 폭포와 함께 어울어져 저절로 흥이 난다. 목동 마라톤 클럽에서 단체로 응원단이 조직되어 북과 꽹과리로 우리를 맞이한다. 며칠 전부터 내린 비로 생긴 크고 작은 또 다른 폭포수가 사람을 유혹한다. 벌써부터 한 두 사람의 폭포수에 몸을 걸쳐 샤워를 한다. 나도 하고 싶다.
단결 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많다 보니 페이스가 느린 것에 대한 비난이 빗발친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고…하지만 우리 단결 님 나와 동반 주 하느라 늦는 것이라 핑계 한번 안대고 원래 이런 페이스란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마라톤의 백미라면서 오히려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비탈길에서는 열심히 달리고 언덕길이 나오면 걷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오늘 완주 해야 한다. 그런데 나와 복장이 비슷한 주자를 바라보다가 내 상의를 뒤집어 입은 것을 발견했다. 오늘 시작부터 앞뒤가 잘 안 맞는다. 결과로 이야기 해야지만 이미 페이스부터 망가졌으니 어쩌랴!
그 동안 동반 응원에 냉기가 불던 집사람보고 응원 좀 나오라 했다. 어쨌든 오늘은 완주해야 한다. 더군다나 완주 후에는 그 동안 저 만치로 바라만 보던 아이들이 오늘은 혹시 응원 차 올지도 모르기에 함께 동물원 일주해주는 봉사도 해야 한다.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벌써 땀에 온 몸이 범벅이 되어 영 힘이 안 난다. 아직도 남은 바퀴수만 머리 속에 아른 거린다. 열심히 응원해 주는 간식 도우미들의 수고에도 못 미치는 나의 열정이 너무 못마땅하다. 사뭇 여유 스럽게 동반 주 해주는 나의 사부 단결 님 때문에 그나마도 위안이 된다. ‘폭포수에 한번 담궈 보시지요?’ 하면서 먼저 성큼 폭포 속에 몸을 내 던진다.
“야! 시원하겠다.”
양말이 젖으면 안되겠다 싶어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폭포 속에 내 몸을 던져 본다.
“우와! 이런 기분 처음이다.”
정말 시원하다. 머리 속이 차가워 지면서 갑자기 아랫도리에 신호가 온다. ‘에라 모르겠다. 함께 떠나 보내자.’ 따뜻한 기분과 시원한 기분이 오묘하다. 어쩔 수 없이 폭포수에 담그는 시간이 길어진다.
‘많이 참았나?’
온 몸을 적시고 나니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뛰어도 될 것 같은 욕심이 용솟음친다. 교만하지 말자. 다지고 또 다진다. 아직도 3바퀴 더 남았다. 분명 양말도 벗고 운동화도 벗었건만 운동화까지 모두 젖어 버렸다. 찌꺽 찌꺽 물소리를 들으며 달리니 발이 부르틀까 봐 걱정이 태산 같다.
이젠 언덕길과 비탈길의 느낌, 응원단의 응원 페이스, 간식의 양까지 조절된다. 물도 마시고 이온음료도 마시는 가운데, 수박화채와 메론, 바나나, 그리고 토마토는 달리는데 기분을 더욱 신나게 해 준다. 골인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남은 거리가 지금까지 온 거리보다 많다 보니 심신이 괴롭기만 하다. 물바가지 퍼주는 도우미들의 정성이 그래도 한껏 기분을 즐겁게 해준다. 이유 없이 물바가지 세례를 받고 온 몸을 적신 채 달려도 금새 말라버려 언제 시원 했었냐 하면서 조롱하듯 날씨마저 일기예보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서서히 단결 님을 향해 인사하던 사람들이 골인했는지 기권했는지 현격히 줄어 들었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걷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는 ‘볼 때마다 한 번도 뛰는 것을 못 보았다’는 외침이 조롱인지 격려인지 분간할 겨룰 도 없다. 그냥 맥없이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그래도 마라톤 시계는 간다고 어느덧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골인 점을 향해 가는데 달리는 산책길에서 노인 두 분이 이야기가 더욱 생경스럽다.
“이 사람들이 적어도 10시에는 출발 했을꺼 아녀? 그럼 지금이 1시가 다 되니깐두루 이제 이 사람들이 마지막 골인하려고 죽자 사자하고 달려 가는겨…”
“그렇겠구먼…”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내리막길을 내달려가자 마지막 골인 하는 줄 알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주변의 우뢰 같은 박수를 받으며 다시 턴을 하자 모두가 웃는다. 그리고는 우리 뒤로 아무도 안 오는 것 같다. 그 많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큰 일 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꼴찌를 하다니…
마지막 되돌아 가는 비탈길을 겨우 달려 다시 언덕을 바라보자 멀리 몇 명의 주자가 보인다. ‘아직도 있구나’ 하면서 내심 안심이 된다.
“이제 저들 중에 몇 명 앞서면 꼴찌는 아니다.”
변함없이 마지막 주자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응원해 주는 자매 같은 두분의 응원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분들의 짝짝이 박수 응원과 적당한 춤 솜씨가 이날의 최고 선물인 것 같다. 간식도 변함없이 끝까지 지켜준다. 세상에 이런 마라톤 대회도 있나? 목동 응원단도 끝까지 변함이 없다. 마지막 반환점을 돌자 뒤 따라 오는 무리들이 아직도 적지 않음을 확인한다.
‘아! 꼴찌는 아니구나?’ 부부인 듯 밀고 당기는 빨간 티셔츠의 남녀 한 쌍이 우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단결 님이 한 마디 건넨다.
“보기에 조~오습니다”
“같이 가야지 어떡합니까?”
이래서 마라톤 하나보다. 나는 언제 우리 집 사람 들러리 서주나?
처음에는 그래도 아내가 함께 출동하여 5키로를 달려 주었다. 세월이 흘러 10키로에서 하프로, 하프에서 풀 코스로 넘어가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는지, 그냥 ‘혼자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꼬리를 빼기 시작한 것을 이해 해 준 것이 잘 못 되었을까? 그 뒤로는 언제나 혼자 출동이다. 아이들도 한 두 살씩 나이를 먹더니 이제는 달리기 안 한단다. 뭔가 제대로 관리 못한 탓이리라.
반환점 돌 때마다 잊지 말라고 손목에 끼운 고무줄 다섯 개가 꽉 조여지지만 그래도 뿌듯하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중에 폭포수의 유혹이 결국 시간을 연장시킨다.
‘언제 이런 곳에서 폭포수 샤워를 하겠는가?’
내친 김에 폭포수 나올 때마다 온 몸을 들이밀어 본다. 마지막 빨간색의 목동 응원 팀이 힘을 실어준 곳의 폭포가 가장 멋 들어진다. 계곡을 뛰어 올라 멋진 샤워를 한다. 아예 운동화를 신은 채로 몸을 날려 본다. 온 몸이 갑자기 차가워 지면서 그렇게 땀으로 내보냈건만 아직도 나올 것이 있나 보다. 다시 한번 아랫도리의 따듯함을 느껴본다. 머리가 속까지 얼어 들어가는 것 같다.
‘히! 둘 다 시원하다.’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도우미들을 뒤로 하고 아직도 달려오는 진짜 마지막 주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누가 누구를 격려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먼저 가는 사람이 한 마디 건네 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끝까지 힘내세요”
“먼저 가서 점심 준비 해 놓겠습니다”
마치 점심은 내가 내는 것처럼 인심을 듬뿍 쓴다. 힘든 가운데서도 모두가 한 가족처럼 웃으며 대꾸한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언덕길을 돌아 내리막길 직전에 부부가 뿌려주는 한 바가지 물세례를 듬뿍 받고, 다시는 더 오지 말라는 님의 외침소리와 함께 사부한테 ‘단결 님은 왜 한 바퀴 더 도느냐?’고 핀잔을 주는데 나보고 정말 다시 한 바퀴 돌라면 머리가 먼저 돌 것 같아 메아리만 뒤로 하고 열심히 앞발, 뒷발을 들어 올린다.
마지막에는 다리만 들어 올리면 앞으로 가는 것이 마라톤이라 했다.
골인 점이 눈 앞에 보인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힘차게 내 달려 정말 마지막 골인 점을 향해 온 몸을 던진다. 시간은 이미 6시간이 넘어 버렸다.
그래도 완주 했다. 18번째 완주를 기록한다.
내 인생에 풀 코스 마라톤완주를 이렇게 많이 하리라고는 상상도 안되었지만 이제 100회를 향해 꾸준히 목표를 상향 조정해 본다. 마라톤 시작 자체가 나의 인생 전환점이다.
혹서기 마라톤이라서 속도 내기가 좀…
변명거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동물원 안에서의 혹서기 마라톤은 내년을 기약하면서 이렇게 끝이 났다.
‘6시간3분41초’
아내와 아들이 마중을 나왔다. 너무 무더워 고생할 것 같아 측은해서 나왔단다. 어쨌든 가족들과 함께 동물원을 한 바퀴 더 돌아야 했다. 마무리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어쩔 수 없이 찐하게 몸 푸는 운동을 한 것이다. 근육이 뭉쳐서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못하고 햄버거 사주며, 아이스 크림 사주며 가자는 곳까지 열심히 가주는 정성을 다해야 다음 번 마라톤에 응원 나올 것 아닌가?
상기된 집사람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한마디 건넨다.
“우리 김포공항에 배들어오믄 영화 구경가자”
(2007년8월11일, 혹서기 마라톤대회를 마치고!)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