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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완주기 "풀코스 달려야 아기 가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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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시연 작성일07-03-05 16:04 조회2,7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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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언제 가질거여?"
"글쎄, 같이 마라톤 풀코스 한번은 뛰어보고...^^;"

요즘 주변에 자녀계획을 묻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어느덧 결혼 1주년도 가까워오고 '황금돼지해'다 뭐다 해서 주변에 아이 가진 동료들도 많은 탓이지요. 그때마다 농담처럼 마라톤 풀코스 얘기를 꺼내 적당히 무마했습니다.

함께 마라톤을 시작한 지 2년. 그 사이 전 42.195km 풀코스를 2차례 뛰었지만 옆지기는 아직이거든요. 지난해 가을 중앙마라톤에 첫 도전했다가 제한시간에 쫓겨 결국 옆지기는 25km 반환점에서 멈춰야 했지요. 그러니까 이번이 두번째 도전입니다.

연습 부족에 악천후까지 설상가상

3월 4일 일요일. 흐리다 낮부터 비. 게다가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올겨울 달리기 연습은커녕 감기에다 명절후유증까지 겹쳐 고생한 옆지기를 생각하면 이번 대회도 포기하는게 맞았습니다. 전 나름대로 2월 한달 100km는 채웠는데, 옆지기 연습거리는 그 절반에도 못 미쳤죠.

막판에 옆지기가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한강에 나가 같이 20km를 뛰더니, 비 예보에도 아랑곳않고 절 따라나서는 겁니다. 아무래도 대회 전날부터 미리 배번호 붙이고 짐 챙기며 요란을 떤 제가 보기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드디어 대회날. 마침 정월대보름이라 아침 6시에 일어나 오곡밥 챙겨먹고 여유있게 대회장으로 나섰습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긴 했지만 기온이 적당해서 비만 안오면 뛰기엔 좋겠다 싶은 날이었습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이들도 가득찬 여의도 대회장은 정말 장관이더군요.

여러가지 달림이를 배려한 대회라는 점도 있지만 굳이 서울마라톤대회를 우리 목표를 잡은 건 첫째 제한시간이 없다는 것과 둘째 부부완주상이었습니다. 이미 지난 중앙마라톤 때 5시간 제한시간에 쫓겨 대회를 포기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죠. 거기에 풀코스에 도전한 부부 달림이 122쌍에게 주는 부부완주상은 보너스인 셈이죠.

다국적 달림이들과 함께 달리다

오전 10시. A그룹, B그룹, C그룹...차례 차례 출발하는데 우린 맨 마지막인 F그룹에 섞여 10분 늦게 주로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본전 제대로 챙겨간다"는 사회자의 농담이 아니더라도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자들이 대부분인 F그룹은 말 그대로 'Fun run'을 즐기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죠. 기록에 연연하지않고 오직 완주가 목표인 이들은 주최측이 준비한 간식도 다 챙겨가면서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자신과 싸움을 합니다. 오히려 2~3시간대에 달리는 '선수'들보다 더 힘들고 고된 레이스를 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도 섞여 달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멀리 일본에서 온 100회 마라톤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머리가 하얀 60~70대 노인들인 이들은 어딘가 불편한 듯 하면서도 느릿느릿 역주를 해냈습니다. 또 주한미군이나 서양인들도 섞여 있어 거의 다국적 대회라 할만 했죠.

한 30분쯤 달렸을까 조금씩 빗발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우중주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죠. 만약에 대비해 우비를 챙겼지만, 옆지기가 필요없다고 그냥 달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큰비는 아니어서 맞바람에도 달리는데 큰 장애는 되지 않았습니다. 옷이나 장갑에 스며든 빗물도 바람에 금방 증발해 버린 듯 했습니다.

어느때부턴가 우리 주변에 동영상카메라를 들고 자전거에 탄 카메라맨들이 열심히 따라붙더군요. 혹시 우리를 찍나 했는데, 알고 봤더니 일본에서 온 어떤 달림이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일장기가 그려진 띠를 두르고 달리는데, 선수 같아 보이진 않고 마라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어떤 이의 휴먼스토리를 찍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무릅쓰며 촬영하는 그들의 모습 덕에 반환점까지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김밥에 계란프라이까지... 감동 먹다

올림픽대교, 광진교를 지나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어느덧 20km 넘게 달린 셈입니다. 이미 시간은 12시 40분을 넘겼고 빗줄기는 소강상태였지만 끼니때가 되니 배가 고파오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 떡입니까. 반환점을 돌고 나니 먹을거리 장터가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따끈한 밥에 구이김을 싼 '김밥'부터, 된장국, 계란후라이까지... 우린 달리는 것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열심히 먹었습니다. 김밥을 말아 직접 달림이들 입에 넣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정말 천사같더군요.

허기를 달래고 나니 힘이 부쩍 솟습니다. 더구나 지금부터는 등바람입니다. 반환점까지 맞바람 때문에 고생했지만 이제부터는 그 강한 바람이 달림이들의 등을 밀어줍니다. 다행히 비도 잠시 그쳐 그렇게 쾌적할 수 없습니다. 운동화와 양말이 좀 적긴 했지만 유니폼은 멀쩡합니다.

"마라톤은 30km부터야. 아직 힘을 아껴."

서서히 옆지기에게 코치가 들어갑니다. 지난주 20km 정도는 달려봤지만 지금부터는 옆지기에겐 미지의 거리입니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죠. 지금까지는 6분30초~7분대로 비교적 잘 달렸지만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더 줄여야 합니다.

1단계 목표는 30km로 잡았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얘기죠. 중간중간 완주를 포기하고 앰뷸런스에 타고 가는 주자들도 눈에 띕니다. 이미 지난해 회송차에 타 본 기억이 있는 옆지기는 이번만큼은 저런 신세는 면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달립니다.

어느새 30km, 35km를 넘었습니다. "최정은 화이팅!" 중간중간 배번호에 큼지막하게 적힌 이름을 불러가며 응원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었습니다. 아, 이래서 번호보다 사람 이름을 크게 썼구나, 실감이 나더군요. 이미 5시간이 가까워오고 다들 지칠 시간대지만 비를 맞아가면서도 응원을 멈추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40km쯤 되자 빗줄기가 점차 세졌습니다. 늘 연습하던 코스였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옆지기는 중간중간 급수지점에서 몸을 푼 건 외엔 끝까지 걷지 않고 달려서 완주했습니다. 정말 그 근성이 무섭습니다.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환대

드디어 골인지점이 눈앞에 보입니다. 대회연단은 철수했지만 대부분 천막과 자원봉사자들은 그대로 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5시간 16분 30초. 자원봉사자가 달려와 옆지기에게 장미 한 송이와 함께 풀코스 완주메달을 목에 직접 걸어주고 비에 젖은 몸을 큰 수건으로 덮어줍니다. 이 정도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환대입니다.

풀코스 완주 세리머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 대회본부로 가 부부완주자에게 주는 상패와 부상을 챙겼습니다. 그냥 가면되나 했더니 월계관과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도 하랍니다. 비를 맞아가며 어색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택시타고 마포 해장국집까지 가는 길에 오늘 마라톤완주했다는 얘길 했더니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그러더군요. "아무래도 비가 마라톤대회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모양"이라고. 정말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이제 폭우에 가깝습니다. 정말 달리는 도중 이런 비가 왔다면 일찌감치 경기를 접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후반부에 맞바람을 안고 달려야 했다면 정말 최악이었겠죠.

악천후를 뚫고 달린 옆지기의 첫 풀코스대회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다시는 풀코스 뛰나봐라!"

녹초가 된 옆지기가 한마디 합니다. 사실 저도 작년 동아마라톤 처음 달리고 났을 때 비슷한 심정이었죠. 그런데 지금껏 풀코스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글쎄요...^^;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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